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당권 이전투구 속 지방권력 수장들 ‘사전 대권 정지작업’

오세훈 서울시장 [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 [뉴시스]

- 오세훈‧홍준표, 중도‧보수 확장으로 미래 표심 ‘밭갈이’
- 김동연‧박형준, 정치교체‧지지도 앞세워 체급상향 도모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지난 1일 민선 8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닻을 올렸다. 새 임기를 시작한 전국 자치단체장들은 ‘변화와 혁신’을 모토로 적체됐던 지역 현안들을 하나둘씩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중 ‘대권 하이패스’로 여겨지는 광역단체장들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여야 중앙정치권이 민생과 격리된 내부 이권 다툼에만 골몰하는 와중에 변방 대권잠룡들은 저마다 지방행정 청사진을 제시하며 차분히 5년 뒤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 홍준표 대구시장은 ‘파워풀 대구’,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민생과 협치’, 박형준 부산시장은 ‘글로벌 허브 부산’을 강조했다. 이들은 향후 4년 지방행정 성적표에 따라 차기 대권주자로서 체급도 결정될 전망이다. 과거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은 지난 대선으로 변방 장수에서 일약 야권 최대 주주로 자리매김했다. 광역단체장에 입성한 이들 가운데 5년 뒤 지금의 이재명 의원을 넘어설 거물급 대권주자가 배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민선 8기 자치단체장들의 임기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경제 리스크가 치솟는 상황에서 지역 민생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장들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흔히 치세보다 난세에서 ‘뉴 리더십’이 부각되는 법이다. 

지난 6.1 지방선거로 ‘대권잠룡’ 반열에 오른 수도권‧영남 광역단체장 5인방도 지금의 어려운 시국을 타개하며 호실적을 거둔다면 차기 대권까지 노려볼 만 하다. 민주당 이재명 의원도 지난 대선에서 경기도‧성남시 행정 성과를 최대 무기로 삼았다. 각종 사법 리스크와 설화(舌禍) 논란 등 굵직한 부정 이슈에도 20대 대통령선거에 참여한 3400만여 명의 투표자 중 47.83%가 이재명 후보의 ‘행정력’을 주목했다. 이 의원이 과거 민주당 비주류에서 여의도 주류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행정 역량이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재명 퀀텀점프’가 민선 8기 광역단체장들을 향한 주목도를 높였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에 신임 광역단체장들이 이름을 올린 대권잠룡 리스트가 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 광역단체장들이 차기 대권주자로 상위에 랭크됐다. 

‘최초 4선’ 타이틀을 거머쥔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살핀다는 ‘약자와의 동행’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민심 확장에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과거 경남지사 시절 도(道)예산 혁신 운용으로 ‘채무 제로화’를 달성한 이력을 앞세워 보수의 성지 대구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펼쳐 보이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김동연 경기지사도 지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경기도 수성에 성공한 이후 야권 잠룡으로 체급을 불려나가고 있다. 김 지사는 민생 회복과 더불어 ‘여야 협치’라는 새 코드를 제시하며 독자 영역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66.36%’의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이 4년 임기 동안 ‘부산 국제도시화’ 공약 이행 등 민심 기대치에 부합한 성과를 낼 경우, 차기 대선 무대에서 보수권 다크호스로 부상할 수 있다.  

‘보수의 새 자산’ 오세훈, 중도 확장으로 대권가도 첫 단추   

오세훈 서울시장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근 1‧2위에 오르는 등 존재감이 심상찮다. 여권에선 오 시장을 ‘미래 자산’으로 평가하며 이미 차기 대권주자로 일찌감치 낙점한 분위기다.

국민의힘 다선 의원은 “‘4선 서울시장 오세훈’은 과거와 급이 많이 달라졌다”며 “오 시장이 주축인 ‘이오회’(국민의힘 수도권 당협위원장 모임)에 참석한 당내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오 시장의 차기 대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4선 임기에 돌입한 오 시장은 최근 ‘사회적 약자 보호’에 방점을 둔 차별화 행보로 중도 민심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중도 표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감한 탓이다.

오 시장은 지난 1일 임기를 시작하며 “‘약자와 동행’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제가 서울시장으로서 존재하는 이유이자 제 평생의 과업”이라며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취임 일성을 냈다. 이와 함께 오 시장은 ‘취약계층 4대 정책’ 공약 이행을 위해 즉각 관련 부서 신설을 지시하는 등 조직 개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오 시장의 ‘약자동행특별시’ 슬로건은 기존 보수권의 정책 기조와 결이 다른 친서민적 가치가 녹아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중도뿐만 아니라 현 야권 지지층의 표심까지 두루 포섭할 수 있는 중장기 포석인 셈이다. 이 같은 정책은 오 시장이 그간 공 들였던 부동산이나 조경사업과 달리 단기적 성과를 내기에 용이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오 시장의 새로운 시정 로드맵인 ‘약자와의 동행’ 정책은 기존 민간주도형 재건축‧재개발과 더불어 오세훈표 랜드마크 공약으로 자리매김하며 차기 대권 동력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이후 청계천 복원 등 뚜렷한 시정 성과를 거두면서 한나라당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최근 정가에선 오 시장의 행보를 놓고 ‘MB 로드맵’을 거론하는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여권 관계자는 “MB에 이어 제2의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라며 “(오 시장의) 시정 4년 성적표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겠지만, 임기 중에 큰 사고만 없다면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하다”고 관측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말 정세나 민심 추이에 따라 오 시장이 5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도 첨언했다.     

오 시장은 임기 1년에 불과한 ‘반쪽 시장’ 타이틀을 벗고 4년 만기의 시정 연속성을 확보한 만큼, 의욕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이러한 오 시장의 행보가 집권 당정의 지지율 저공비행 속에서 함께 부침을 겪을지, 차별화 포인트를 가져가며 반사이익을 볼지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뉴시스]
홍준표 대구시장 [뉴시스]

‘독불장군’ 홍준표, 보수 성지 대구서 ‘대선 밭갈이’ 

홍준표 대구시장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더불어 대권잠룡 쌍벽을 이루는 8기 광역단체장이다. 대선 후보 출신인 홍 시장은 높은 대중 인지도에 비해 당내 기반이 취약한 정치권 인사로 꼽힌다. 홍 시장에 대해 ‘여의도 독불장군’이라고 여당 인사들이 입을 모을 정도다.

실제 3.9 대선 당내 경선에서도 홍 시장은 국민 여론조사 투표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를 크게 앞질렀으나, 당심(黨心)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는 평소 계파 정치에 무관심한 홍 시장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지선을 앞두고 유독 홍 시장에게 과도한 ‘경선 페널티’가 적용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이에 홍 시장이 ‘보수 텃밭’ 대구에서 8기 지방 행정을 맡으며 전통 보수와 접점을 늘려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내 계파적 이해관계와 거리를 뒀던 홍 시장의 ‘독자 정치’를 지지하는 민심과 별개로 당심이라는 현실 기반의 중요성을 지난 대선 경선에서 절감했을 수 있다. 아울러 당내 기반이 전무한 홍 시장으로선 여의도보다 보수의 근간인 대구에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여건상 안정적이라는 분석이다.     

홍 시장과 평소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홍 시장이) 왜 대구로 갔겠나”라며 “TK가 보수정당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익히 알려진 바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국회 의정보다는 전통 지지층이 포진한 대구에서 재기를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 그는 “직접적인 인사 접촉이 홍 시장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경우의 수가 될 수 있다”고 홍 시장이 강성 보수 지지층 결집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 

한편, 지난 1일 취임식에서 홍 시장은 ‘빨간색’ 넥타이를 맸다. 보수색이 짙은 현지 시민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 위한 옷차림으로 읽힌다. 홍 시장은 이날 TK신공항 건설, 공직사회 전면 구조조정을 통한 예산 효율화 등을 골자로 ‘강력한 대구’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경남지사 시절 ‘채무 제로화’ 도정 성공 신화를 대구에서도 재현한다는 구상이다.  

김동연 경기지사 [뉴시스]
김동연 경기지사 [뉴시스]

차기 대권 ‘다크호스’ 김동연‧박형준

김동연 경기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도 잠정 대선주자로 정치권의 이목이 쏠려있는 재·신임 광역단체장들이다. 향후 4년 임기로 어떤 결실을 맺느냐에 따라 이들의 정치적 미래 입지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정치 교체’를 키워드로 여야 협치와 민생 회복 등 균형 감각을 강조한 정치 코드를 앞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 고위 관료(경제부총리) 출신이라는 점도 김동연표 경기 도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경기도에서 정치적 입지를 굳힌 만큼, 김 지사도 향후 경기지사를 거쳐 대권잠룡으로 거듭날 것이란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김 지사는 인수위 단계에서 ‘이재명 후광 지우기’로 차별화 행보를 보이는 등 독자 브랜드 구축에 나섰다는 평가다. 

김 지사의 당내 입지도 빠르게 수직상승 중이다. ‘당 쇄신’ 급류 속에 당권주자로 전진 배치된 민주당 97그룹이 앞 다퉈 ‘초당(超黨) 정치’의 아이콘이 된 김 지사를 찾으면서다. 박용진‧강병원 의원이 앞서 김 지사와 회동을 가졌고, 8.28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도 최근 김 지사를 찾아 정치혁신 의제를 공유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뉴시스]
박형준 부산시장 [뉴시스]

박형준 부산시장도 차기 잠룡으로서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지선에서 박 시장은 무려 66.3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 변성완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압도했다. 이는 역대 부산시장 선거 중 최고 득표율이다. 

이에 여권에선 박 시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박형준호 부산시가 현 정부와 호흡을 맞춰 4년 동안 부산을 ‘글로벌 허브’로 격상시키는 등 실질적 성과를 낼 경우 여당 내 ‘박형준-오세훈’ 대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수진영에서 최초로 부산시장 출신 대권주자가 배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포착된다. 6.1 지방선거에서 박형준 캠프 고위직을 맡았던 지역 정가 관계자는 “박형준 시장은 유연한 정무 감각과 안정성이 강점”이라며 “4년 동안 지선 공약들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차기 대권 도전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보수정당 소속 최초의 부산시장 출신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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