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당정치 수난사...與野 역대 ‘비대위 극약처방’ 14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 국힘‧민주‧정의 3당 모두 비대위 수순...‘민생 뒷전’ 우려도  
- 비대위 ‘與 8회, 野 6회’...리더십에 따라 성적표도 제각각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의도 국회 정당정치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야 1‧2‧3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초유의 ‘정치불안’ 사태가 불거지면서다. 이들 3당(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정의당)은 내부 권력투쟁과 정치비전 실종, 민생과의 괴리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나자 저마다 ‘비대위’라는 극약처방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여야 정당들의 이러한 행보는 책임정치와 거시 비전이 수반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댓값은 제로에 가깝다는 평가다. 특히 집권당 국민의힘은 대선‧지선을 연전연승했음에도 비대위를 구성하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여야의 역대 비상체제는 ‘비대위 수난사’로 불릴 만큼 실속이 없었다는 게 중평이다. 굵직한 선거에서 패한 정당은 연례행사마냥 비대위 카드를 꺼내들며 대수술을 감행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 반면 비대위를 통해 위기와 내부 불신론을 극복한 일부 사례도 엄존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3달도 채 되지 않아 여야 3당이 모두 임시 체제로 운영될 위기에 놓이며 국회가 사실상 패닉에 빠졌다. 민주당은 선거 연패 후유증으로 정치적 구심점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급격한 지도체제 붕괴 상황에 직면하며 대선‧지선 연승이 무색해졌다. 이에 여야는 결국 비대위 체제에 의존하게 된 상황이지만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비대위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에 처한 정당이 조직‧지휘체계 개편을 통해 정상화를 도모하는 임시 기구다. 하지만 비대위는 어느새 선거 패배 정당이 국면 전환용으로 내거는 ‘위장 간판’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여야 정치권이 임시방편성 지도부 체제를 남용하면서, 의회 책임정치와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다선 의원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요즘 원내 정당들이 툭하면 비대위 카드를 꺼내는데, 남발하는 성격이 짙다”며 “이는 의회와 정당의 근간을 갉아먹는다. 비정규 지도체제는 의회를 중심으로 상호작용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정당정치와 결이 다르다. 극도의 비상 상황에서나 논의되어야 할 최후 수단을 ‘패놀이’를 하듯 채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주요 3당의 비대위 전환으로 국회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임시 지도부로 운영되는 정당들이 집안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민생 현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선 원내 정당들이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黨 ‘비대위 전환 일색’...6년 만에 비대위 전성시대  

지난 2일 여당인 국민의힘은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를 통해 비대위 출범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 및 전국위원회 소집 안건을 의결했다. 당헌‧당규 유권해석에 따라 당 ‘비상 상황’으로 결정되면 비대위 구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2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여야 3당이 6년 만에 모두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는 초유의 상황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지난 5일 전국상임위가 ‘당 비상 상황’이라는 데 동의하며 비대위 전환을 추인한 만큼, 임시 지도체제 돌입이 유력한 상황이다. 국내 정치사에서 집권여당이 정권 출범 3개월 만에 비대위를 구성한 것은 이례적이다.  

비대위를 통해 지도부 개편을 꾀하고 있는 여당은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로 제도권을 이탈한 이준석 대표가 변수로 꼽힌다. 이 대표는 “끼리끼리 욕하다 문자가 카메라에 찍히고 지지율이 떨어지니 내놓은 해법이 복귀를 막는 것”이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헌·당규를 바꾸고 사퇴한 최고위원도 표결에 나섰다”고 반발했다. 만약 이 대표가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비대위를 놓고 내부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여권 안팎에서 국민의힘의 비대위 출범을 ‘조기 전당대회’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렇다보니 향후 여당은 당권 분쟁 파고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현역 당 대표의 남은 임기가 6개월 이상이면 60일 이내에 임시 전대를 개최해야 한다. 이 대표의 잔여 임기가 내년 6월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시 전대를 치르고 내년 정규 전대를 다시 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차기 총선 공천권 등을 놓고 내부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여당 일각에선 ‘조기 전대론’이 분출하고 있다. 다만 여당 각 계파와 당권주자 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탓에 비대위 전환 후에도 임시‧조기 전대 개최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윤호중·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을 양대 축으로 6.1 지방선거 TF(태스크 포스) 성격이 강한 비대위를 발족했다. 그러나 지난 지선에서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 광역단체장을 국민의힘에게 내어주면서 윤호중‧박지현 ‘투톱’ 비대위 체제는 실각했다.    

지선 국면을 주도했던 민주당 공동비대위 체제는 박 전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기점으로 내부 파열음을 내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직전 박 전 위원장이 윤 전 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대국민 사과문을 낸 것이 화근이 돼 이후 비공식 회의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국 두 사람은 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이후 ‘우상호 비대위 체제’가 바통을 이어받아 출범, 8.28 전당대회까지 지도부 공백을 메울 것으로 전망된다. 

범야권 정당인 정의당도 지선 후유증으로 부침을 겪으며 비대위 체제를 거치고 있다. 정의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가져간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의석은 9석에 불과하다. 광역‧기초의회 총 37석을 가져간 제7회 지방선거와 비교해 그 세가 25% 이하로 크게 줄은 셈이다. 정의당은 고정 텃밭이었던 서울‧경기권에서도 지역구 의원 및 비례대표를 배출하지 못하며 고배를 마셨다.

국힘 2010년부터 비대위 8회...‘박근혜‧김종인 체제’ 전성기  

국민의힘은 2010년부터 총 8번의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비대위원장이 정규 당 대표에 못지않은 리더십을 발휘하며 당 쇄신을 견인한 경우도 있었던 반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뒤안길로 사라진 사례도 있었다.

우선 ‘김종인 체제’는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20년 5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2020년 4.15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직후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위원장이 비대위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약 1년 동안 김종인 체제가 유지되면서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민생에 방점을 둔 당 개혁에 주력한 끝에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을 모두 국민의힘이 가져가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지난 3.9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인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 전 위원장은 6.1 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대표(현 대구시장)를 대신해 7개월여 당을 진두지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보수정당이 궤멸 위기에 몰린 상황에도 당시 김 전 위원장은 10%대로 추락했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30%대까지 끌어올리는 등 분전했다는 평가다.

2016년 새누리당은 상황이 더욱 열악했다. 4.13 총선 참패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거대 악재를 연거푸 맞으며 두 차례에 걸쳐 비대위를 출범시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총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사퇴했고, 당해 6월 김희옥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지만 친박‧비박 계파 갈등을 끝내 조율하지 못한 채 실각했다. 이는 외부 인사 영입의 한계점을 드러낸 사례로도 꼽힌다.

새누리당은 2016년 12월 현직 여당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초비상 사태를 맞으며 2번째 비대위를 꾸렸다. 과거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인명진 목사가 새 비대위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공천권이나 당내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불과 3달 만에 해산 수순을 밟았다. 새누리당 주류였던 친박계의 극심한 저항과 ‘비박 핵심’ 김무성‧유승민 전 의원의 탈당 등 내홍의 벽을 넘지 못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김무성·정의화·박근혜·이완구 비대위 체제를 거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낙점, 2012년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보수정당 역사상 리더십이 가장 공고한 임시 지도부로도 꼽힌다.   

민주당, 9년 동안 비대위 6회...지난해부터 침체일로

민주당은 지난 6월 출범한 이후 8월 전대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될 ‘우상호 비대위’를 포함해 최근 9년 동안 총 6번의 비대위 체제를 거쳤다. 

2013년 민주통합당 시절 18대 대선 패배 직후 출항한 ‘문희상 비대위’는 약 4개월 동안 운영됐다. 당시 대선 패배 책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책임론에 노출된 친노계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등 내부 갈등을 부추기며 내부 결집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다만 위장 당원명부를 정리하는 등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교차한다. 

문희상 비대위 체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궐선거 패배 직후인 2014년 9월 재등판한다. 문희상 2기 비대위는 당내 계파 갈등을 진정시키고 ‘세월호특별법 합의’ 등을 이끌어 내며 1기 비대위보다 비교적 높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2016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체제가 들어섰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이 영입되면서 민주당의 친노 계파색도 중화됐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김종인 비대위는 문재인계와 안철수계로 첨예하기 갈린 당내 세력 구도를 중도 인사 기용으로 극복하며 20대 총선 승리를 안겼다. 

민주당은 2020년까지 총선 등 굵직한 선거에서 승승장구하다 지난해 변곡점을 맞았다. 이후 출범한 비대위들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사퇴 수순을 밟았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도종환 비대위의 경우 한 달 만에 해산됐고, 3.9 대선 패배로 지도부 공백을 대체한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는 지난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지도부 내분으로 씁쓸히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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