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격리자 투표서 선관위 대처 논란…수요 예측 실패 원인 지목
기표지 투표함 투입 대신 선거사무원 전달 투표…‘직접‧비밀투표’ 원칙 훼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도마에 오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긴급회의를 통해 본투표 당일 확진자 투표 방침을 변경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4~5일 이틀간 치러진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6.9%라는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며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그러나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에서 선관위의 대처가 문제로 떠오르면서, 사전투표의 역대급 ‘흥행기록’도 빛이 바랬다.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5일, 전국 각지의 투표소에서 선관위의 부실 관리 사례가 속출했다. 선관위 측 규정상 확진‧격리 판정을 받은 유권자들은 투표함에 자신의 표를 직접 넣을 수 없었다. 별도의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기표지를 선거사무원이 받아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됐다. 직접투표 및 비밀투표 원칙과 공직선거법에 배치되는 방식으로, 현장에서도 항의가 이어졌다. 

기표지 운반 방식도 문제가 됐다. 임시 기표소 봉투를 투표함까지 옮길 때 쓸 물품을 정해두지 않으면서, 플라스틱 바구니‧종이박스‧쇼핑백에 이어 쓰레기봉투까지 기표지를 담아두는 보관함으로 등장했다. 확진자에 배부된 임시 기표소 봉투에서 이미 기표된 투표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 장의 기표지만 담아야 봉투에 여러 장을 한꺼번에 담아 옮기는 과정에서, 선거사무원의 실수로 일부 기표지가 봉투에 남은 것이다. 투표용지 뒷면에 선거인의 성명을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

선관위가 확진자‧격리자 투표 수요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이어졌다. 선관위의 예측 이상으로 사람이 몰리면서, 확진자들이 야외에서 줄을 선 채 1~2시간씩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참을 기다리고도, 투표소에서의 혼란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확진자와 일반 유권자의 동선이 겹치기도 했다.

선관위의 허술한 대처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이 선관위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5일 국민의힘이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데 이어, 6일에는 여당도 항의 방문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성명을 통해 선관위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하며 “선관위가 그 경위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 관계자는 선관위가 투표에 참여한 확진자·격리자의 정확한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 사태의 핵심은 예측을 잘못한 것”이라며 “지난 2월 국회 정개특위와 행안위를 열어 문제를 세심하게 따졌었다.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이 최대 나올 수 있는 (확진자)의 두 배까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 이게 더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당초 “원칙대로 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항의 방문에서 사무총장을 만나본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을 지적하는 말에 “법과 원칙대로 했다. 법대로 하라. 임시기표소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고 했고, 기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한 확진자들이 행동을 ‘난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6일 오전 낸 입장문에서도 선관위는 사전투표 부실 대응에 사과하면서도 “임시 기표소 투표 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절대 부정의 소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의 항의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선관위 측은 대통령까지 나서 질책하는 등 선관위의 부실 대처 비판으로 여론이 모아지자 태도를 바꿨다. 지난 6일 서영교 행안위원장, 백혜련·이해식 민주당 의원, 박완수·이영 국민의힘 의원 등의 참석 하에 국회에서 열린 사전투표 부실 논란 관련 중앙선관위 현안보고에서, 박찬진 선관위 사무차장은 “의원님들이 오늘 말씀하신 것을 100% 수용한다”며 “3월 9일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차질 없이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다시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믿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번에 제기된 각종 문제점이 선거일에는 재발하지 않도록 보다 세밀하게 준비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7일 오전에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선관위의 방침 변경에 따라, 본투표에 참여하는 확진자‧격리자는 일반 유권자와 같이 직접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는 방식으로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일반 유권자와는 시간대를 나눠 동선을 분리하고, 기표대와 관리자를 추가 배치해 대기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선관위는 제시했다. 임시 기표소 봉투에 담겨 확진 유권자에 배부됐던 기표지에 대해서는 유효표 처리로 방침을 정했다.

여전히, 선관위의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확진자 투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한 것과 투표용지를 받고도 투표소에서의 혼란과 장시간 대기 등으로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확진자·격리자의 본투표 가능 여부에 대해 선관위는 명확한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사무처장의 유권자 비하 표현이나 사태의 책임을 묻는 일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임시기표소 봉투에 남겨졌던 표에 대해) 가능한 유효표로 처리하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고 했다. 확진자 투표율을 파악하는 일에 대해서는 “확진‧외출 허가 문자를 통해 확진자 여부를 확인했고, 본투표에서도 절차를 거칠 것”이라며 “별도로 추계를 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야당 등이 책임자의 거취 표명을 요구한 데 대해서는 “당장 선거를 준비해서 이상 없게 치르는 것이 우선”이라며 현재로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세환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사과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입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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