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12월에 치러지던 대선이 지난 20175월에 이어 이번엔 3월에 치러진다. 공교롭게도 대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맞이하는 설 명절이다. 각 대선후보들은 설 밥상에 올려놓을 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코로나까지 극성이라 과거와 같은 흥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미 부모형제들이 모두 모여 설을 쇠는 집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요즘은 도시에서 자식들이 각자 설을 쇠는 모습도 흔하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고향마을에서의 음력설 명절은 참으로 분주하고 푸짐하였다. 대부분이 친가 또는 외가 친인척들로 이뤄진 마을공동체였다. 집밖을 나서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었다. 설 명절이 되면 마을을 돌며 새배를 다녔다. 설 하루전 저녁에는 묵은 새배를 다녔고, 설날이 되면 신년 새배를 다녔다. 새배를 위해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음식상을 몇 번이나 받아먹기도 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정겹고 풍성한 명절이었다. 그때의 밥상머리 화제는 주로 결혼, 입학, 취업 따위였다. 시골이라 그런지 정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당시 나이 50대이던 고향마을 일가친척 어르신들도 지금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사람들 소리와 음식 장만하는 소리로 북적거리던 마을은 스산할 정도가 되었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시자 서서히 자식들 발길이 끊어지고, 고향은 외국 가는 길만큼 멀게 느껴진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세상살이 이야기 나누던 기억도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정치권을 향한 한풀이로 요란했던 명절 밥상머리 정치이야기는, 서서히 스마트폰이라는 기계 속에서만의 전쟁인양 무미하고 건조해졌다.

그래도 많거나 적거나 모인 가족들이 나누는 얘기는 정치이야기, 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결혼, 취업, 승진, 입학 따위의 이야기는 서로 피하는 추세다. 가급적 서로에게 상처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정치 이야기도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모를 따라 자녀가 같은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던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하다못해 배우자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도 설을 앞두고 실시하는 양당 후보의 일대일 토론 결과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누군가는 승기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시선이 냉정한 심판자가 되리라 믿는다. 자칫 진영논리에만 매몰되어 객관적 잣대를 잃어버리면 흔한 닭싸움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니 말이다. 기왕 올리는 설 밥상 대선메뉴라면, 후보의 인간적 품성과 정치적 자질을 따질 수 있고, 공동체의 화합과 안녕, 나라의 번영을 위한 해법을 담은 좋은 메뉴들이 잔뜩 준비되면 좋겠다.

특히 두 가지는 우리가 반드시 살피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자격, 리더의 자질을 잘 살펴보자는 말이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성품을 잘 살펴보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마다 몸속에 품고 있는 격(人格)이 있다. 말로 숨기려 애써도 그 말 속에 저절로 본성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마치 짜지 않고 밍밍한 소금과 같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된다. 굳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수시로 넘으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내미는 밥상은 마당에 내던져져야 옳다.

리더의 자질 중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남의 것을 귀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이타적 정치행위의 기본이 된다. 물론 이 문제도 인간의 자격인 예의염치(禮義廉恥)의 범주 안에 있다. 자기 돈은 아까워하면서 남의 돈은 마치 길가다 주운 돈처럼 함부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자기는 이웃을 위해 방 한 칸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국민 호주머니를 강탈해 그 돈으로 자기만 생색내는 파렴치한 자는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대선메뉴들을 잘 살펴 옥과 석을 갈라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명절을 즐기되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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