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갈등 심화...기업 구조조정 가시밭길 예상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취임했다. 하지만 노조와의 마찰은 계속되고 있다. 노조 측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반대하며 강 회장이 본점 이전 철회 약속을 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치권은 산은 본점 소재지를 서울로 제한한 법령의 개정안을 발의하며 부산 이전의 근거를 마련 중이다. 이런 가운데 상반기에만 전문인력 이탈이 심화되면서 기업 구조조정도 가시밭길을 예고한다. 이에 따라 강 회장의 앞날에 험로가 예고된다.  

- 반대 무릅쓰고 회장 취임식 진행...직원들 여전히 반대 시위
- 금융노조, 尹정부와 대립각…지역 경제 강조도 사실상 어려워 


지난 21일 본지는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을 찾았다. 본점 주변에는 본사 이전에 불만을 드러낸 글귀가 적힌 현수막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노조 관계자는 "연례행사처럼 본사 이전 소식이 외부에서 들려온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좀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 강했고 새로 취임하는 강 회장이 새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보니 본사 이전 논란이 과거보다 더 뜨겁다"라고 했다. 

강 회장 취임 저지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도 늘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13일 80여 명이 참여했지만 15일에는 500여 명이 참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 직원은 "본점 내부 분위기가 심상찮다. 지방 이전 문제로 회사를 떠난 동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 이전 문제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슈라서 피로감도 많이 쌓였다"며 "이제는 확실히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는 직원들도 상당수 있다"라고 말했다. 

산은에 따르면 올해에만 직원 40여 명이 중도 퇴사를 결정했다. 이전에도 매년 40명 수준의 인원이 이직 등의 이유로 퇴사를 했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비슷한 수의 인원이 중도 이탈한 셈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런 퇴사 움직임이 새정부의 대선 공약인 산은의 부산 이전 추진 계획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 내부 직원 이직 러쉬...분위기 위태

이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는 지난 17일 산은 본점 로비에서 ‘부산이전 추진 관련 회장 내정자 및 정부 입장 표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시절 지방균형발전을 취지로 한국산업은행 본점의 부산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며 “하지만 한국산업은행 본점의 부산이전은 산업은행법 제4조 제1항에 명시된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에 위반되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밝힌 아시아 금융중심도시 육성 사업에도 어긋나는 국정과제다”라고 주장했다.

러면서 “이 때문에 금융노동자를 비롯한 금융경제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한국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강행할 경우 오랜 시간 여의도에 마련해놓은 인프라와 우수인재 확보 등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행태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조윤승 한국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노동조합은 강 회장 내정자에게 직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생활권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직원들의 고통을 정부여당에 전달해 부산 이전 정책이 재검토될 수 있도록 직원들 앞에서 천명해 달라고 했으나 이것조차 묵살 당했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내걸었다. 강 회장이 산은의 부산 이전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책특보를 맡아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을 설계하는 데 힘을 보탠 만큼 부산 이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강석훈 회장 내정자는 신임 회장으로서 본점 지방이전은 국민 대표인 국회가 정할 사항이니 내가 회장이 되면 직원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이야기했었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석훈 회장 내정자가 밝힌 노사 상설기구 구성은 노동조합과 대화할 의지가 없는 사측이 흔히들 하는 말이다”라고 비판하고 “한국산업은행지부 조합원들이 원하는 해답을 가져올 자신이 없다면 오늘이라도 자진사퇴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산업은행 본점의 지방이전이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것을 윤석열 대통령은 인정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 정부 의지도 꺽을 수 있을까

강 회장과 노조간의 갈등이 길어지면서 산은의 현안인 쌍용자동차 매각과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 마련 등 해묵은 숙제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강 회장이 외부에서 업무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핵심 업무를 추친하는데는 어려움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뉴시스]
[뉴시스]

현재 산은은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합병,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매각 등 구조조정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매각 또는 구조조정을 위해 다각적인 업무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아울러 국제 경기 하락과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으로 국내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까지 무기한 연장되면 해당 기업 종사자들의 어려움도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온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태가 초래할 수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 이전 문제가 신속히 해결되고 그간 묵혀 둔 구조조정이 해결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면서도 "노사 갈등이 쉽게 가라 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며 말을 아꼇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산은 내부 직원과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각 사의 본점을 전국 어디든 둘 수 있도록 하는 한국산업은행법, 수출입은행법, 한국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령 개정이 진행되면 산은을 포함한 국책은행 본점 이전의 법적 걸림돌도 없어지게 된다.  문에 양측의 대립은 쉽게 해결되지 못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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