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가치 훼손 이유로 30곳에 주주대표소송 서한 발송
경제계 “기업 벌주기ㆍ연금사회주의ㆍ경영압박수단 우려 제기”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주주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최근 또다시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현대자동차·GS건설·롯데하이마트 등 20~30개 기업에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기업의 선정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경영과 관련해 형사 기소됐거나 공정위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이 선정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300개사다. 이들 대부분이 주주대표 소송 대상에 해당한다. 주주대표소송은 상장사의 경우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다. '주주대표소송'은 주주가 회사나 자회사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 상정

앞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갖고 있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하위 기구인 수탁 위에 넘기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수탁위는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 단체가 추천한 전문가 3명씩 9명으로 구성된다. 수탁위는 국민연금에서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담당하는데 소송제기는 경영 참여 활동과 더불어 국민연금이 택할 수 있는 강력한 주주 활동이다.

기존에는 실제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가 주주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하고 예외적인 사안만 수탁위가 맡는 구조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개정안을 상정하고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은 2월 기금운용위 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기금의 수익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기금운용본부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탁위가 대표소송을 맡을 경우 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했다. 또한 국민연금의 기업 대상 소송이 ‘기업 벌주기’로 변질하면서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지난 1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기업 벌주기식 주주 활동에 몰두하는 행태에 경제계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주주대표소송 결정을 수탁위로 일원화하면 여론에 휘둘린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수탁위는 기금 운용에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정치 사회적 이해관계와 여론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유인이 높다”며 “실제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가 소송을 결정하고 예외적인 사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는 또 주주대표소송이 결과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방향으로 남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탁위는 근로자단체와 사용자단체, 지역 가입단체가 추천한 9명으로 구성되는데 기금 운용에 관여하고 있지 않아 <소송 실익 고려 없이 소송을 제기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단체들은 의결권 행사 권한이 있는 수탁위가 지금까지 기업 주주총회에서 일반 주주들과 반대되는 방향의 의결권을 행사해온 점도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경총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은 궁극적으로 전체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재계 반발 이유로 흐지부지해선 안 돼, 논평도

반면 경제 시민 단체는 '국민연금, 재계 반발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흐지부지해선 안 돼'라는 논평을 내놔 뚜렷한 온도 차를 엿볼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경제단체들은 주주대표소송 절차 등을 법률에 규정하고, 소송 대상 사건을 제한하는 동시에 소송의 실익에 대한 검증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국민연금은 지난 3년간 이에 관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세부 원칙을 정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라며 "2018년 12월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한 이후 2019년 1월 주주대표소송 제기 절차와 제소요건에 관한 기본 방침을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상반기에는 소송 대상 사건 유형, 손해 발생금액, 제소기한 등을 고려한 세부 기준과 절차를 정비한 바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인제 와서 경제단체들이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기업 벌주기식 주주 활동이라며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제도 정비를 구실로 시간을 끌며 국민연금의 소송을 막아보겠다는 의도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이 그동안 주주대표소송에 소극적인 태도로 시간을 허비한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재계는 어떤 기업이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1호' 대상이 될지를 주목하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대표 주주소송이 주주가 회사나 자회사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다 보니 소 제기만으로도 기업 경영에 악영향은 물론 경영 측면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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