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전직 대통령들을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는 지난해 대선국면 본격화를 앞두고 별세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무관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제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늘 1·2위를 다툴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여야 모두 노무현 향수를 자극하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여권은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야권은 중도 외연확장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97년 대선을 앞두고 IMF 경제위기로 촉발된 박정희 향수는 근대화 시절 고도 성장기라는 상징성 탓에 대선 때마다 여야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여권은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냉정히 평가하면서 경제성장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박정희 재평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비판에 박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이미지를 대비시키면서 정권심판론 확산을 노리고 있다.

초박빙 대선 여파이재명·윤석열·안철수 노무현향수 자극
, 박정희 재평가 눈길속 말바꾸기 논란도

여야의 이러한 전략은 기존 정치 상식과는 다소 배치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로 평가해왔다. 국민의힘 역시 노 전 대통령을 부동산 실패와 국민통합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절하해왔다. 최근 평가는 극적이다. 민주당은 박 전 대통령을,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노무현 향수 자극은 물론 박정희 재평가에도 적극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대선 승기를 잡기 위한 외연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리하면서 표심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대 정당의 양강후보만이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노무현·박정희 향수를 자극하시면서 지지율 상승과 대선완주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행보는 20대 대선이 불고 20여일 안팎으로 다가온 가운데 초박빙 판세가 이어지면서 최후의 한 표까지 얻기 위한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선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온 전직 대통령 소환을 둘러싼 여야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를 마치고 너럭바위를 어루만지고 있다. 2022.02.06. 뉴 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를 마치고 너럭바위를 어루만지고 있다. 2022.02.06. 뉴 시스

·이어 까지너도나도 향수자극

노무현 향수 자극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한국정치에서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분열의 정치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렸지만 비극적 서거 이후에는 재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라크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은 지지층의 반대에도 국익을 위한 결단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통합없는 분열의 정치 상황에서 여야 모두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는 이유다.

지난 6일 이재명 후보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30%대 박스권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부인 김혜경씨의 황제의전 의혹이라는 악재로 어려움을 겪어온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앞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헌화와 분향을 마친 이 후보는 몸을 떨면서 흐느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이후 즉석연설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은 노무현의 꿈이고 문재인의 꿈이고 이재명의 영원한 꿈이라고 강조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이어 4기 민주정부인 이재명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내고, 3기 민주정부의 공과를 모두 온전히 떠안고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잘못된 점을 고치면서 진화된 새로운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도 노무현 향수 자극에 나섰다. 윤 후보는 지난 5일 제주 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이 지지기반이던 진보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사안이다. 윤 후보는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의 필수적 요소다. 무장과 평화가 함께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을 인용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고뇌와 갈등을 가슴에 새긴다고 의지를 다졌다. 윤 후보는 이 과정에서 말문을 잇지 못하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정권교체행동위가 공개한 동영상에서도 현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기라고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는 차기 지지율 경쟁에서 이 후보를 소폭 앞서가고 있지만 대세론의 승기를 완전히 잡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합리적 진보층까지 결집하려는 시도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윤 후보의 애정은 부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김씨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후보의 성격과 관련, “너무 순진하고, 영화 보면 맨날 운다. 노무현 영화 보고 혼자 2시간 동안 울었다“(윤 후보가) 노무현을 너무 좋아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단일화 압박에 시달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노무현향수 자극에 공을 들이고 있다. 비호감 대선으로 불리는 거대 양당 후보의 진흙탕 네거티브에 맞서 본인만의 차별성을 강조한 셈이다. 안 후보는 지난 7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차별과 배제와 싸우면서, 국민통합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노무현 대통령의 인생과 정치역정이 생각났다노무현의 꿈이었고 우리 모두의 희망인 나라를 안철수가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당시 8명의 국민대표 중 한 명으로 초청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아무리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바보 노무현'의 길을 안철수는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2021.11.11. 뉴시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2021.11.11. 뉴시스

, 박정희 재평가전두환 옹호발언 모두 곤혹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존하는 여야의 정치적 뿌리다. 여야 대선경선 과정에서 보면 쉽게 증명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영남지역 경선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성과를 칭송했다. 호남지역 경선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번 대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당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다. 이재명 후보는 물론 송영길 대표, 친문진영의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까지 나섰다. 대선승리를 위한 동진전략의 일환이다. 호남에서마저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영남에서 일정 수준의 이상의 득표에 실패할 경우 대선승리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과 관련, “인권 침해, 민주주의 파괴, 불법 정치의 명백한 과오가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산업화를 통해 경제 대국으로 만든 공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대구·경북이 낳은, 평가는 갈리지만 매우 눈에 띄는 정치인이라고 호평했다. 송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이 포스코를 만든 것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초가 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북 김천시 추풍령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을 방문하고 있다. 2021.12.12.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북 김천시 추풍령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을 방문하고 있다. 2021.12.12. 뉴시스

이 전 대표 역시 절대 빈곤의 탈출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읽고 열심히 일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후 90년대까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호남 지지율에 비상이 걸린 이 후보는 과거 영호남 격차를 언급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자기 통치 구도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경상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전라도는 일부 소외시켜서 싸움시킨 결과란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언급, 말바꾸기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윤 후보는 보수정당 대선후보인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호평을 이어왔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와 관련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된 기적은 이분께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국민과 함께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다시 한번 거인의 숨결을 느끼면서 숙연한 기분이 든다고 극찬했다. 앞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학기술과 수출입국의 길을 제시하며 부국강병과 고도성장의 기반을 구축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따라 국민과 함께 번영의 미래를 만들겠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의 거센 비난은 여전히 부담이다. 윤 후보는 지난해 국민의힘 경선 시절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항의로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과거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한 윤 후보에 대한 일부 보수 지지층의 반감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아울러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조명받지 못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대선국면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윤석열 후보는 물론 이재명 후보 모두 곤혹을 치렀다.

특히 윤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 잘했다는 분들이 있다.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는 이른바 전두환 옹호발언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경선 라이벌이었던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마저 망언 중의 망언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거센 후폭풍이 일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이른바 개사과논란의 역풍으로 윤 후보는 정치입문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후보 역시 엇갈린 전두환 전 대통령 평가로 눈총을 받았다. 정치적 열세 지역인 TK표심 공략을 위한 것이었지만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발언에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공세에 나섰지만 이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이 후보는 총칼로 국민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중대범죄라고 전제하면서도 전두환이 삼저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1.10.26.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1.10.26. 뉴시스

여야 초박빙 타개책집토기 찍고 산토끼 공략

여야 후보들의 전직 대통령 평가에서 드러난 점은 집토끼 사수산토끼 공략이다. 전통적 지지층의 결속을 공고하게 다지면서 대선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이나 부동층의 외연확대를 위해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87년 대선 이후 10년 단위로 보수·진보진영이 교대로 집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선과정에서 상대 진영을 완전히 배척하는 것은 국민통합적 관점은 물론 선거전략상으로도 사실상 마이너스 요인이다. 대선 승리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보수·진보 진영 각각의 정체성 훼손이라는 위험부담마저 감수한 채 모든 카드를 사실상 총동원하는 셈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여야 후보들의 연이은 전직 대통령 소환은 차기 대선 득표전략과 밀접한 연장선상에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국면에서 가장 많이 소환되는 전직 대통령은 국민적 평가 또한 높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가 한국정책과학원 의뢰로 실시한 역대 대통령 호감도조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32.2%1, 노무현 전 대통령이 24.0%2위를 각각 기록한 바 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12.6%), 김대중(7.9%) 이명박(7.7%) 박근혜(2.7%) 이승만(1.8%) 김영삼(1.5) 전두환(1.1%) 노태우(0.4%) 전 대통령 등의 순이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20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초읽기에 접어든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여야간 초박빙 구도 이어지는 데다가 최대 변수인 후보단일화 문제마저 오리무중의 상황이라면서 이재명·윤석열·안철수 후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노무현향수 자극에 나선 것을 비호감 대선구도에 표심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현대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전직 대통령은 보수진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진보진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서 대선판세가 요동칠수록 기존 지지층을 다지면서 각각 상대 진영의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외연확대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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