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관계자 "중대재해법 1호 주홍글씨 피하기 위해 현장 중단 늘어" 토로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된다. 이 법 시행 후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기업법인과 최고 책임자, 명목상 책임자가 아니더라도 사고 원인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실소유주도 처벌을 받게 된다. 

- 연이어 '추락사고' 발생...안전 포부 '공염불'

이런 분위기 탓인지 최근 산업현장에서도 법 시행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대화에서 "대형 건설현장 중 설 연휴 기간 문을 닫는 곳이 여러 곳이 있다"라며 "공기 일정 맞추기 위해서는 설날 당일만 빼고 풀가동 하던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와 관련해서는 "업계 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 1호 위반기업이 되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져있다"고 알렸다. 최근 광주 현대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연일 언론이 중대재해처벌 이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강도 높게 묻는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인명사고가 종종 발생했던 철강·중공업 등 이른바 ‘중후장대’ 업계는 초비상 상태다. 특히 지난 19일과 20일, 24일 안전사고가 발생한 기업들은 책임자가 직접 나서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19일 현대삼호중공업 사업장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근로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근로자는 화물창 청소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던 중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장입차량(석탄을 옮기는 중장비)과 벽 사이에 끼여 숨졌다.

작업 중에는 장비 가동을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는 안전규칙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4일 오후 5시30분께는 현대중공업 2야드 가공소조립부 3베이에서 직영노동자 오모 씨(1971년생)가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노조에 따르면 재해자는 리모컨으로 크레인을 운전해 3톤가량 되는 판계 부재를 쌓던 중 크레인이 잘못 작동해 재해자가 지상 장비인 용접 겐트리 서쪽 주행 지지부와 크레인 사이에 가슴이 끼어 사망했다. 노조는 중량물을 크레인으로 끌어올릴(권상) 때 2인 1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현대삼호중공업과 포스코는 각각 김형관 대표이사, 최정우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대표이사는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요소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고, 최 회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재발 방지 및 보상 등 후속 조치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현재 사고대책반을 설치해 관계기관과 협조하며 정확한 사고원인 파악과 신속한 사고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불의의 사고로 인해 희생된 분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재발방지 및 보상 등 후속 조치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본지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코 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일터에서 죽고 있다. 정부는 하청노동자 사망과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근본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 산재사망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한 조치가 없다면 이 주금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재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건설업에서는 45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 중대재해처벌법 “책임소재 분분” vs “사고 예방부터”      

일각에서는 사고가 반복되고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안전 불감증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모든 사고를 기업 대표가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의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 보완 없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많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실에 맞도록 수정해야 하고 재해의 예방 활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열린 전국 기관장 회의에서 중대산업재해 유형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뉴시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열린 전국 기관장 회의에서 중대산업재해 유형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계는 중대재해 정의, 의무주체 범위, 준수의무 내용 등의 법상 모호한 규정들은 명확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은 여전히 안전보건의무, 관계법령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기업들은 법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20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준비 상황에 관한 브리핑에서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등 최근의 대형 사고들은 아직 우리 사회의 안전 문화와 재해 예방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처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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