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긴 글 쓰고 싶어 작가의 길 걷기 시작”

“대필 작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독서”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 주고 있다. 이번에는 작가를 꿈꾸는 10·20대 청년들의 멘토로 조성기 대필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성기 작가는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저는 글을 쓰고 읽는 일을 주로 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글쟁이”라며 “대필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대필 작가’는 조금 생소한 직업이기도 한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10년작 영화 <유령작가(The Ghost Writer)>를 보면 대필 작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참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작가는 기업과 정부 기관, 공공기관 혹은 도시의 역사, 학교의 역사 등 기업과 정부 기관, 도시를 비롯해 각종 조직의 역사를 정리하고 집필하는 프리랜스 작가이다. 정치인이나 경영인, 사회 명망가들의 자서전과 경영 에세이 등도 대필하고 부정기적으로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등 일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들이 거시적 역사를 기록한다면, 조성기 작가 같은 사사 작가들이 하는 일은 기업과 기관 등의 미시적 역사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과거 드라마 작가를 거쳐 잡지사 편집장 등도 역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필 작가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에는 소설을 쓰고 싶어 습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오랜 기간 시를 쓰며 동인 활동도 했지요. 어느 날 문득 방송 글이 쓰고 싶어 KBS 방송작가 선생님께 구성과 드라마를 배웠고 잠깐 일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 글로는 생활이 거의 되지 않아 잡지사에 들어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잡지부터 시작해 영화주간지 기자 생활을 했고, 그 외 문화, 교육, 라이프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잡지를 기획 창간해 편집장으로도 활약했는데요, 기사글보다 조금 더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던 차에 우연한 기회를 얻어 2005년부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작품을 의뢰하나요.

▲저의 작업 분야는 매우 다양해요.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기업 등에서 역사서를 의뢰받아 집필하며 개인의 경우 정치인과 기업 경영인의 자서전 혹은 경영스토리 등을 대필하고 있어요. 간혹 일반인들도 자서전을 부탁하기도 해요.

- 작업에 대한 의뢰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지나요.

▲저는 국내의 사사 전문회사 4~5곳에 계약이 되어 있어, 그 회사들이 맡은 프로젝트에 합류해 작업하고 있어요. 역사서의 경우 처음에는 기초 자료수집과 조사 및 분석부터 시작해 책의 전체 틀을 짜는 작업이 이뤄진 다음 전체 목차를 짜게 돼요. 그 후 심층 자료 분석과 취재, 인터뷰를 통해 보강자료를 확보한 후 집필에 들어갑니다. 역사서의 경우 보통 기획부터, 집필, 책 발간까지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2~3년이 걸리기도 하지요. 자서전이나 개인 출판의 기간은 역사서보다 상대적으로 짧아요.

- 대필 작가로 활동하시면서 특별히 기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히 꺼리는 것은 없으며,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내용과 수준이면 어떤 역사서든, 어떤 주제나 인물이든 부딪쳐 결과물을 만들어 내요. 물론 책으로 펴낼 수 있을 만큼의 합당한 사료적 가치가 있어야 하겠지요.

- 어떤 생각이나 현상이 글로 잘 표현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많이 읽는 거예요. 더불어 역사서를 기술하거나 자서전을 집필하려면 우선 많은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늘 공부하고 학습하는 자세를 취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문학 서적은 물론 정치, 철학, 역사,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인간에 대해 따뜻하고 주의 깊은 시선을 갖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 글이 잘되지 않을 때는, 여물지 못한 생각과 관념이 잘 정리되고 체계화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요. 더러는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주로 바다를 찾고 있어요.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말한 장 자크 루소처럼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한, 영화주간지 기자 출신이어서인지 일이 막힐 때 영화를 보며 푸는 때도 많아요. 그리스의 앙겔로풀로스나 타르코프스키 같은 정적인 감독의 영화나 상상력이 풍부한 컬트 무비의 거장인 데이비드 린치,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곤 하죠.

- 자신의 멋진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이 칭송받을 때 대필 작가로서 아쉽거나 억울하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그럴 때 어떤 식으로 해소하시나요.

▲아쉽거나 억울한 것은 전혀 없고, 의뢰인이 만족하면 저도 만족하는 스타일이에요.

- 언뜻 생각하기에 어떤 조직에 소속되지 않아 생활이 불규칙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일반인들은 흔히 작가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며 불규칙적으로 살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에 일과(글쓰기를 비롯한 업무)를 시작해 저녁 6~7시에는 종료하고 쉬어요. 일반인들의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대필과 관련한 요즘 트렌드나 추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트렌드나 추세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단, 요즘에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책을 스스로 써야겠다고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와 있는 만큼 글쓰기의 대중화가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

- 대필 작가로서 힘든 점이나 애로점은 무엇이고, 반대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역사서의 집필은 되도록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자서전이나 에세이처럼 인간의 깊은 내면적 심리나 감정을 캐치해야 하는 작업보다는 훨씬 쉬워요. 그러나 그만큼 사료에 충실해야 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자료 분석에 투입해야 해요.

반면, 자서전 집필은 의뢰인의 내면에 들어가 완전히 그에게 몰입함으로써 온전히 그 자체가 되는 작업이기에 감정적 소모가 상당해요. 그 대신 자서전 작업은, 나 아닌 다른 한 인간에 대해 온전히 대리체험함으로써 집필이 끝났을 때 더 많이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그것이 대필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보람과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가장 선호하는 의뢰인과 가장 최악의 의뢰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특별히 선호하거나 꺼리는 의뢰인은 따로 없어요. 그러나 작업하기에 힘든 의뢰인은 종종 있지요. 진솔하게 자신의 모든 걸 솔직히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좋은 방향으로 꾸미는 사람이 가장 작업하기 힘든 케이스예요. 자신의 삶의 긍정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부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게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자서전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 작업을 의뢰받을 때나 작업하실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역사서도 마찬가지지만, 자서전 집필은 절대 의뢰인을 미화하거나 아름답고 멋지게 포장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의뢰인이 걸어온 길을 통해 그가 추구한 삶의 방식에서 가치를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지요. 예시가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상적인 인간이 되게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즉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보여줬던 ‘메토이소노’ 곧 ‘거룩하게 하기’의 일종이라고나 할까요?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

- 대필 작가로 활동하시면서 형성된 소신이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가치 없는 인생이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100명의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그럴듯한 100개의 이야기가 있으며 각자는 그 100가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나의 인생이 내게 가장 중요하듯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신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대필 작가로 살면서 얻게 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통해 배우며 그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혹자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범람할 미래사회에서도 살아남을 직업으로 ‘대필 작가’를 꼽는데, 대필 작가의 전망은 어떠한가요.

▲직업적 전망은 잘 모르겠지만, 대필 작가는 나중에라도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삶과 역사에 대한 간접 체험을 통해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으니까요. 특히 프로젝트마다 매번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에 대한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 대필 작가를 꿈꾸는 1020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듯 대필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독서입니다. 어느 분야이든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거나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성향이 자신에게 있다면 대필 작가로 활약하기에 바람직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더불어 꾸준히 글 쓰는 연습을 해야 해요. 옛말에 ‘공부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죠? 저는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생각해요. 진부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글을 잘 쓰는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대필 작가는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많은 이들이 도전해 보시고 그 즐거움의 결실을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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