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총재 후보로 이창용 지명…박 수석 "금융시장 안정 기여할 분"
- 최장수 한은맨 '이주열' 총재, 마지막까지도 금리 인상 걱정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이달 말 임기를 마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임 후보로 청와대가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지명한 것과 관련해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청와대는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윤 당선인측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즉각 부인하고 있다. 가뜩이나 신구 권력간 갈등의 한 축으로 꼽히던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권을 두고 진실 공방까지 벌어면서 양측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한국은행 노조는 이 후보자 인선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 총재 지명 두고 최악의 진실게임

청와대는 23일 낮 12시10분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주은 한은 총재 후임으로 이 국장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이창용 새 후보 지명자 [뉴시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이창용 새 후보 지명자 [뉴시스]

박 수석은 이 후보자 인선 배경에 대해 "국내·국제 경제 및 금융·통화 분야에 대한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경제, 재정 및 금융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와 감각을 바탕으로 국내외 경제, 금융 상황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화·신용 정책을 통해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가 당선인 측과의 교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여의도와 금융권에서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의 '신구 정권 신경전'이 수습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고, 앞서 한 차례 무산된 만남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하지만 당선인 측은 이날 한은 후보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인사 추천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한국은행 총재의 경우 윤 당선인은 특정 인사를 (청와대에) 추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선인 측은 언론 공지를 통해 "한국은행 총재 인사 관련,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장재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이날 통의동 인수위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창용씨 어때요'하니까 (제가) '좋은 분이죠'라고 한 게 끝(이다)"라며 "비토이고 아니고 얘기하기 전에 협의를 거쳐서 추천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재차 청와대를 비판했다.

- 이창용 후보자는 어떤 인물

이 후보자는 이론과 실무, 국제경험까지 두루 갖춘 경제ㆍ금융 전문가다. 전공은 거시경제학, 금융경제학, 한국경제학 등이다.  

2008∼2009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뒤 2011년부터 3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라 재직 중이다.

은성수 전 금융우원장과도 막연한 사이로 알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미국 워싱턴에 거주 중인 이 후보자는 오는 30일 귀국해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예정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 후보자가 오는 4월 1일에 맞춰 신임 총재로 취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인사청문회 과정이 최소 2~3주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음달 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사상 초유의 ‘총재 공백’ 상태에서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문 대통령이 지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은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일각에서는 한은 총재 인선을 청와대가 서두르는 건  한은 총재 인선을 양보하는 대신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를 강행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도 있다. 

감사위원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 사이 갈등의 뇌관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감사위원 6명 가운데 2명이 임기 만료로 공석이다. 감사위원 임기는 4년. 이번에 임명되는 감사위원은 윤 당선인의 임기 대부분을 함께 한다.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6명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는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다. 현재 문 대통령이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을 비롯해 3명이 친여 성향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각각 한 명씩 추천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윤 당선인 측은 대통령이 추천하는 감사위원에 대해서도 '비토권'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총재 인선이 양측 간 ‘진실 공방’ 양상으로 흐르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될 위험이 높아졌다. 또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도 불투명해졌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이 원하면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윤 당선인 측은 "신뢰가 회복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신·구 권력 간 추가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 이주열, 마지막도 "금리인상" 걱정 

한편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걸쳐 한국은행을 이끌던 이주열 총재는 2014년 4월 취임 후 8년만에 한국은행을 떠난다. 그는 23일 오후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 신뢰라는 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은 태생적으로 앞을 내다보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적시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늘 고민했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통화 완화의 축소가 필요하다며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인상을 예고했다"며 "우리는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대응함해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금리인상이 경제주체들에게는 금융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 경제는 훗날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게 과거 정책운용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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