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 막판까지 초박빙 혼전 양상이 전개됐지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득표율 10%포인트 차이까지 날 수 있다며 안정적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이준석 대표는 대선 기간 ‘비단주머니’를 언급하며 윤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위한 필승 전략 구사에 자신감을 표출해왔다. 그러나 대선 결과 윤 당선인이 가까스로 승리하면서 이준석 대표가 세대·젠더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과 함께 책임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 윤석열 0.73%포인트 차이 신승은 성난 ‘여성 표심’ 분노 때문?
- 이준석의 ‘젠더 갈등’ 부추기기, ‘갈라치기 정치’ 비판 거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가 펼쳐졌던 20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대선 결과 윤석열 당선인(48.56%)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47.83%)에게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정권교체 민심이 50%를 넘었음에도 윤 당선인은 역대 최소 득표율 격차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를 거뒀지만 ‘반쪽 승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쏠리고 있다.
이 대표는 대선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셨던 분들이 결국 투표 성향을 정하게 되면 많게는 한 10%포인트까지 차이가 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적중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선 기간 필승 비법이 담긴 ‘비단주머니’로 윤 당선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겠다며 자신감을 표출해왔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당선인을 만난 후 기자들과 만나 “속칭 ‘비단주머니’라 불렸던 준비된 일들을 후보에게 공개했고, 이것들이 구체화할 수 있도록 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절차에 대해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이준석의 ‘세대포위론’ 실패
이 대표가 비단주머니에서 꺼내든 필승 전략 중 하나는 세대포위론, 20대 남성(이대남) 공략이었다. 이는 ‘세대와 성별’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세대포위론은 60대 이상 지지층에 2030 표심을 합쳐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는 4050 세대를 둘러싸자는 전략을 뜻한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YTN에서 “2030 세대와 50대 후반 이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유 자체가 애초에 이게 가족으로 보통 형성된 단위다. 20~30년 정도의 세대 격차를 가지고, 굉장히 강한 결합력을 보이기 때문에 이 세대포위론이라는 것이 사실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를 토대로 분석해봤을 때, 그의 세대포위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출구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약 ±0.8%포인트) 결과를 세대별로 보면 ▲20대 이하 이재명 47.8%, 윤석열 45.5% ▲30대 이재명 46.3%, 윤석열 48.1% ▲40대 이재명 60.5%, 윤석열 35.4% ▲50대 이재명 52.4%, 윤석열 43.9% ▲60대 이상 이재명 30.8%, 윤석열 67.1%로 예측됐다.
윤 당선인이 전통적 국민의힘 지지층인 60대 이상에서만 이재명 후보에게 큰 격차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윤 당선인은 30대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고, 20대에서는 윤 당선인이 뒤졌다.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이 사실상 실패한 것은 그가 대선 기간 내내 반(反)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일부 20대 남성 공략에 집중하면서 여성 유권자들의 반감을 불러온 것이 주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기간 젊은 남성 유권자층에 경도된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지난해 7월에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라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고, 지난 1월14일에는 “성 중립적 공약을 내야 남성 지지층에서 강한 반등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언행은 이준석 대표의 입장과 궤를 같이 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갈등을 겪던 이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하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강화’ 공약을 내걸고 나섰다. 윤 당선인은 대선 하루 전날인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도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 공약을 페이스북에 다시 올렸다.
이준석 대표의 언행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갈라치기 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 대표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저는 그런 (여성 유권자들의 이재명 후보 지지 성향 관련)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는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여성표 이재명 쏠려… ‘젠더갈등’ 역풍?
대선이 끝난 후 이 대표의 이 같은 언행이 결국 역풍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윤 당선인보다 이재명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남성은 ▲20대 이하 이재명 36.3%, 윤석열 58.7% ▲30대 이재명 42.6%, 윤석열 52.8% ▲40대 이재명 61.0%, 윤석열 35.2% ▲50대 이재명 55.0%, 윤석열 41.8% ▲60대 이상 이재명 30.2%, 윤석열 67.4%로 집계됐다.
여성은 ▲20대 이하 이재명 58.0%, 윤석열 33.8% ▲30대 이재명 49.7%, 윤석열 43.8% ▲40대 이재명 60.0%, 윤석열 35.6% ▲50대 이재명 50.1%, 윤석열 45.8% ▲60대 이상 이재명 31.3%, 윤석열 66.8%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이준석 대표가 비단주머니에서 꺼내든 필승 전략이 사실상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들끓는 정권교체 민심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당선인이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겨우 승리를 거둔 원인 중 하나로 이준석 대표의 ‘갈라치기 정치’가 꼽히고 있다. 이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쇄도하고 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11일 YTN 라디오에서 “이준석 대표가 얘기했던 세대포위론은 결과적으로는 선거 결과 보면 실패한 거 아닌가”라며 “2030세대 여성은 민주당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 아닌가. 이제는 남성, 여성에게 갈라치기를 해서 젠더 갈등 부추기는 거 정치권이 하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n번방 사건’ 공론화에 앞장섰던 ‘추적단 불꽃’ 출신인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KBS라디오에서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국민의힘은 계속해서 여성을 배제, 혐오하는 모습을 선거 전략으로 삼아왔고 선거 전날이던 여성의날에도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다”며 “많은 여성분들이 분노하셔서 투표로 심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준석 대표의 그런 혐오 정치 전략, 이제 뭐 세대포위론은 완전히 실패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책임을 느끼고 이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정치권에서 좀 떠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갈라치기 정치’ 비판 봇물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당선인의 신승은 이준석식 반여성 극우 선동 정치에 대한 파산 선고”라며 “2030여성들은 다시금 성평등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헌법 가치라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옹호론이 나오고 있지만 비판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에서 “저 개인적으론 조금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며 “어쨌든 젊은 여성, 20대 특히 30대 초반 여성들에게 좀 더 소프트하게 접근하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싶다”고 밝혔다.
정태근 국민의힘 전 정무대응실장은 CBS라디오에서 “2030 남성을 겨냥한 캠페인이 오히려 반작용을 가져왔다. 올바르지 못하고 성과도 못 낸 전략”이라며 “20대 여성들도 정권교체 욕구가 있었는데 소탐대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는 당 안팎의 비판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KBS광주 라디오 ‘출발 무등의 아침’ 인터뷰에서 ‘20대 남성을 겨냥한 선거 전략이 남녀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 목소리에 대해 “승리의 원흉을 찾자는 것인지 뭔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에 와서 그런 것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한다는 건 그냥 사무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