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9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 역대급 박빙의 차로 분루를 삼켜야했다. 30만 기권표보다 적은 차이로 졌으니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이 후보는 당분간 지친 심신을 추스르면서 향후 진로를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정치재기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될 일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인데다 후보간 네거티브전 역시 역대급이었다. 그 후유증은 박빙의 차만큼 ‘대깨문’과 ‘일베’로 나뉘어 유권자들을 둘로 쪼개지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이 무산됐다. 실무적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양측의 입장이지만 서로 간 불신과 앙금의 결과로 풀이된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다. 국민대통합정부를 외쳤던 윤 당선인이지만 첫 단추부터 헝크러졌다. 

미래권력인 윤 당선인이 현재권력과 충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재명 후보는 착잡함을 넘어 두려울 것이다. 누가 봐도 윤 당선인과 참모 그룹은 권력에서 멀어지는 문 대통령보다 살아있는 이 후보를 견제할 공산이 높다. 그런데 현재권력과도 각을 세울 정도면 본인에게 가해질 정치적 보복과 사법적 잣대가 어떠할지 가늠하기도 힘들 것이다. 

윤 당선인은 구여권인사부터 문재인 정부 종사자, 합리적인 야당인사들까지 아우르는 협치와 대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측근 인사들 면면을 보면 문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의 앞날이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일단 검찰출신과 친MB계 인사가 다수다. 검사들은 검찰개혁으로 현정권에 대한 앙금이 있고 친MB계 인사들은 주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외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만 콕 집어서 특별사면을 해준 대통령에 대해 화가 나 있다. 윤 당선인은 대선내내 이재명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 후보는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정치재기관련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8월 전당대회에 나서 당 대표가 돼 당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들 입장에서는 구심점 없는 당보다 이 후보가 나서 선거를 진두지휘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8월 전당대회에 나서는  후보의 명분도 설 수 있다고 부추킨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 후보를 당선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만 정치 속성상 이 후보도 알면서 물리치기 쉽지 않다. 또한 야인으로 있기보다는 민주당 대표로서 직위를 득해야 새정부의 사법적 공격을 정치적 보복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172석이라는 방패막이도 절실하다. 

결국 주변 정치 환경은 이 후보를 조기 등판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다음날 ‘비단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닥칠 위기를 예감하고 조자룡에게 "어려울 때 꺼내보라"며 건네준 3개의 비단주머니를 본 딴 것이다. 금낭묘계(비단주머니에 든 묘한 계책)다. 이 대표는 실패했지만 현재 이 지사에게 절실한 상황이다. 

이 후보는 선택의 순간이 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자연인보다는 지방선거 역할론을 통해 8월 전당대회에 응할 수밖에 없으리라. 호랑이 등에 탄 이재명 후보, 잠시라도 쉴 수 없는 그의 정치적 운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의 처지와 흡사하다. 그의 운명을 건 정치적 선택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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