-재계 “국민적 합의 없는 노동이사제 도입 중단해야” vs
-노동계 " 노사 갈등을 줄이고 성숙한 사회로 가는 초석"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이 지난 4일 국회 입법 문턱을 넘었다.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재계의 잇따른 우려에도 노동 유권자 마음 잡기 위해 속전속결로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안은 해당 상임위 전체 회의를 거쳐 오는 11일 국회 본회의서 통과될 전망이다. 

- 노동이사제 도입 `갑론을박`

노동이사제는 노조 임원이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참가하는 제도다. 재계는 기득권 노조에 의한 이사회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부작용 검토나 국민 합의 없이 법안 개정이 강행되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 기업에까지 확대되면 이사회 기능을 왜곡시키고 경영상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저하하는 등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5개 경제단체는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 없이 노동이사제 처리를 강행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경제계는 국회가 이 법안에 대한 추가적인 입법 절차를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한다”라고 덧붙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12월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노동이사제가 민간 기업으로 확산할 수 있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날 발표문을 통해 "강성노조가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뒷전으로 밀릴 것이 자명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동이사제는 이미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심각하게 기울게 하고 오랜 숙원이었던 공공기관 개혁을 저지할 것이다"라며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기업으로의 도입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친노동정책으로 인해 위축된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가 노사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제도"라며 "한국노총은 제도 도입을 계기로 공공기관 운영의 독립성·민주성을 강화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동이사제는 유럽 등에서 이미 정착돼 있으며 참여형 노사관계 실현과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 등 `진짜 공공기관 개혁`을 이끌 제도이기에 조속한 입법이 진행돼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일부 노동전문가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제도라며 노사관계와 기업 경영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 등 유럽 국가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원화 모델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일원화 모델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1월 22일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야당이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으로 신속히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지난해 12월15일 “(노동이사제) 제도가 잘 진행되려면 노사가 동반자란 인식이 중요하다”라며 “공공기관 합리화와 부실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 `勞 유권자 마음 잡기`에만 혈안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날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 추천 또는 동의받은 비상임 이사를 1명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동이사제를 민간 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밝히며 정부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경영계의 반대 등으로 논의가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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