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광화문시대 공약에도 경호 난제로 포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 박정희·노무현, 수도이전 통한 靑이전 추진
- 제왕적 권력 해체에도 안보공백·반대여론 변수

[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청와대 이전론이 대선 이후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대통령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결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해체하고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와 안보공백을 이유로 불가론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대선 이후 정권교체 과정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사상 초유의 사태다. 청와대 이전론은 역대 대통령들이 대선에서 모두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항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행정수도 이전을 내세워 청와대 이전을 추진했지만 좌초된 사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에는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주는 광화문 대통령을 약속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이전’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윤 당선인은 돌파할 수 있을까? 정치권과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전망은 엇갈린다.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윤 당선인의 추진력과 의지가 강력한 만큼 어떤 식으로는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 당선인은 오는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언했다. 현 정부의 반대로 취임 전 대통령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이 불가능해지면서 서울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에서 임기를 시작하겠다는 각오까지 내비쳤다. 반대여론은 변수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 정권교체기 어수선한 상황에서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왜 이사 문제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느냐는 격앙된 반대론도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이전은 신구권력의 정면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제왕적 권력 청 해체…윤석열식 정면돌파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다. 구중구궐로 상징되는 곳으로 민심과는 유리된 권력이다.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들이 해당 부처 장관을 지휘하면서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 집중된다.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민심에 어두워지고 ‘예스맨’과 다를 바 없는 소수의 참모진들에게 국정운영을 의지한다. 이는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국민과의 소통강화를 명분으로 탈(脫)청와대를 추구한 이유다. 

현 청와대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대통령이 일하는 본관과 생활공간인 관저 △오만찬 장소로 이용되는 영빈관 ▲외빈접견에 주로 사용되는 상춘재와 녹지원 ▲기자 상주공간인 춘추관 ▲청와대 참모진들의 업무공간인 비서동이 외딴 섬처럼 떨어져있다. 업무효율이 떨어지고 소통에도 장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비서동에 대통령집무실을 만들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이러한 폐해를 알았지만 개선하지 못했다. 경호상 난제와 보안 문제은 물론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도 걸림돌이었다. 윤 당선인도 애초 약속했던 대통령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무산과 관련, “기존 기관의 이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의 경호 조치에 수반되는 광화문 인근 시민들의 불편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고충을 토로할 정도였다. 

윤 당선인의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여권 내부에서 반대여론을 의식해 속도조절론이 나왔지만 윤 당선인의 의지는 확고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제왕적 권력 포기 선언과 더불어 임기 첫날부터 용산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유명한 어록도 남겼다. 윤 당선인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면서 “청와대를 온전히 국민께 개방해 돌려드리는 측면을 고려하면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하여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이전론은 단순히 대선 과정에서 표를 의식한 공약이 아니라 임기 시작과 더불어 실천하겠다는 의지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청와대 이전은 급조가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핵심 참모진들의 논의와 제안을 거쳐 윤 당선인이 고뇌 끝에 결단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여론에 밀릴 경우 청와대 이전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았다. 윤 당선인은 이와 관련,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민주당은 결사반대에 나섰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다른 곳을 다 놔두고 왜 하필 국방부로 가느냐. 왜 5월 9일 이전에 모두 이사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야·시해·탄핵·구속... 청이전 박정희·노무현의 실패

청와대 이전론은 풍수지리설과도 연관돼 있다. 한마디로 청와대 터가 나쁘다는 속설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과거 “청와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밝혔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나 퇴임 이후 불행했다. 하야, 시해, 탄핵, 구속 등 예외가 없었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인 승효상 건축가도 “청와대 관저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문제가 있어 옮겨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청와대의 모태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의 관저였다는 점에서 민족정기 차원에서라도 청와대 이전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이국땅인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서거하면서 18년 장기집권의 막을 내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문민정부 시절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사법처리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말 IMF 외환위기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말 3홍 아들비리로 고초를 겪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스스로 몸을 던지는 비극적 서거로 충격을 줬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탄핵사래로 87년 체제 이후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청와대 이전은 역대 정부에서도 추진했지만 대부분 무산됐다. 경호상 문제와 비용문제 등이 결정적이었다. 역설적으로 청와대 이전을 적극 추진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광화문대통령 시대위원회’를 신설, 청와대 이전을 검토했지만 백지화했다. 유홍준 교수는 이후 브리핑에서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고 무산 배경을 설명했다. 

단순히 청와대 이전만이 아니라 수도이전을 통한 매머드 구상이 추진된 적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다. 경제개발 시대 서울인구가 750만 명을 넘어서는 수도권 과밀화의 해소는 물론 물론 북한의 도발 우려 등 안보전략을 고려한 조치였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계획은 서거로 무산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과정에서 충청민심 공략의 일환으로 신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했다. 공약은 신의 한수였다. 노 전 대통령은 충청을 장악하면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올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의욕적으로 신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이전에 반대하는 수도권 민심의 반발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무산됐다. 

청와대. [뉴시스]
청와대. [뉴시스]

용산 이전시 역사적 이정표…안보공백·반대론 변수

청와대 이전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 이전이 성사될 경우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이 뒤바뀌는 것은 물론 민족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 속으로 걸어가는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다. 윤 당선인이 크고작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이전’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다. 

다만 난관도 적잖다. 혈세 낭비는 물론 일방통행에 졸속 추진이라는 반대여론과 안보공백론이 문제다. ‘청와대 이전’ 여론조사는 반대가 과반 이상이다. 한국갤럽의 3월 4주차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현 청와대 집무실 유지 53%, 용산 이전 36%로 각각 나타났다. 다른 여론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였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대국민 소통의지를 내비쳤다. 장 비서실장은 지난 25일 박홍근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청와대라는 절대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들과 함께 가겠다는 취지에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다”며 “ 왜 용산이냐’라는 부분에 설득할 시간이 모자랐다. 당선인과 실무자가 국민에게 설득하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보 공백도 걸림돌이다. 특히 오는 4월 중순 한반도 긴장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이라는 점과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역대 합참의장 11명이 “청와대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은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동을 초래해 정권 이양기의 안보 공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 이유다. 청와대는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안보 역량이 결집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지난 2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며 청와대의 용산이전 반대를 재확인했다. 

물론 여권의 안보공백론에는 반박도 적지않다. 수많은 북한의 도발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뜬금없는 이유로 발목잡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정확하게 안보 공백”이라고 꼬집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 폭파하는 것을 두고도 남북대화에만 목을 매던 문 정권이 이제 와서 안보를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인수위 측도 격앙된 반응이다. 청와대이전TF에서 활동 중인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대통령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안보 공백은 분명히 없다”며 “있지도 않은 안보공백을 운운하면서 자꾸 새 정부 정책과 출발을 방해하는 행위는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청와대 이전론이 제왕적 권력 해소와 국민과의 소통강화라는 본질은 사라진 채 신구권력의 정면충돌이나 6월 지방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시기의 문제이지 청와대 이전은 실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여야 모두 제왕적 권력의 분산과 국민 편익 증진이라는 백년대계의 입장에서 고민해 타협점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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