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이른바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 세대교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20대 대선 패배와 6.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의 반성과 혁신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 젊고 역동적인 리더로 교체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운동권 세력의 기득권을 내세워 내로남불의 상징이었던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2선으로 후퇴하고 97그룹이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8월 전당대회 출마 후보군으로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전재수 의원은 물론 원외의 김해영 전의원까지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는 과거 국민의힘이 국정농단과 탄핵사태 이후 연이은 선거참패로 위기를 겪은 뒤 이준석이라는 30대 중반의 0선 당 대표 선출이라는 파격을 통해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한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논리다. 현 민주당은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처참한 상황이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는커녕 친문계와 친명계의 계파갈등으로 당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97그룹 세대교체론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역학관계를 짚어봤다.

서울 합정역 인근 프리미엄라운지에서 열린 '서태지 세대 모여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민평의회 중구난방'에 참석 의원들. 왼쪽부터 전재수, 박주민, 김병관, 김해영, 강훈식, 박용진, 강병원 의원. 2018.11.19. 뉴시스
서울 합정역 인근 프리미엄라운지에서 열린 '서태지 세대 모여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민평의회 중구난방'에 참석 의원들. 왼쪽부터 전재수, 박주민, 김병관, 김해영, 강훈식, 박용진, 강병원 의원. 2018.11.19. 뉴시스

- 이재명 책임론 속 8월 전대 불출마 여론 봇물
86그룹 2선 후퇴 전제로 97그룹 세대교체 확산
- 친명계 반발 변수이재명 발목잡기위한 꼼수정치

오는 202422대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전면 리모델링이 필수적이라는 게 97그룹 전진배치론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민주당 부활의 씨앗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97그룹 전진배치론이 민주당 부활의 발판을 이끄는 태풍으로 발전할 것인지 미풍에 그치고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로 86그룹의 지도력에 의문부호가 찍힌 만큼 97그룹으로의 지도부 교체는 불가항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술을 새 부대라고 하듯이 97그룹이 민주당의 주도세력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97그룹 전진배치론은 여야의 전당대회 때마다 되풀이됐던 40대 기수론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없지 않다. 특히 민주당의 고질적인 계파갈등 구조를 고려할 때 97그룹의 전면 부상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친명계에서는 97그룹 전진배치론이 이재명 의원의 전대 출마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재명 나오지마불출마압박97그룹 전면부상

민주당 최대 관심사는 오는 8월 전당대회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해법없는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당의 부활을 위한 밑바탕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다. 대선패배 이후 자숙의 시간은커녕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 제공은 물론 전대 출마 문제로 계파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재명 의원의 전대 출마가 현실화되면 최악의 경우 당이 두쪽으로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8월 전대 승자가 22대 총선 공천권을 사실상 장악한다는 점에서 이재명 의원 출마가 가져올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이재명 의원의 거취 논란이 확산되면서 전대 대진표는 오리무중이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최대 유력주자인 이재명 의원의 전대 불출마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자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항마로 거론됐던 친문계의 전해철·홍영표 의원은 이재명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당권도전을 접겠다는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전해철 의원은 이와 관련, “책임질 분들이 책임지는 그런 분위기가 된다면 저 역시 반드시 출마를 고집해야 되느냐는 부분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재명 의원의 책임론과 불출마 압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은 이재명 의원의 전대 불출마를 사실상 촉구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대선은 미래투표라는 점에서 결국 후보의 몫이 크다. 후보의 이미지나 대장동·법인카드 논란 등 이슈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지방선거 패배에는 송영길과 이재명의 출마 강행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전대 불출마를 압박한 것이다.

특히 더미래 소속 의원 41명은 지난 16일 성명에서 민주당은 지난 4·7 보궐선거, 대선, 지선까지 연속해서 선택받지 못했다. 지금 변하지 못하면, 유권자의 선택은 굳어질 것이라면서 다름과 새로움 그리고 이를 구현할 새 얼굴은 민주당을 다시 세우기 위한 열쇳말이다. 더미래'8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가치와 의제 그리고 인물의 부상을 통해 민주당의 얼굴과 중심을 바꿔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도부 세대교체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밖에 초선 의원모임인 더민초는 물론 재선의원 그룹도 지방선거 패배 토론회에서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했다. 선거패배 책임론이 꺼지지 않을 경우 이재명 의원의 전대 출마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통일부장관을 지낸 이인영 의원은 이재명 고문이 좀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입장을 현명하게 지혜롭게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불출마를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왼쪽)의원과 전해철 의원. 8월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대표주자로 지목되고 있는 있다. 2019.11.29.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왼쪽)의원과 전해철 의원. 8월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대표주자로 지목되고 있는 있다. 2019.11.29. 뉴시스

86 빈자리 97 뜬다?! 강병원·강훈식·박용진·김해영 후보군

민주당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97그룹 전친배치론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8월 전대가 친문계와 친명계의 계파구도로 흐르거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대로 올드보이 86그룹이 재도전에 나선다면 민주당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70년대생 차세대 리더를 내세워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대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 강원지사 선거에 나섰던 아이디어맨 이광재 전 의원이 기치를 들었다. 이 의원은 이재명·전해철·홍영표 의원의 불출마를 주장하면서 이번 전대에서 70년대생 의원으로 재편해야 당의 혁신과 쇄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86그룹의 리더 이인영 의원도 “40대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한다면 저를 버리고 주저 없이 돕겠다고 응원했다.

민주당 안팎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97그룹 전대 주자는 한둘이 아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미지로 당을 이끌었던 86그룹과 달리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가 강점이다. 아울러 친문계와 친명계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전대 갈등 구조를 막을 수 도 있다. 1970년대 초반 출생의 90년대 학번으로 당내 재선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역대 전대 때마다 되풀이돼온 계파 줄세우기나 세과시 형태가 상당 부분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당 일각에서는 97그룹이 각개약진보다는 내부 교통정리를 통해 국민에게 보다 분명한 단일 선택지를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재선그룹인 강병원(1971년생강훈식(1973년생박용진(1971년생박주민(1973년생전재수(1971년생) 의원과 초선 김한규(1974년생) 의원, 원외의 김해영 전의원이 거론된다. 97그룹 주자 대부분이 전대 출마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당권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서울 재선 그룹의 선두주자인 강병원 의원은 전대 출마 여부에 역사적 사명이 맡겨진다면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강 의원은 특히 민주당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팬덤정치 논란에 대해서도 언어폭력·욕설·좌표찍기·문자폭탄·색깔론 등을 배타적 팬덤에 공개 반대한다다른 의견을 갖는 정치세력에 대해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좌표를 찍는 건 우리 정치문화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정치적 존재감도 과시했다.

강훈식 의원은 새로운 리더십은 새로운 가치와 노선, 지향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지, 단순히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전대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깊이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무겁게 듣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시절 민주당 비주류를 상징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출마 여부도 주목된다. 서울 재선인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의 차세대 리더로 불리면서 전당대회 출마는 물론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도 여러 차례 이름이 오르내렸다. 정치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박용진 의원을 눈여겨보고 있다“97세대들은 당 대표, 대통령 후보도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에 활기가 돌 것이라고 응원했다.

민주당의 위기 때마다 돌직구를 날렸던 미스터 쓴소리 김해영 전 의원 역시 원외이지만 유력 주자로 거론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김해영 의원의 파괴력과 관련, “야당에서 상대하기에 제일 두려운 조합은 당 대표 김해영 전 의원, 원내대표 한정애 또는 조정식 의원 같은 분들이다. 그러면 저희 입장에선 좀 무섭다고 언급할 정도다. 아울러 김 전 의원과 전재수 의원은 정치적 기반이 부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남공략이라는 민주당의 동진정책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밖에 초선 김한규 의원을 주목하는 눈길도 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개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김한규 의원을 주목하고 싶다고 밝혔다.

97그룹 모두 친문 아니냐이재명계 부글부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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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그룹 세대교체론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의원과 가까운 그룹에서는 적잖은 반발도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이재명 의원과 친문 중진 홍영표·전해철 의원의 동반 불출마를 전제로 지도부 세대교체를 내세운 것이지만 속내는 이재명 발목잡기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세대교체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이재명 의원의 전대 불출마를 전제로 친문계가 사실상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 97그룹 주요 출마자 후보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친명계가 아니라 사실상 범친문계에 가깝다는 비난도 나온다. 특히 민생과 개혁노선에 대한 가치와 비전은 물론 컨텐츠가 담보되지 않은 가운데 단순히 86그룹은 용퇴하고 70년대생 지도자를 내세운다고 당의 위기탈출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한마디로 세대교체론의 당위성만 강조할 경우 민주당의 위기 타개를 어렵게 만드는 찻잔속 태풍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다.

이재명 의원은 물론 가까운 측근 그룹에서도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97그룹 세대교체론은 당원 구조에서 압도적인 이재명 의원이 출마할 경우 전대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친문계가 이재명 의원을 출마를 막기 위해 꺼내든 꼼수라는 것이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인 안규백 의원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은 안된다누구든 전대에서 치열하게 붙어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친명계의 반발에도 97그룹 세대교체론은 확산 중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피 수혈론을 내세웠던 200016대 총선과 참여정부 시절 탄핵역풍이 휩쓴 200417대 총선 이후 여의도에 입성했던 86그룹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당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꿀 때가 된 만큼 97세대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현재는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97세대가 민주당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다면 기존의 기득권 내로남불 운동권 정당의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과거 한국 정치를 뒤흔들었던 노풍(盧風, 노무현바람)이나 안풍(安風, 안철수바람)으로 진화할 경우 민주당의 위기탈출도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97그룹 역할론이 새로운 가치나 비전 없이 단순한 세대교체론으로 전락할 경우에는 찻잔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민주당이 8월 전대에서 혁신에 실패한다면 국민의힘이 탄핵과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나긴 수렁에 빠져든 암흑기를 민주당 역시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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