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청정지대’라고 자부하던 북한이 뒤늦게 코로나 확산으로 난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4일 새벽 2시 50분에 심야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다급한 모양이다. 코로나 확산의 이유들 중 하나로 김정은 우상화를 다지기 위한 ‘노 마스크’ 군중 대화를 꼽는다. 김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10주년과 4월25일 항일 빨치산 결성 90주년을 기념키 위해 수만 명을 연이어 동원해 군중대회를 열었다. ‘노 마스크’ 집회였다. 김은 코로나 ‘천정 지대’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노 마스크 코’로 강행했으나 코로나 확산대회가 되고 말았다. 김은 독재 권력을 다지기 위해 한 여름 무더위나 영하의 겨울 날씨 가릴 것 없이 열병식과 군중대회를 이어 왔다. 일부 외국 언론들은 북한의 군중대회를 보며 ‘웅장하고 장엄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웅장하고 장엄한 군중대회’에는 춥고 배고프며 피곤한 북한 주민들이 강제 동원된다. 동원된 주민들은 사전에 몇 주일씩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군인들은 로버트 같은 퍼레이드를 위해 오랜 기간 제식 교련 훈련을 받는다. 집단농장, 공장,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주민들이 동원된다. 평양 시민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교체 차출된다.

북한이 자주 벌이는 열병식이나 군중대회는 오직 김정은 독재자 한 사람을 위한 굿마당이다. ‘최고 영도자 충성 맹세’가 중심에 선다. 보통 사람인 김정은을 신(神)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매년 수백만이 동원된다. 자유민주 국가들은 그 따위 군중대회는 하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불편과 고통만 안겨주기 때문이다. 자유민주 국가는 주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벗겨주기 위해 적극 반응한다. 하지만 독재자는 오직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서만 반응한다. 권력에 방해되면 고모부도 처형하고 이복형도 독살한다. 자신을 위한 충성맹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삼야 시간애도 수백만을 끌어낸다. 코로나 확산도 개의치 않는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소련의 요세프 스탈린도 군의 퍼레이드와 군중대회를 즐겼다. 

필자가 남북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위해 1985년 8월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대표로 평양에 갔을 때 군중 동원 현장을 목격했다. 우리 대표단이 평양 역에서 내려 승용차로 ‘고려호텔’로 가는 도로 양쪽에는 수천 명 북한 주민들이 양손에 분홍 꽃을 쥐고 흔들면서 환영해주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까맣게 그을렸고 깡말랐다. 농촌에서 차출된 농민들 같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필자는 그들의 환영에 손을 흔들어 화답하면서도 그들이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 마음에도 없는 남조선 대표들을 환영키 위해 동원돼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서였다.


이어 3박4일의 회담 일정이 끝날 무렵 북한 측은 우리 대표단을 ‘김일성 경기장’ 체조 경기에 초대했다. ‘김일성 경기장’ 주차장에는 청중을 실어 나른 버스 한 대 없이 텅 비었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필자는 경기장에서 우리 대표단만 참관한 가운데 그저 몇 백 명 정도가 체조 묘기를 보여줄 걸로 생각했다. 이윽고 필자가 ‘김일성 경기장’ 내 2층 ‘주석단(VIP)’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관중석엔 8만여 명 군중이 꽉 차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8만여 군중이 쳐대는 박수는 천둥 치는 소리와 같았다. 땅이 울리는 듯했다. 천둥소리 박수에 가슴이 울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필자는 이 많은 군중이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측은지심이 치솟았다. 필자는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김일성 독재체제는 “군중 동원체제”라고 했다.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북한은 동원체제’라는 1면 톱 제목이 붙었다. 지금도 북한 열병식이나 군중대회를 볼 때마다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생각보다는 거기에 동원된 주민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측은지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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