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서해 공무원 피살’ 관련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
서훈 ‘탈북민 강제 북송’ 합동조사 조기 종료 외압 혐의

서훈 전 국정원장(좌), 박지원 전 국정원장(우)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등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기관장들을 고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들은 전임 정부의 대북 기조에 호흡을 맞춰 ‘서해 공무원 피살’ 및 ‘귀순자 강제 북송(北送)’ 사건에 부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정치권을 강타한 대북 사건의 실체를 놓고 여야 ‘진실 공방’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전직 국정원장들의 사건 조작·은폐 시도를 고발하며 진상 규명의 단초가 제공된 셈이다. 이에 정치권의 대북 이슈 공방도 새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국정원은 지난 6일 박 전 원장을 서해 공무원 피살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로, 전 정권에서 탈북 어민 북송에 관여한 서 전 안보실장은 ‘합동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로 각각 적시하며 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국정원은 내부 감찰 과정에서 내부 직원 증언 등을 통해 이들의 혐의점을 포착하고 고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국정원이 ‘국가정보원법 위반(직권남용죄)’ 등의 혐의로 고발한 두 전직 국정원장은 대검으로부터 사건이 이첩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게 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 [뉴시스]

박지원, 서해 공무원 피살 ‘첩보 보고서 무단 삭제’ 혐의

‘서해 공무원 피살’은 2020년 9월 21일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어업 지도선을 타고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실종된 지 하루 만인 그 이튿날 북한 해역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피격, 그 시신까지 불로 태워진 사건이다. 이 씨가 피살된 당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종전 선언’ 녹화 연설을 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이 서해 공무원 사건 정황이 담긴 중대 첩보 보고서와 피살된 이 씨와 관련된 전자 기록을 무단 삭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이 씨가 북한 해역에서 표류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에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 달라’는 감청 기록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 씨의 북한 해상 진입은 ‘계획적 월북’이 아닌 ‘우발적 표류’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로, 2020년 사건 당시 국방부·해경 등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이 씨의 ‘월북 가능성’을 제기한 것과 배치된다. 

국방부와 해양경찰은 2020년 사건 발생 당시 고 이 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북한군 병사가 ‘(이 씨가) 월북했다’고 상부에 보고한 감청 내용을 근거로 이 씨를 ‘월북자’로 판단했다. 민주당 황희·김철민 의원은 이 씨의 유족들에게 월북을 인정하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겠다며 회유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하태경 TF(태스크 포스)단장은 이날 “한 개인에 대한 조직적 인권침해이자 국가폭력”이라며 “구조 노력 없이 죽음을 방치하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조직적 ‘월북몰이’가 있었으며,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서훈 전 국정원장 [뉴시스]

서훈, 귀순자 북송 사건 ‘합동조사 조기 종료’ 혐의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11월 2일 동해 북방 한계선(NLL) 인근에서 해군에 나포된 탈북 어민 2명에 대한 합동조사를 조기 종료시키기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서 전 원장을 ‘국정원법위반(직권남용죄)’과 ‘허위 공문서 작성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탈북 어민 심문은 불과 사흘 만에 종료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서 전 원장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는 취지로 합동조사단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탈북자 조사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서 전 원장의 ‘의도’에 시선이 쏠리는 대목이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이들을 북송키로 결정한 배경으로 “동료 승선원 16명 살해 및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귀순에 진정성이 없다”고 밝혔지만, 문제의 소형 오징어잡이 어선은 실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고스란히 북한에 넘겨졌다. 심지어 당시 국정원이 어선 소독을 의뢰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서 전 원장이 탈북 어민·어선 강제 북송에 적극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들을 ‘비공개’로 북송하려 했다는 정황이 의도치 않게 노출된 바도 있다. 당시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이같은 내용을 직보한 문자 메시지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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