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차현정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차현정 변호사]

관람석을 꽉 메운 수많은 관객들은 이제 곧 펼쳐질 돌고래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사육사가 돌고래를 타고 등장하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내 심장도 심히 쿵닥거리고 있었다. 쇼가 시작되기 직전!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무어라 이야길 했고 그 순간 관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관람객들은 그들을 향해 천둥 같은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일어선 자들의 태도는 당당하였으며 관객들의 환호를 오롯이 즐겼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고 그 장면에 감격하는 것은 이방인인 나의 몫이었다. 일어선 사람들은 군인이었다. 

그때 나는 군대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뇌 발랄한 대한민국 국적의 20대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샌디에이고 씨월드에서 돌고래쇼 직전에 목격한 미국 군인에 대한 이 감격스러운 예우를 40살이 된 지금까지 결코 잊지 못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놀이동산에서 쇼를 펼치기 전에 군인들을 일으켜 세워 박수를 쳐주자는 제안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시급하고 대한민국 군인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상이군인 연금법 개정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사이클 선수 나형윤 씨가 세계상이군경 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나형윤 씨는 군대에서 복무를 하다 감전 사고를 당해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민간 병원은 병원비 지원이 불가하다는 국방부의 말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팔이 괴사 되었고 결국 양팔을 잘라야 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나형윤 씨는 상이연금에 관하여 그 어떠한 고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세계상이군경 체육대회에 참가하면서 뒤늦게 상이연금의 존재를 알게 된 나형윤 씨가 국방부에 문의한 결과는 참담했다. 상이연금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인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연금을 지급받지 못한다는 짤막하고 냉정한 답변만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 중에도 상이연금을 신청하지 못한 채 소멸시효를 도과하여 연금을 받지 못하는 젊은 장병들이 있다고 한다. 안쓰럽다, 안타깝다, 국가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분통이 터진다, 이 일을 어떡하나⋯ 마음 아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법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군인 재해보상법 제7조 제2호는 장해급여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가항이 바로 상이연금이다. 동법 제3절에서 상이연금에 관하여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공무상 부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하여 장해가 되어 퇴직하였을 경우 혹은 퇴직 후에 퇴직 전의 공무상 부상 또는 공무상 질병으로 인하여 장해가 된 경우에 상이연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상이연금의 금액과 각종 특례, 상이등급의 개정에 대해서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여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상당히 복잡하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바로 동법 제49조 시효에 관한 규정이다.

군인 재해보상법 제49조 제1항을 읊어보겠다. 이 법에 따른 급여를 받을 권리는 그 급여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된다. 다만 공무상요양비, 재난부조금 및 사망조위금을 받을 권리는 그 급여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

상이연금을 신청함에 있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조항을 간략하게 확인해보았는데 변호사인 내가 봐도 시효 규정까지 내려오는 과정이 다사다난하다. 특히나 이 법에 따른 급여를 받을 권리는 그 급여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는 시효 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러나 군인 재해연금법 그 자체는 군인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치열한 투쟁의 결과이리라.

다시 한번 투쟁의 절기가 도래했다. 중대한 장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이연금의 존재를 알지 못하여 5년이 지나도록 급여를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상이군인들의 권리를 되살려야 한다. 어떻게?

먼저 제49조 시효 규정을 삭제하고 그 효력을 소급시키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상이군인의 상이연금에 관한 권리만이 시효도 없이 영구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소멸시효가 존재하는 동종의 다른 권리와 심각한 차별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효력의 제한 없는 소급 적용 문제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효 규정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군인 보상제도에 관한 의무고지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어떨까? 이 또한 의무고지규정이 없는 다른 권리와의 차별이 고민될 수 있지만 어떠한 권리의 실현에 관한 절차는 앞으로도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차별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아직 내 권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지 않았으니 너도 혜택을 받아선 안 돼.’라는 마음가짐으로는 그 어떠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의무고지규정의 신설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무고지규정이 신설된다면 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변경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급여의 사유가 발생한 날’이 아닌 ‘고지를 받은 날’을 기산점으로 하여 5년의 시효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앞으로 보상제도에 관한 고지를 받게 될 잠재적 상이군인들은 보호할 수 있겠으나 이미 5년의 시효를 도과하여 권리가 소멸된 군인들은 어떻게 보호한다는 말인가?

추가적인 보호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고지를 받지 못한 과거의 상이군인들에게도 보상제도에 관한 고지를 의무화하고 새롭게 그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 혹은 1년의 내에 연금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를 만드는 것이다. 연금 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단기인 만큼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의 업무과중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특례규정에 따른 연금 신청의 효력에 관해 살펴보자면 장래효만을 인정하여 신청한 이후부터의 연금만 지급하느냐, 소급효까지 인정하여 과거의 연금도 되살리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과거의 연금을 되살린다는 것은 상이군인이 과거에 받지 못하여 소멸한 연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정해 이를 지급한다는 말이다. 그 전부든 일부든 과거 연금을 한 번에 지급할 경우 중간이자를 공제하고, 분할하여 지급할 경우 장래 지급받을 매월 연금 금액에 이를 반영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예산 압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저런 방법은 어떨까 나름대로 궁리를 해보았지만 결단은 입법자의 몫이며 그들은 더 명쾌한 해결방안을 고안해 내야한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군인 재해보상법은 군인의 재해보상에 관한 권리를 더욱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법 개정에 따른 업무가 과중할 것이다.” 라는 핑계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 그동안 국가는 연금의 존재를 몰랐던 군인들이 연금 신청을 하지 못함으로써 당연히 부담해야할 의무를 면하는 반사적 이익을 누려왔을 뿐이다. 이제 그 이익을 대한민국의 장병들에게 마땅히 돌려줘야 한다.

어릴 적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군대의 건재함은 곧 내 안전한 삶의 밑바탕이었다. 더 이상 군인들에 대한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배려와 예우를 늦출 수 없다. 그들의 사기를 떨어트려 어찌 감히 자주국방을 이루려 하는가.

<차현정 변호사 ▲ 세종대학교 졸업 ▲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수료 ▲수원지방검찰청 성폭력전담팀 검사직무대리 ▲성남수정경찰서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위원 ▲성남수정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위원 ▲대전지체장애인협회 중구,유성구 고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등록 이혼전문변호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