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촉발한 ‘멸공(滅共)’이 정치권의 논란거리로 대두되었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멸공’이란 단어를 가끔 썼다. 그는 1월5일에도 소셜미디어에 숙취 해소제로서 ‘멸공(멸치와 콩)’사진을 싣고 “새해에는 이거 먹고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지난 8일 신세계그룹의 이마트에 가서 달걀, 파, 멸치, 콩 등을 구입한 사진을 공개, 정 부회장 ‘멸공’에 뜻을 같이함을 간접으로 드러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이마트에 가서 멸치와 약콩을 샀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멸치와 콩에 달걀말이를 곁들인 식사 사진을 공개하며 정 부회장의 ‘멸공’에 동조했다.

‘멸공’은 ‘반공(反共)’과 함께 6.25 북한 기습남침 이후 1980년대까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멸공’ 대신 ‘친북’ ‘용공’하면 잡혀간다는 불안감에 싸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친북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북’ 대신 ‘멸공’ ‘반공’하면 잡혀가거나 반정부 인사로 찍혀 불이익을 당한다며 ‘멸공’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용진 부회장이 친북 문재인 정권하에서 ‘멸공’을 외쳤다는 건 대기업인으로서 불이익을 감수한 매우 용기 있는 처사로 평가된다. 문 정권의 법무부 장관 출신인 조국 씨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멸공이란 글을 올리는 재벌 회장이 있다.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깎아내렸다.  철 지난 ‘멸공’을 외친다는 빈정거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도 “중국을 자극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더욱 염려스러운 현상은 ‘멸공’과 관련, 윤석열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적극적인 찬동보다는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걸로 간주, 돌아선다는 점이다. 윤 후보는 ‘멸공’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자 자기의 8일 멸치와 콩 구입이 “가까운 이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산 것일 뿐‘이라며 정용진의 ‘멸공’과 무관하다는 뜻으로 물러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윤 후보가 “멸치와 콩을 자주 먹는다”며 윤 후보의 이마트 장보기를 문 정권에 대한 “챌린지(도전)로 이어가시는 게 과하다”며 후퇴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이마트 멸치*콩 구입은 개인 식성보다는 정용진의 ‘멸공’에 대한 간접적인 동참 표출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윤*이 두 사람이 며칠 뒤 그게 아니었다고 뒤집은 것은 ‘멸공’이 구시대 유물로서 젊은 세대 득표에 해가 될까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표를 의식해 ‘멸공’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도리어 정용진의 ‘멸공’을 확산시켜가야 할 시점임을 직시해야 한다. 정 부회장은 ‘멸공’ 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을 간명하게 적시했다. 그는 북한 때문에 “해외에서 돈 빌릴 때 이자도 더 줘야 하고 미사일 쏘면 투자자도 다 빠져나가더라.”며 국제사회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을 제시하였다. 이어 그는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을 맞는 국민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멸공’ 대상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 대변인’ 노릇한다고 훼자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멸공’이 간절한 시점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힘 윤 후보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 느껴지는 “당연한 마음”에 처음 동조했다가 득표를 의식, 며칠 후 뒤집었다. ‘멸공’과 ‘반공’을 근저로 한 전통 보수당의 기본을 저버린 패배주의 소산이다. 보수 유권자들은 윤 후보가 등뼈도 없이 좌우로 흔들린다며 실망했다. 윤석열*이준석은 대기업인이 권력의 눈총과 불매운동마저 감수하며 ‘멸공’을 소신껏 외친다는 굳건한 안보관을 본받아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