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이호진‧박찬구 회장...사면 불발에 신사업 어쩌나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윤석열 정부 첫 사면 복권이 단행됐지만,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기업인에게도 눈길이 모이고 있다. 정부가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는 점을 강조했던 만큼 기업인들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면 대상에서 빠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은 각각의 사업군에서 역할이 기대됐던 인물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인이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죄질'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어 충격을 안긴다. 

- 금호 '조카의 난' 태광 '신사업 주춤' 부영 '오너 부재' 접첩산중...피로감 토로
- 시민단체, 총수의 사면 부정적 평가 여전...묻지마식 사면에 대한 경종 울려야


새 정부는 첫 사면으로 주요 경제인과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등 일반 형사범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을 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현재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이 절실한 상황인 점을 고려해 적극적인 기술투자와 고용창출로 국가의 성장동력을 주도하는 주요 경제인들을 엄선하여 사면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경제 분야의 국가경쟁력을 증진하고, 집단적 갈등 상황을 극복하고 노사 통합을 통한 사회발전의 잠재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요 노사 관계자를 대상에 포함했다”고 했다. 

- 여론 우호적 상황에서도 제외라 '충격'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 전문회사가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 찬성 의견이 77%로 집계됐다.

또한 경제단체나 주요인사들을 중심으로도 경제인에 대한 대거 사면 요청이 있었던바 재계는 경제인이 대거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등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발표 직전까지도 유력 기업인들의 사면 복권이 확실시되는 등 총수가 구속된 기업들 내부에서도 신사업 전망 및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의 특별사면 대상자 공식 발표가 있는 후 일부 기업은 쓰린 가슴을 어루만져야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쓰림도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총수 부재가 이어지면서 이들 기업의 신사업도 위기를 맞게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수면 아래로 내려왔던 '조카의 난'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앞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달 2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박 회장 장남 박준경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사측은 박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과 박 회장 복귀가 그룹 경영을 안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박 회장의 사면이 무산되자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가 최근 일부 주주들과 접촉하면서 다시 경영권 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철완 상무는 박 전 회장의 조카다.

이 회장 복귀와 함께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던 태광그룹도 분위기가 심상찮다. 2012년 이후 태광그룹은 이 회장 복귀만 전제된다면 신사업 투자에 적극 나설 채비였다.

약 2조 원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태광산업도 이 회장 복귀와 함께 돈을 푼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도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태광은 투자 계획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들 총수가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중근 부영그룹 전 회장은 과거 수백억대 회삿돈 횡령 전력이 사면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전 부회장이 80을 넘긴 고령이라 대상자에 포함될 거라 생각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계속된 질타로 이번 대상자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이 전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조세포탈,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2020년 8월에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복역 중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데 이어 지난 3월 형기가 만료됐지만, 관련 법에 따른 5년간 취업 제한으로 그룹 경영 참여는 불가한 상태다.

박찬구 회장 역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으로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표이사로 복귀했지만, 법무부가 취업 승인 요청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아울러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횡령 배임으로 구속됐지만 이후 두 차례 대법원 파기한 송을 거치면서 2020년 6월에 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황제보석 논란이 불거졌고 검찰의 보석 취소 요청이 받아 드려져 7년 9개월 여만인 2020년 12월 재수감됐고 지난해 10월 만기 출소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인이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와 관련해 그간 자행한 위법행위가 엄중해 사면 시 여론 악화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경실련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중근 회장은 회삿돈 비자금 조성 등의 배임·횡령으로 복역 후 가석방,  박찬구 회장은 회사자금을 아들에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 주도록 한 배임 등으로 집행유예, 이호진 회장은 조세포탈 등으로 집행유예 중"이라며 "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는커녕 경제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이들의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면해주는 것은 대한민국이 가진 자에게만 관대한 나라라는 것은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공정한 경제 정책 펼칠지 예의주시

경실련은 "2008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08년 및 2015년 최태원 SK 회장, 2016년 이재현 CJ 회장 등 계속되는 묻지마 사면으로 재벌총수들은 언제든지 경제범죄를 저지를 유인이 있고 이는 다른 기업들에도 나쁜 선례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재판 후 조건 없는 사면이 뒤따른다면 해당 범죄를 저질러서 얻는 실익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어야 할 때이다. 이에 오늘 기자회견 참가단체들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재벌총수에 대한 무차별적 사면 시도를 규탄하며, 이를 중단하고 민생을 위한 공정한 경제 정책을 펼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면대상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지사,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최경환 전 의원,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정치인들은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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