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러시아 군이 퇴각하면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세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프랑스 AFP통신과 미국 CNN 방송 보도에 따르면, ‘부차’의 한 성당 근처에서는 시신 280여 구가 집단 매장되었다. 길가에선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 채 후두부에 총상을 입은 시신도 18이구나 발견되었다. 대부분 시신들은 검은 자루에 담겼지만 일부는 팔다리가 튀어나온 상태였다고 한다. 또 일부는 고문을 당해 귀가 잘렸고 이빨이 뽑히기도 했다. 러시아군은 ‘부차’ 외 다른 점령지에서도 후퇴하면서 수백 명의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여인을 집단 성폭행했다고도 한다. 

여기에 볼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범죄 명령을 내린 사람과 이 명령을 집행한 자들을 뉘렌버그 법정과 유사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뉘렌버그 법정은 세계 2차 대전 후 미국·영국·소련 등 전승국들이 독일 뉘렌버그에서 나치 전범들을 재판한 곳이다. 이 재판에선 여러 명의 전범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크라이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하는 것을 돕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수십 년간 유럽에서 보지 못했던 민간인에 대한 잔혹성을 보여준다.”고 개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 군의 학살은 대체로 러시아 점령군에 저항했거나 비협조적이었던 우크라이나 주민들에 대한 보복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의 ‘부차 학살’은 1950년 6.25 기습남침 당시 북한이 퇴각하면서 저지른 ‘대전 형무소 학살’을 상기케 한다. 당시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쳐내려 갔다가 다시 퇴각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다.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보다 더 잔혹했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에 동조적인 인사 2000여 명을 대전 형무소에 가두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그 해 9월 한국군과 미군을 필두로 한 유엔군의 반격으로 퇴각하게 되자, 대전 형무소 수감자들 중 1547명을 참혹하게 집단학살했다. 형무소 취사장 앞 우물에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우물 안 시체들을 꺼내 올리는데 3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북한의 민간인 학살은 서울의 서울대병원에서도 자행되었다. 우리 군 당국은 전투 부상 장병들이 속출하자 그들을 서울대병원으로 후송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서울을 3일 만에 함락하고 서울대병원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원쑤들의 앞잡이가 누워있다”며 닥치는 대로 사살했다. 일반 환자들도 국군과 구별 없이 학살당했다. 의료진 중에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시내 한 복판으로 끌고 가 즉결 처형했다. ‘서울대병원 학살’에서만 1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시신은 7월 무더운 여름날에도 무려 20여 일이나 방치되었다. 

그 밖에도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기독교 신자 1145명을 비롯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국방부가 발간한 ‘6.25 戰史(전사)’에 따르면 피학 살자 12만 8천 명, 피랍자 8만 4천 명, 행방불명자 30만 명에 이른다. 12만 8천 명의 피학살자 들은 대부분 ‘대전 형무소 학살’이나 ‘부차 학살’처럼 참혹하게 죽어갔다.

북한은 6.25 남침으로 반민족적이며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 후 72년이 지나도록 사과나 반성이 없다. 도리어 핵폭탄과 극초음속 미사일로 남한 적화만을 노리고 있다. ‘부차 학살’과 ‘대전 형무소 학살’ 그리고 ‘서울대병원 학살’을 겹쳐보면서 다시는 이 땅이 북한군에 점령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걸 통절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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