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억 5천만에 핵폭탄과 최첨단 무기를 갖춘 러시아는 2월24일 새벽 6시 4천400만의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3일 안에 함락될 걸고 예측했다. 북한의 6.25 남침 때 서울이 3일 만에 점령당했던 비극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버텼다. 이젠 깊숙이 쳐들어온 러시아군을 쫓아내고 있다. 기적 같다. 이 기적의 한가운데에는 44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나치 독일군의 침략에 맞서 구해냈던 윈스턴 처칠 총리의 용기와 전시 지도력을 연상케 한다.

젤렌스키는 유태계 대학교수의 아들로 1978년 태어났다. 그는 키이우 국립 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코미디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부패한 사회와 무능한 정부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TV 대하드라마 ‘국민의 종’의 제작자 겸 주연을 맡았다. 폭발적인 TV 드라마 인기를 등에 없고 2019년 41세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데서 함량 미달로 폄훼되기 일쑤였다. 젤렌스키는 러시아 침공 다음 날 새벽 0시 키이우가 폭격으로 파괴되는 가운데 자신이 해외로 탈출했다는 류머 속에 연설에 나섰다. 그는 군대 휘장인 십자가가 가슴쪽에 새겨진 국방색 티셔츠만 걸치고 면도도 않은 채 결사항전을 독려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적국이 나를 제1표적”으로 삼고 있으나 수도 키이우에 머물며 조국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1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탈레반이 수도 카블로 접근하자 현금을 차에 싣고 해외로 도망쳐 자국의 멸망을 재촉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크루즈 미사일 등 쏟아지는 폭격과 포격 속에서도 매일 페이스북 연설을 통해 항전을 독려한다. “저 여기에 있습니다. 항복하지 않고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고 했다. 그의 결연한 항전 의지는 여성을 비롯한 십수만 명의 자원입대와 결사적 항전의 동력이 되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

젤렌스키는 영국 의회를 상대로 한 티셔츠 차림의 영상 연설에서 처칠을 간접 인용, 영국인들을 감동케 했다. 젤렌스키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패배하지 않을 겁니다. 바다에서 공중에서 끝까지 싸울 겁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겁니다. 살림 속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시가지에서 싸울 겁니다.” 그의 연설을 경청하던 영국 의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젤렌스키 연설은 1940년 6월4일 66세 노(老) 청치가 처칠 총리의 영국 하원 연설을 연상케 했다.

당시 영국과 연합군은 독일군에 괴멸돼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에서도 퇴각했고 영국 런던이 독일 V2 로켓의 공습을 받는 등 위기에 처했다. 그때 처칠은 “우리는 바다에서, 대양에서 싸울 겁니다. 보강되는 군사력과 자신감으로 공중에서 싸울 겁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우리의 섬나라를 지킬 겁니다. 해변에서 싸울 겁니다. 적의 상륙지에서 싸울 겁니다. 들판에서, 시가지에서, 언덕에서 싸울 겁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처칠의 이 연설은 영국인들에게 결사항전과 자신감을 솟구치게 했다. 처칠은 정부청사 건물 위로 기어 올라가 독일 공군의 런던 폭격을 지켜보곤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3월 2일 자에서 젤렌스키는 “어떤 의미에선 (프랑스의) 샤를 드골보다 용감하다. 전쟁지도자로서 처칠과 동급이다”고 격찬했다. 이어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라고 했다. 젤렌스키는 21세기의 처칠로 평가되기에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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