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홍지연 씨를 죽이기 전 강제로 홍지연과 섹스를 한 뒤 엎드려 울고 있는 홍지연 씨 작살 총으로 쏜 뒤 화살촉을 억지로 뽑아내 황급히 침실을 나온 거야. 그리고 바닷물로 로 들어가 스킨스쿠버 복에 묻은 피를 모두 씻어 낸 거야. 하지만 아무리 씻어도 피의 흔적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강 형사의 설명을 정무성이 반박했다.

“여보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엎드려 울고 있는데 작 살총을 가슴에 쏘아요? 등에다 쏘았다면 모를까.”
“심야에 홍지연 씨의 침실을 찾아 간 것은 맞잖아. 당신의 DNA가 홍지연의 몸 속에서 나왔단 말이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

정무성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설명해보세요.”
박 경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수원 오기 전날 밤 둘이서 술 한 잔하고...”
“그래서?”

강 형사가 재촉했다.
“정말 둘이 다 술이 취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실수한 것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남녀가 몸을 섞는 것이 얼마나 엄숙한 일인지 아세요?”
강 형사가 둘이 잤다는 얘기를 듣자 갑자기 흥분했다. 그러나 정무성은 일관되게 모든 사항을 부인했다.

“기가 막혀서. 나는 살인 사건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절대로 내가 죽이지 않았어요.”

“딱 잡아떼 보아야 소용없어요. 왜 죽였는지 동기만 말해 봐요.”
“죽일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요즘 홍지연과 사무실에서 여러 번 다툰 것을 본 사람이 많아요. 신정신, 박정희, 아니 박정형, 송혜민이 모두 증언했어요.”
박 경감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직장에서 부하를 나무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업무 때문에 야단친 일은 있을지 몰라도 다툰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판촉비로 나온 돈을 여러 번 혼자 독식하고 그것을 항의하는 홍지연을 우격다짐으로 무마시키려고 한 것 아니요? 업무 추진비 횡령을 상부에 알리겠다고 하니까 죽인 것 아닌가요? 동기가 딱 떨어지네.”
강 형사가 빈정대듯이 말했다.

“업무 추진비는 함부로 쓰지 못하게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필요할 때는 주었어요.”
“그럼 지금도 당신 개인통장에 수천 만 원이 들어있던데 그건 회사 돈 아니요?”
“잠시 보관한 것 뿐입니다.”
“회사 돈을 왜 당신 개인통장에 보관해요?”
“그야⋯”

정무성은 입을 다물었다.
박 경감은 정무성의 진술을 받는 동안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감을 느꼈다. 오랜 수사 경험에서 오는 생각이었다.
자백을 받지 못한 추 경감은 정무성을 일단 돌려보냈다.
며칠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박 경감이 밝은 모습으로 강 형사를 불렀다.
“송혜민을 좀 데리고 와.”

“예? 송혜민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혀 잘 못 짚으신 겁니다.”
강 형사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잔말 말고 데리고 와 봐.”
박 경감이 짜증 섞인 말투로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두 시간 뒤 강 형사와 송혜민이 경찰서 조사실로 들어왔다.
“송혜민 1991년 1월 11일생. 주소 마포구 성산동....”
박 경감이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피의자 조서를 쓰는 필수 절차였다. 
“송혜민씨. 당신을 홍지연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박 경감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반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홍지연이 죽어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은 단짝 친구인 접니다. 그런데 제가 지연이를 죽였다고요? 어디 증거를 한번 내놓아 보세요.”
송혜민은 완강하게 반박 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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