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3·9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결별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송영길 대표 등이 김 전 위원장을 만나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김 전 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을 경계하며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대권주자들의 러브콜에 김 전 위원장의 행보가 대선 막판 변수로 재부상하는 모양새다. 김 전 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경우 중도층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 국힘 당원인 ‘정치9단’ 김종인, 이재명과 심야회동 뒷말 무성
- 중도 외연확장 노린 이재명, 오락가락 김종인의 최후의 선택 임박
‘여의도 차르’로 불리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선대위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지난 1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매머드 선대위 해체를 선언하면서 ‘윤석열-김종인’은 결별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김 전 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박용진 의원은 국민의힘 선대위에서 하차한 김 전 위원장을 지난 1월 12일 만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박 의원에 이어 김 전 위원장을 비공개로 만나 “도와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회동 이후 지난달 31일 송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에) 나라를 위해 도와달라고 했다”며 “이 후보에 대해서는 김 전 위원장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신다”고 비공개 회동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과 서먹한 金, 與 끝없는 러브콜
‘통합정부-국민내각-책임총리’ 등의 콘셉트로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쓰겠다고 밝혀온 이 후보도 김 전 위원장 영입에 적극적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위원장을) 기회가 될 때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김 전 위원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역량 있는 정치계의 어른이셔서 자주 연락드린다”면서 “연락을 드리면 필요한 조언도 해주시고 가야 할 길도 제시해주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잇따른 러브콜에 힘입어 김 전 위원장과 이 후보가 만났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1박 2일 부산 일정을 마친 지난 6일 오후 김 전 위원장을 만났다. 회동에는 최재천 전 의원만 배석했고, 이 후보의 비서실장을 비롯한 측근 인사도 회동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김 전 위원장과의 회동에 대해 “평소 가깝게 모시던 분이라 신년이고 해서 조언도 들을 겸 만났다”며 “세부적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함구했다. 김 전 위원장도 “특별히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두 사람은 정치적 의미를 둘 게 없다고 말했지만 이 후보가 아내 김혜경씨를 둘러싼 의혹으로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정치적 조언을 구하는 자리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김 전 위원장과 국민의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김 위원장은 이 후보와의 회동 전 윤 후보 아내 김건희씨 녹취록에서 언급된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건희씨는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이 윤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과 관련, “본인이 오고 싶어 했다”며 “왜 안 오고 싶겠어. 먹을 거 있는 잔치판에 오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김건희씨에 대해) 말을 조심성 없이 함부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전후 사정도 모르고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도와달라고 그래서 도와주려고 생각하면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며 “‘기대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런 불쾌감을 주면 나는 더 이상 같이 협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게 그런 것”이라고도 했다.
이 때문에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가 내민 손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후보 측 인사는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에 대해 예전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해왔다”며 “이 후보도 김 전 위원장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조합도 “잘 맞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는 2016년 박근혜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던 김 전 위원장의 권유로 단식을 중단했던 인연이 있다.
“金, 국민의힘 당원”, 민주당 견제 나선 국힘 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김 전 위원장 러브콜에 긴장하면서도 여권의 희망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 회동으로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를 우회 지원하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며 “안그래도 조금 전 제가 (김 전 위원자에게) 전화를 드렸다”며 김 전 위원장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하 의원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냐’고 여쭤보니 (김 전 위원장 말이) ‘그냥 찾아와서 만났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딱 잘라 말씀하시더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전 위원장 말을 볼 때) 민주당에서 지금 희망사항으로 꿈꾸고 있는 일(김 전 위원장의 지원)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성일종 의원도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김 전 위원장은 정권교체라는 것에 뜻을 함께하고 계신다”며 “이 후보 같은 경우 김 전 위원장이 생각하는 철학과 많이 어긋나 있는 후보라 어떤 지원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고 일축했다.
특히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을 종로로 전략공천하자는 말도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을 여당에 빼앗기면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계산에서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오랜 시간 종로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해 온 만큼 종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결국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서울 종로에 전략공천하면서 김 전 위원장을 묶어둘 수 있는 전략 하나는 사라지게 됐다.
이처럼 여야가 김 전 위원장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중도층 공략은 물론 후보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선 20여일을 앞두고 초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중도층이 대선 승패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한다면 김 전 위원장이 윤 후보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중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윤 후보가 경제 정책 등 국정 운영에 무능하다거나 배은망덕하다는 비호감 이미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이 후보로서는 경제 전문가인 김 전 위원장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를 논의한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지면서 ‘준비된 경제대통령’이라는 인물론을 더욱 부각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윤 후보 측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으로 합류하는 것을 적극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의 영향력이 과대포장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윤 후보 지지율이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한 후 상승했기 때문이다.
거리두기 나선 金, 막판 어느 후보 지지할까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출간 기념행사 인사말을 통해 “지금 후보들은 다 ‘나는 역대 대통령과 다를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다 똑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 미리 얘기한다”며 “어차피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당선될 텐데 누가 되더라도 나라의 앞날이 암울하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누구는 가족과 이념집단이, 누군가는 일부 측근이 문고리 행세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한쪽 후보가 당선되면 문재인 정부보다 더욱 폭주할 것이 명백하다. 나라를 더욱 둘로 갈라놓고 야당은 존재 의미조차 사라져버릴 것”이라며 “다른 한쪽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그렇다. 우리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극단의 여소야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선거 막판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대선을 10일 앞두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