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중 대통령의 초법적 독단과 “궁궐식 청와대 구조”를 해체하겠다며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검토 결과 광화문 청사로의 이전은 보안과 경호 문제 등으로 포기했고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옮기기로 가닥을 잡은 듯싶다. 국방부 청사로 갈 경우 이전 비용도 광화문보다 3분 1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초법적 독단은 민주주의의 독이다.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기 위해선 청와대 이전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대통령과 국민의 정치문화 의식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민주의식 향상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긴다고 해도 ‘제왕적 대통령’의 독단은 변치 않는다. 미국 정치학자 가브리얼 아몬드와 시드니 버바의 지적대로 법률*제도가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민주의식이 약하면 민주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데서 그렇다. 

한국도 제도상 3권 분립은 선진국 못지않게 잘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인 대통령과 국민은 선진 민주국가만큼 민주화되지 못했다. 대통령 보좌관이나 각료는 자신들을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대통령의 가신(家臣)으로 착각한다. 미국 해병대 출신 다코타 마이어(23) 씨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최고무공훈장 수여자로 결정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알리려는 대통령의 전화를 ‘일과 시간’이라며 거절했다. 마이어가 대통령의 전화보다 자신의 회사 ‘일과 시간’이 더 소중함을 일깨운 전화 거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며 대통령의 초법적 독단을 거부했었다. 그는 처음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선 모든 참석자들과 함께 상의 벗고 노타이 차림으로 커피를 직접 찻잔에 딸아 마셨다. 그리고 “계급장 떼고 받아쓰지 말며 사전 결론 없이 토론하자”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회의는 얼마 못가 받아쓰기로 되돌아갔고 황제폐하의 어전회의(御前會議)로 경직되었다. 정부 정책은 대통령 한 마디에 손바닥처럼 뒤집혔다. 집권당 측은 대통령을 비판하면 “매국”으로 매도했다. 버바*아몬드가 적시한 대로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민주의식이 후진적인 탓이다. 

한국 정치문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지 못한다면, 청와대를 주민센터로 옮긴다고 해도 ‘제왕적 대통령’ 작태는 변할 수 없다. 대통령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용산 대통령 집무실은 또다시 ‘초법적 권위의 상징’으로 지탄되고 만다. 반대로 민주의식이 향상된다면 대통령이 지금의 청와대에서 계속 집무한다 해도 ‘제왕적 대통령’ 행태는 깨끗이 사라진다. 대통령 집무실을 바꿀 게 아니라 대통령 의식이 바뀌면 된다. 

다만 “궁궐식” 청와대 구조는 미국 백악관처럼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과 비서관*보좌관의 사무실들을 대통령 집무실 가까이 배치해야 한다. 222년 역사를 지닌 미국 백악관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관*보좌관 방들은 가까이 붙어있다. 23평 남짓한 작은 대통령 집무실 문은 중요 회의가 아닌 경우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된다. 대통령은 비서나 보좌관을 부르는 게 아니라 몇 걸음 떨어진 그들 방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한국도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기 위해선 대통령이 보좌관 방으로 찾아갈 정도로 민주의식이 선진화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조선조 600여 년 역사를 지녔고 외국 수뇌들이 경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복궁 뒷자락에 위치한다. 윤 당선인도 이 아름다운 청와대를 막대한 세금 들여가며 이전할 필요는 없다. 죄 없는 청와대 터를 탓할 게 아니라 후진적 민주의식을 벗어나면 대통령의 초법적 독단은 자연스레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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