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경쟁력 이전 65% 수준, 회복에 3.9년 걸려...'사실'로 판명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이 발표됐다. 지난 7월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정책 5대 방향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높인다'와 '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기하기로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 정부가 '탈원전'을 내세웠다면 현 정부는 '탈원전 폐지'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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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대상]
이런 가운데 임만성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기업들의 원자력 산업 경쟁력이 후퇴했다고 진단해 이목이 쏠린다. 임 교수는 원전과 핵폐기물 관리 등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는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임 교수의 분석처럼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 산업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는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료와 강창호 에너지흥사단장 인터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따져봤다. 


[검증방법]
- 전경련, 원자력 산업 밸류체인 주요 기업 대상 설문조사 자료 검토
- 신동아, “文 정권 154조 추경, 脫원전이 경제위기 심화시켜” 기사 인용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의 ‘원자력산업실태조사’ 자료 검토
- 뉴시스, '러 압박에 독일, 탈원전 중단하나…원전 3기 수명 연장 시사' 기사 인용
- 강창호 에너지흥사단 단장(월성사건을 고발한 월성1호기 부패행위신고자) 인터뷰


[검증내용]
임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의 한국 원자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공급망 타격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우려한다. 그는 “중동은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만 파트너를 한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국내에서 탈원전 정책을 하다 보니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며 “이 와중에 중국이 저가 원전 공세를 하고 있으니 산업적 측면에서 상당히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6기의 신규원전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10조 원의 예상매출이 증발했다. 이에 두산중공업은 순환휴직을 실시한 데 이어 구조조정을 벌이기도 했다. 협력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고 줄도산하는 업체도 늘어났다. 원전업계에서는 60만 국민서명을 받는 등 원전 사업 재개를 꾸준히 요청했지만 지난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5월 원전 건설을 재개해달라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에게 "전기 비축률이 30%를 넘는 상황이어서 추가 원전 건설은 불필요해 보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업계가 국내에서 원전을 축소하더라도 해외 수출은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원전수주는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연합) 바라카 원전 이후 아직 없다. 반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원전 주요국이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개발에 눈을 돌리는 것과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원전 주요국은 SMR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SMR과 차세대 원자로 지원에 7년간 32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영국도 5년간 2억 파운드를 투자해 SMR을 최대 16기 건설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놨다.

결국 국내에서는 탈원전에 밀려 투자를 게을리 한 탓에 대형 원전에 이어 소형 원전 경쟁력까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원자력 산업 밸류체인 주요 기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국내 원전 경쟁력 탈원전 이전 대비 65% 수준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주요 70개 원자력 기업을 대상으로 벌였고 이 중 31개사가 응답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 보고서에서 국내 원자력 산업 경쟁력은 탈원전 이전 대비 65%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 수 기준으로는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51.6%)이 탈원전 이전과 비교하면 원전산업 경쟁력이 30~40% 하락했다고 응답했으며 ▲20~30% 하락(22.6%), ▲10~20% 하락(6.5%), 기타(19.4%)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기존 원전 생태계 복구까지 약 3.9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 수 기준으로는 응답 기업의 51.6%가 원전 생태계 회복에 2년~4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4년 이상 6년 미만(38.7%), 6년 이상 8년 미만(6.5%), 2년 미만(3.2%) 순으로 조사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보고서 말미에 “지난 7월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된 이후, 한국판 K-택소노미에도 원전의 친환경 에너지 포함이 확실시되고 있다”며 “앞으로 세계적 원전산업의 높은 성장세로 수출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원전 생태계 회복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지난달 27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탈원전 등 전 정부 정책 실패가 지금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한민국 장래 수십 년이 걸린 문제를 5년 단임 대통령(문재인 전 대통령)이 ‘탈원전’ 한다면서 정상적 절차도 밟지 않고 원전을 축소하는 바람에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게 된 점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전 경쟁력 악화가 탈원전 탓도 있지만, 국제 유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독일은 서방 국가들과 대러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반격을 위한 에너지 카드를 꺼내 든 상황이다. 지난달 13일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이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의 가동 재개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혀,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가 완전히 끊길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다.

이에 독일도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3기에 대해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폴리티코의 지난달 18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독일 경제·기후보호부 대변인은 이날 베를린에서 기자들에게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등 심각한 상황에도 올겨울 전력 공급이 보장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전력망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테스트가 몇 주 내로 완료될 것이라면서 결과는 "원전 사용 연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단계적으로 원자력을 중단해왔다. 이제 원전은 3기만 남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원전 3기의 에너지 발전량은 독일 전체 전력 발전량의 6% 정도 된다. 약 700만 가구에 난망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강창호 에너지흥사단 단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탄소 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각국은 에너지 믹스를 재조정해 에너지 안보 우선으로 선회하고 있다. 독일마저도 폐쇄하려던 원전 수명 연장을 공개적으로 시사하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없다.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에너지전환을 급격하게 혹은 무리하게 시행했다"며 "가동 원전 차원에서 선제 설비개선을 통해 안전에 대한 이윤 확보와 원자력 산업계 일감절벽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검증결과]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는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에 따라 후퇴를 거듭했다고 주장한다. 원자력 전공자 수 감소와 인재 이탈, 원전 산업계 매출 감소 등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통계청 국가통계 포털(KOSIS)의 ‘원자력산업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액은 2016년 5조 5034억 원에서 2020년 4조 573억 원으로 1조 원 넘게 줄었다. 수출 계약금액은 2016년 1억 2641만 달러에서 3372만 달러로 급감했다.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인력 역시 줄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원자력 관련 학과 재학생 수는 2165명으로 2017년(2777명) 대비 2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 설문조사에 응답한 A사는 “최근 경력직원의 퇴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학과 축소로 신입사원 충원이 어려워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따라서 임 교수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기업들의 원자력 산업 경쟁력이 후퇴했다는 분석은 '사실'로 판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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