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화 <백투더 퓨처>마티라는 소년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겪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원래 마티는 그 나이 또래가 그렇듯, 욱하는 성질이 있었다. 특히 자신에게 촌닭’-영어 대사로는 치킨, 겁쟁이라는 뜻이란다-이라고 부르면 참지 못하고 사건에 휘말리곤 했다. 그런 마티가 미래로 가서 자신의 30년 후의 모습을 본다. 미래의 자신은 루저가 된 채 형편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역시 촌닭이란 말에 욱했던 결과였다. 성질을 못 이긴 채 또래들과 자동차 경주를 하다 사고를 냈고, 그 과정에서 팔 한 쪽을 못 쓰게 되는 바람에 원래 하려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자기의 미래를 보면서 마티는 깨달음을 얻는다.

시 현재로 돌아온 마티, 그에게 또래들이 자동차 경주를 제안하고, 마티가 싫다고 하자 촌닭이라 부르며 그를 도발한다. 하지만 마티는 응하는 척하다 그 자리를 피해 버리며, 그 순간 마티의 미래는 바뀐다. 영화 초반에 철없던 아이였던 마티가 영화 끝부분에선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판에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성장을 거부한 채 치킨게임에 임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젊은 애들이나 할법한 치킨게임을 하자며 자신의 지위를 걸고, 심지어 목숨을 베팅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분이 오세훈 현 서울시장, 그는 이전 시장이던 2011,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자신의 직을 걸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고, 그 후 서울은 보궐선거 당선자에 의해 10년 가까운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그가 다시 시장 도전에 나선 20214, LH 사태로 인해 승산이 희박해진 여당은 특기인 네거티브로 일관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오 후보의 셀프보상논란이었다. 오세훈이 과거 서울시장을 하던 시절 부인이 가진 내곡동 땅을 '주택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해 많은 보상을 받았다는 내용, 그러자 오세훈은 사퇴빵으로 응수한다. "이 지역이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지정되는 데 관여했다면, 바로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한 것이다. 지지율에서 뒤졌던 박영선 후보는 그 후 다른 건 다 팽개친 채 이 의혹의 규명에만 매달렸다.

정책선거는 실종됐고, 오 후보가 내곡동 측량을 간 날 생태탕을 먹었는가, 흰 바지에 페라가모를 신었냐가 선거의 화두가 됐다. 오 후보가 겨우 당선되기는 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지지자들은 훗날 생떼탕으로 불린 이 사태로 인해 선거기간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대선이 한창인 20222, 토론회에 나선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를 대장동의 주범으로 모는 적반하장 공세를 폈다. 김만배와 정모 회계사 등 대장동 관련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만든 녹취록이 그 근거였는데, 그마저도 앞뒤 맥락은 다 자른 채 윤석열은 죽어같은 일부 문구만 끄집어낸 치사한 공격이었다.

참다못한 윤 후보가 반격을 펼친다. “그 사람들은 이재명 후보의 측근이고 난 십 년간 본 적도 없다. 그 녹취록 끝부분 가면 이재명 게이트란 말을 김만배가 한다는데, 그것도 포함해서 말하는 게 어떠냐?” 역공을 당한 이 후보가 발끈한 나머지 내건 게 바로 사퇴빵, “그런 말이 녹취록에 있다고요? 그게 허위사실이면 후보 사퇴하시겠습니까?” 녹취록에 이재명 게이트가 언급됐다는 건 이전 언론 보도에도 나온 바 있지만, 이슈가 안 됐기에 이 후보가 몰랐던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 윤 후보는 그만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슬그머니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 토론 직후 일제히 나온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게이트언급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윤 후보의 대응을 아쉬워했다. ‘그 말이 녹취록에 있으면 이 후보님이 후보를 사퇴하시겠습니까?’라고 역공을 펼쳤다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오 시장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치킨게임은 선거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바람직하지 않은 구태다. 가뜩이나 네거티브가 지배하던 선거판에 사퇴 공방까지 더해진다면, 정치에 대해 혐오감만 늘어나지 않겠는가? 게다가 게이트입구에서 지킨다는 의미라 해석하는 여당의 행태에서 보듯, 설령 윤 후보가 치킨게임에서 이겼다 해도 이 후보가 사퇴할 리도 없다. 그렇게 본다면 스타일은 구겼지만, 이 후보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넘어간 윤 후보의 선택은 현명했다. 최소한 정치만큼은, 어른들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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