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남구 선거구가 보궐선거를 앞두고 연일 시끄럽다.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결정하는 독특한 지역 분위기 속에서 십여명 이상의 예비후보들이 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다. 그러다가 국민의힘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대여 공세에 매진하기 위해 무공천을 결정하면서 셈법은 훨씬 복잡해졌다. 여기에 김재원 최고위원까지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고 나서 당 지도부의 체면이 크게 구겨졌었다. 비록 김재원 최고위원이 비판여론에 부담을 느껴 중도포기를 했지만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다. 권영세 사무총장이 탈당후 당선되더라도 복당은 없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대구 중·남구 선거구는 과거 '대구 정치 1번지'라고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16대 현승일, 17대 곽성문, 18대 배영식, 19대 김희국 등 전직 국회의원이 연임을 노렸으나 잇따라 실패했다. 곽상도 의원이 20대에 이어 21대에 가까스로 재선고지를 밟았지만, 대장동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이 드러나면서 중도 사퇴해 다시 무주공산이 된 셈이다. 초선이 재선하기 힘든 곳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인데, 또다시 혼돈 속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 지역구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특정정당 공천이 당락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당 지도부 역시 사람 바꾸기를 고무신으로 엿 바꿔 먹듯 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잦은 물갈이를 하게 된 것이, 당이나 청와대의 뜻에 의한 일방적 공천결정 때문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특히 이 지역에서 지방선거 출마를 생각하는 후보들의 지조 없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번에도 단체장 출마를 준비하던 모 시의원은 자신의 출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불출마를 밝히고 김재원 지지선언을 하여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김재원 불출마로 다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이다. 이런 얄팍하고 어리석은 처신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디 그 뿐일까.

김희국의원이 20대총선 공천에서 탈락하자마자 지방의원들이 그날로 짐을 싸들고 공천장을 받은 곽상도 캠프로 달려간 일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김희국의원이 시원시원하게, 공천받은 사람에게 가라고 했지만 어찌 그 속이 편했을까. 실제로 TK지역에서 주민들이 출마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공천장 받아왔나?”가 그것이다. 제대로 된 유권자라면,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또는 출마를 희망하는 자로서 그 지역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다짜고짜 묻는 질문이 공천장을 받았는지 여부이다. 주권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씁쓸한 장면이다.

이러니 김재원 최고위원 조차 탈당을 해서라도 출마하겠다며 당의 명령운운했다. 마치 당이 공천을 자기에게 주고 싶은데 대놓고 그렇게 하진 않으나, 실제로는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언행이다. 게다가 해당 지역구에는 오랜기간 터를 일구고 곡식을 뿌려놓은 사람들의 수가 참으로 많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최고위원이 잿밥에 눈이 어두워 한순간에 직을 팽개치고 남의 집 밥그릇에 손을 대려 시도했다는 것은, 그 어떤 변명을 해도 정당하지도, 떳떳하지도 못한 처신이었다.

결국 공천여부와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일꾼을 지켜내려는 주민의 의지가 없는 한 그 누구도 공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유권자 자신들의 권리를 당과 청와대에 온통 내맡기고선, 그들이 점지한 자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겠다는 행위는 올바른 주권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주권자가 이런 행태를 보이니 너도나도 지역을 우습게 여기고 주권자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내 맘대로 공천을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공천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우리 정치충원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어서 씁쓸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력은 없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 정당이 반민주적 공천을 할 때에는, 시민불복종과 같은 저항권을 행사해서라도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만 제대로 된 주권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중남구 주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언제까지 초선의 무덤 만들기를 수수방관할 것인가. 남구 살림과 대구정치를 살릴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를 잘 살펴볼 일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