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누구 편…재판장 앞에서 ‘증거 인멸’ 인정?

지난해 故 손정민 군의 사건과 관련해 최초 손 군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 되는 위치 주변에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하는 편지가 놓였던 모습. [이창환 기자]
지난해 故 손정민 군의 사건과 관련해 최초 손 군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 되는 위치 주변에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하는 편지가 놓였던 모습.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한강 의대생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故)손정민 군의 1주기를 3일 앞둔 지난 4월21일 손 군의 가족들이 울분을 토한 일이 발생했다. 이날 경찰은 사고 현장을 비추고 있었을 지도 모를 CCTV 정보공개를 요청한 행정소송 중 판사에게 “해당 CCTV는 삭제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손 군의 아버지 손 현 씨는 그 날 방청석에서는 한바탕 야유와 혼란이 지나갔다고 기억했다. 판사가 장내를 진정시켰다. 손 씨는 이날 어떻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경찰이 손 군의 가족들로부터 고발당할 위기에 처했다. 

경찰 vs 故 손정민 군 가족의 행정 소송…누가 불리할까
경찰 고발할 수밖에 없어…“경찰에 수사권 다 줄 수 있나”

지난해 4월24일 손 군의 실종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가족들은 시간이 멈췄다. 해당 사건으로 언론은 떠들썩했지만, 요란한 이면에는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다. 경찰이 조금 더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줬더라면 결과는 달랐을까. 그로부터 1년. 손 군의 가족들은 아직도 손 군의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찾기 위해 그 날의 기억과 증거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났던 지난해 9월13일 손 씨는 경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사고 현장을 비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CCTV 영상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단순 열람만 가능하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앞서 손 씨는 경찰을 찾아 해당 CCTV를 봤으나, 화질이 떨어지고 작은 모니터 수준의 TV로 사물을 제대로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해 사고 당시 손 군, 그와 동행했던 친구 A군 등 두 사람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주변 목격자의 진술과 CCTV 탐색뿐인데, 두 사람의 동선을 띄엄띄엄 기억하는 목격자들의 진술만으로는 사건 발생 과정까지 확인이 쉽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손 군이 보이지 않게 된 뒤 A군이 혼자 CCTV에 남아있게 된 과정을 추적하고 있었다.

손 씨는 “현재 A군을 고소했고 검찰로 넘어갔지만 경찰은 사건 초기 A군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을 뿐”이라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뒤에도 변호인을 동반해 자료 제출만 하고 직접 조사는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수사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검경 수사권 분리를 이유로 경찰에 수사권을 다 줘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가족들은 당시 사고 현장 인근의 CCTV를 발로 뛰며 찾아다녔다. 그리고 중요한 자료로 쓰일지 모를 올림픽대로 CCTV와 반포대교 CCTV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의 답변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어 줄 수 없다’는 것. 가족들은 행정소송에 나섰다. 

지난해 9월부터 7개월이 지난 뒤 열렸던 지난 4월21일 공판에서 재판부는 해당 영상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경찰의 우려’를 두고 직접 판단하겠다며, CCTV 영상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은 판사에게 “해당 영상이 삭제됐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행정소송이 해당 영상의 공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함이었는데, 재판부도 원고도 당황했다. 경찰의 답변에 방청석은 소란스러워졌다. 

사건 현장을 비추는 CCTV 현황. [가족 제공]
사건 현장을 비추는 CCTV 현황. [가족 제공]

판사 요청에 “삭제됐다” 증거 인멸 및 직권 남용

소송 당사자로 지금까지 재판에 참여해 왔던 손 씨는 “행정 소송 진행 중에 해당 영상이 삭제됐거나 경찰이 이를 삭제했다면 증거물 인멸”이라며 “만에 하나 정말 삭제됐는데 그 시점이 재판이 열리기 전이라면 재판부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정말 삭제된 것이라면 가족들은 법적 대응에 나설 각오다. 

손 씨는 이어 “재판부가 해당 영상을 보자고 할지는 우리도, 경찰 측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라면서 “경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재판에 이기면 어차피 공개하지 않아도 됐기에 (설령 삭제했더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재판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재판부의 판단 의지가 경찰의 ‘삭제 됐다’는 답변을 하게 만든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손 씨 측 법률 대리인은 “이는 증거물 인멸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직권 남용의 문제에 해당한다”라며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수사 증거로 확보한 자료를 임의로 삭제해 버리다니, 사건이 끝나지도 않았는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해당 영상은 경찰의 CCTV 영상이 아닌, 서울시 한강 사업본부의 CCTV 영상으로 사건 현장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CCTV는 반포대교 북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1번)과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쪽을 향해 비추고 있는 것(2번) 등 2가지다. 하지만 서울시 CCTV에는 1개월 보관 뒤 삭제되고 다음 영상이 덧입혀진다. 경찰이 받아온 영상자료가 유일하다.

재판 초기 경찰이 북에서 남으로 비추는 1번이 ‘없다’고 언급한 바 있어 2번 영상 확보를 위해 재판이 진행돼 왔는데 7개월이나 진행된 재판에서 판사의 확인 요청에 “삭제됐다”는 경찰의 답변. 손 씨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고발 위기 처한 경찰, 대법원 판례 무시했나?

결국 경찰은 손 군의 가족에 의해 고발 위기에 처했다. 내달 다음 공판이 예정돼 있지만 경찰은 “삭제됐다”고 언급했던 영상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는 ‘착각이었다. 사실은 남아있다’고 답변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판 중에라도 삭제한 것이 사실이라면, 고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만일 영상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실수로 삭제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라면 ‘해당 영상이 삭제됐다’는 표현을 쓰기보다 이유를 설명했을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맞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 손 군의 가족들은 “이 사건의 수사 관련 부서에서 피해자 가족에게 해당 영상을 공개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라며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다음 공판에서 경찰의 변이 어떨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취재진은 해당 영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법원 판례가 경찰 측으로 전달된 것을 확인했다. 손 씨에 따르면 과거 대법원 판례 가운데 한낮 시간대에 상당수 사람들이 함께 찍혔고, 이들 가운데 일부의 반대에도 ‘공개하는 게 맞다’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소송을 진행해 재판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 군의 사건은 새벽 어두운 시간대에 발생했고, 가족들은 개인 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CCTV 영상을 경찰이 공개하지 않으려고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포대교 CCTV는 경찰이 삭제됐다고 말하고 있으나, 아직 남아있는 올림픽대로 영상이 있다. 이는 경찰 측 CCTV이므로 경찰이 임의로 삭제할 일은 없기에 정보공개 관련 재판은 계속 된다. 다음 공판에서 경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손 군의 가족과 친구들이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이는 의사 가운. [이창환 기자]
손 군의 가족과 친구들이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이는 의사 가운.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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