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문재인 정권은 엉터리 부동산정책 때문에 망했다. ‘망했다는 표현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을 의미한다. 그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그들은 검수완박이라는 저질 방어벽으로 스스로 둘러쳤다. 그 더럽고 냄새나는 가벽(假壁)이 과연 그들의 추잡한 짓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약한 모습을 스스로 드러낸 존재를, 맹수는 사냥을 포기하지 않는다. 야생에는 사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만 잡으면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겠지만 착각이다. 인간사는 관용과 망각으로만 적혀 있지 않다. 칼춤 추며 남의 피를 본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다. 그래서 인간사를 피가 피를 부르는 바보들의 역사라 한다.

부동산 문제는 뜨겁다. 정권의 처참한 실패를 경험한 신정권에도 뜨거운 화두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새정부 110대 과제 중 두 번째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부동산정책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국민의 눈높이는 어디쯤에 있는가? 정말 바로잡을 묘수(妙手)가 있는가? 그 묘수를 왜 그 똑똑한 국토교통부 관료들은 써먹지 않았을까? 그들은 써보려고 했는데 김수현을 비롯한 반시장주의자들 때문에 못 써먹은 것일까? 정권까지 잃어가면서도 서른 번에 가까운 헛발질을 계속 고집한 걸 보면,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정부, 즉 권력이 나서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오만이자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면, 부동산 문제는 관료들의 책상이 아니라 시장의 영역이며,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가치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교육 문제를 보라. 사교육 때려잡겠다고 그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때부터 난리를 쳤지만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 된다. 하다못해 코로나로 아우성치는 역병의 시대에도 사교육비 지출만은 줄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초··고교생 사교육비 규모가 23조 원이다.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시장이 인간의 거대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도 다르지 않다. 돈과 제도로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희생과 헌신, 인내라는 가정의 모습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나의 일, 행복, 나의 풍요, 나의 즐거움이 삶의 가치관이 되었다. 가치관의 변화라는 격류를 돈으로 돌려세우려는 시도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야수들이 사는 성()이다. 욕망은 절제를 모른다. 사슬에서 풀려난 야수의 몸부림은 거칠다. 그걸 해결해보겠다며 삽, 도끼들도 달려들면 삽과 도끼만 날아간다. 먹이를 주고 살살 달래도 시원찮을 판국에 살점을 뜯어먹겠다고 달려들다간 감당을 못한다. 어처구니없다고 여기겠지만, 차라리 가만 놔두는 게 상책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분노와 욕망의 덩어리가 더 커지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은 욕망의 영역이자, 염원의 영역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 더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 집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은 평화로움에 대한 염원 따위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런 원초적 영역임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억압과 통제의 사슬만 꼬나쥐고 달려들다 망한 게 바로 문재인 정권이다. 현명한 방법은, 정부는 더 이상 인간 욕망의 테두리 안에서 약만 올리지 말고, 할 일만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왜 모든 국민이 강남을 바라봐야 하고, 서울을 쳐다봐야 하고, 타워펠리스나 한남더힐을 바라보며 한숨지어야 하나. 정부가 한 부동산정책이란 것이 그런 욕망에 불만 지핀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정부는 욕망의 영역으로부터 철저한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할 일은 가용한 재정의 한도 내에서 공공임대주택이나 꾸준히 지으라는 것이다.

여기에도 원칙은 있다.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촘촘한 사다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토지가격은 임대주택에 반영해 강남 노른자위에 짓는 임대주택과 도시 변두리에 짓는 임대주택의 임대료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 임대주택도 자신의 부담 능력을 감안해 스스로가 선택해서 살도록 해야 한다. 민간도 욕망의 불쏘시개 역할만 하면 안 된다.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를 잇는데 동참해야 한다.

예를 들면 1억원대 주택에서 시작해 10억 원대까지 열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도록 주택공급 모델을 각각 달리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국유지나 공공택지를 공급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누구나 각자의 재정 범위 안에서 임대건, 매입이건 할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그런 집을 공급하는 민간에 대해서는 정부 역할을 대신하는 만큼 다양한 혜택과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다.

한가지 더. 혈세를 들여 강남에 임대아파트를 지어 임대하거나 분양전환 임대아파트를 짓는 일 같은 멍청한 짓은 제발 하지 마라. 그게 서민을 위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더 가난한 서민을 더 피 말려 죽이는 일이다. 이십대 예비 신랑신부가 집을, 그것도 수억대의 아파트를 매입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정상인가? 20대 또는 30대 초중반이 무슨 힘으로 그만한 돈을 준비해 내 집을 마련하나.

결국 대부분은 부모의 돈이다. 왜 그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에 대한 생각,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몽땅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규제와 족쇄를 끊고 기다려줘야만 한다. 어쩌면 그것이 정부나 공공, 민간의 역할보다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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