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등 우려...삼성·LG 등 생산 차질 불가피

 

지난 1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단결의 날'을 기념하는 주민이 모여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뉴시스] [뉴시스]
지난 1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단결의 날'을 기념하는 주민이 모여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경제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쟁 임박'이라는 경고가 계속되면서 초긴장 상태다. 특히 이번 충돌이 원자재 가격과 환율, 금리 상승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우려와 함께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열린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수출 기업과 현지 진출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과 함께 에너지, 원자재, 곡물 등의 수급 불안에 선제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정세불안이 더욱 심화할 경우 원자재 등 공급망 차질, 실물경제 회복세 제약,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 수출 둔화 등으로 이어져 무역수지 적자...원화 약세도
 - 정부, 러시아·우크라니아 일촉즉발 상황에 "지속 보완할 것"


최근 우크라이나 인근 러-서방 간 병력증강 및 군사훈련 강화, 주요국 대사관 철수 명령 등 군사적 긴장이 악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시장의 큰손일 뿐 아니라 유럽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40%를 공급하는 국가다.

동유럽은 이미 유럽연합 내에서 제조업 생산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원은 반도체와 전기차 공급망 대란을 가져올 정도로 세계 경제에 중요하다. 지난 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제 원유가격 기준으로 여겨지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 배럴당 89.36달러를 기록하며 올해 들어서만 20% 가까이 뛰었다.

원유뿐 아니라 다른 곡물 가격도 급등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카자흐스탄·루마니아와 함께 세계 4대 곡물 수출국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지난 1월 135.7을 기록해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던 지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 무력 충돌 땐 에너지 시장 직격탄

이 같은 원자재 가격 급등세에 국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수익성에 발목이 붙잡혔다. 여기다 원·달러 환율까지 1200원을 돌파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지에 공장을 운영 중인 기업은 주재원을 철수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후폭풍에 대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러시아의 원유 수출 차질 우려가 유가를 뒤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국제유가가 12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에너지 가격 급등은 국내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는 원료비 지출 부담이 늘어나게 되며, 석유화학 업계도 원재료 상승 압박이 가중된다. 정유업계는 유가 급등 시 단기적으로는 재고 관련 이익이 커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요 위축 피해를 볼 수 있다.

코트라(KOTRA) 우크라이나 키예프 무역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 진출한 우리 주요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인터내셔널, 한국타이어, 오스템임플란트 등이다. 이들 기업은 현지에 대규모 생산공장 등은 운영하지 않고, 도소매·유통·물류업 등을 취급 중이다. 

이 중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생산한다.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두고 있다. 경제제재가 시작되면 여기서 만들어진 제품은 현지 소비 외에는 팔 방법이 없어진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 침공이 불러올 미국 제재 등 파급 효과다. 미·유럽 등 서방이 경제제재나 수출 제한 등을 가하면 국내 기업들이 영향권에 들 수 있는데 이에 따른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이 러시아에 반도체 제재를 거론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영향권에 들 수 있고, 수출입 제제 발동 시 유럽으로부터 부품 공급 문제도 불거지는 등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국내 증시도 파랗게 질렸다. 코스피는 장중 2700선 아래로 내려갔고, 코스닥은 3%에 가까운 낙폭을 보였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3.23포인트(1.57%) 하락한 2704.48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 지수는 24.63포인트(2.81%) 빠진 852.79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가 장중 2700선을 뚫고 내려간 것은 지난달 28일 이후 8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주말 사이 우크라이나 관련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투자심리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증시 모두 약세였다.

하인환 KB 증권 연구원은 “연준 긴축 이슈와 함께 우크라니아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이날 지수 하락으로 이어졌다”면서 “당분간 추세적인 반등은 어려워 보이고 3월 FOMC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등락을 반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화되거나 장기화하면 과거 1970~1980년대 석유파동처럼 원유 공급 충격에 의한 하이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국면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며"이 경우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보다 먼저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이 높고, 주가수익비율 하락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경제에는 안보 없다. 시급한 대비 필요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정세 불안이 고조되고 있어 시급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도 강화해 주기 바란다"며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즉각 시행하고, 최악의 상황에도 면밀히 대비를 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출 기업과 현지 진출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과 함께 에너지, 원자재, 곡물 등의 수급 불안에 선제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며 "수급 안정화 방안과 시장안정조치 등 비상 계획을 철저히 점검하고,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한 대응계획을 분야별로 철저히 세워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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