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친윤발(發) 정계개편론 부상...‘보수판 열린우리당’ 재현?

윤석열 대통령(좌),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우)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좌),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우)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국정지지율 난조를 털어내지 못한 채 국면 타개책을 찾지 못해 고심이 깊은 상황이다. 대통령실 인사 개편안과 민생 개선책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이마저도 민심을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내홍 가속화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법원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부분 인용하면서부터 여당은 혼돈의 늪에 빠졌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2선 후퇴가 가속화하는 데다, ‘중진-초·재선’, ‘친윤-비윤’으로 갈라져 내부 현안에 대한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그야말로 집권여당이 총체적 난국을 맞은 모습이다. 당헌 개정을 통해 2기 비대위를 출범시킨다는 방침이지만, 이 전 대표의 추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응답에 따라 제2의 난파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이에 최근 정가에선 윤 대통령이 극약처방으로 정계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창당 전문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보수판 열린우리당’ 시나리오가 그 요체로 지목된다. 이는 현실적 제약이 뒤따르는 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평이나, 집권 당정의 극단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용산발 정계개편설이 여의도 정가를 재차 관통하는 모양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집권 후 자신의 파워그룹인 윤핵관을 통해 ‘친윤(친윤석열) 여당’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며 유기적인 당정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을 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소위 윤핵관 핵심 멤버로 지목되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이철규·윤한홍·송언석 의원 등과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당내 주요 현안을 긴밀히 논의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구상은 첫 단계부터 틀어졌다. 당장 여당 지도부를 ‘비윤→친윤’ 체제로 체질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부분 인용되면서 사실상 ‘이준석 배제’ 시도가 1차 무산됐다. 임시방편으로 초고속 2기 비대위 출범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법원의 판단에 운명이 내맡겨진 상황이다. 

후폭풍은 상당하다. 권 원내대표 등 윤핵관이 이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당 혼란을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윤핵관 2선 후퇴’가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윤핵관의 하방은 여당의 리더십 부재로 이어지며 대야(對野) 경쟁력이 소실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이 당면한 리스크다. 윤 대통령으로선 당장 윤핵관을 대신해 ‘이재명호(號) 민주당’과의 샅바싸움을 진두지휘할 대체재가 마땅찮은 실정이다. 이는 곧 집권 당정의 여소야대 극복 동력 상실을 의미한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윤핵관 2선 후퇴’ 초읽기...‘친윤 체제’ 구축 좌초 위기

국민의힘 최대 파벌인 친윤계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친윤의 실질적 리더인 윤핵관이 여당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면서다. 

지난달 31일 윤핵관 양대 축으로 꼽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장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공직이나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지역구와 상임위원회 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공언했다.

장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윤 대통령 최측근들의 2선 후퇴를 암시하는 복선이라는 평가다. 윤 대통령 ‘복심’으로서 국정 부담을 덜어주려는 처세이자, 논란의 중심에 선 윤핵관 맏형을 향한 ‘무언의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 의원이 2선 후퇴를 선언하면서, 결국 권 원내대표의 거취도 새 비대위 출범 후 ‘자진 사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새 비대위 구성과 권 원내대표의 한시적 직위 유지 등 ‘윤핵관 후방 배치’ 구상도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즉, 윤 대통령의 여당 개편 구상의 일환이라는 것.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지난 1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새 비대위 출범까지 윤 대통령의 역할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다’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통령과 여당은 당연히 소통하고 의견이 있으면 조율도 한다”라며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같은 집안의 부부관계”라고 답했다. 여기서 ‘부부관계’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을 비유한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도 본지와의 취재에서 “윤 대통령이 새 비대위 조직 과정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논란에 휩싸인 윤핵관부터 일단 2선으로 물리고, 여당 조직도를 리모델링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당내 일각에선 윤핵관을 향한 윤 대통령의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여당 내홍 수습과 내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구상’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윤핵관이 윤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최측근 인사들에게 당을 맡긴 결과가 처참한데, 새로운 대안을 찾지 않겠나”라고 윤 대통령의 ‘정계개편’ 고려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뉴시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뉴시스]

2024 총선 전 여당 정계개편설 ‘모락모락’

“제가 창당하진 않을 것이다.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면 누가 창당하려 것 같다. 기자회견에서 윤핵관과 그 호소인에게 마지막에 질문한 게 그거였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느냐. 이렇게 해놔도 총선 앞두고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 텐데, 정계개편 이런 걸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8월 15일 CBS 라디오)

이 전 대표가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정계개편 시도 가능성을 언급한 말이다. 그는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비대위가 무산될 경우 윤핵관이 창당 등 정계개편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윤 대통령이 ‘윤핵관 무용론’을 인정하고 당 운영을 맡길 대체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계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일 MBC 라디오 방송에서 “이 사람들(윤핵관)이 결국에는 여의도에서 정치를 오래 해서 정치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치력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대통령께서 생각을 해서 이런 무능력한 사람들하고 내가 여의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 나는 옛날에는 세단 차를 탔는데 이제는 SUV 차로 바꾸겠다. 내가 함께 할 정치적인 세력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 바운더리(경계)를 넘어선 보다 더 큰 정계개편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왜냐하면 본인(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없었는데 정치를 안 해봤는데 검사로서 생활하다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 그러면 정치권에 있던 사람들이 무능력하고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 본인이 (정치판을) 바꿔보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는 소명감을 가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최근 여의도에선 윤핵관을 포함한 여당 친윤계의 ‘선(先) 탈당-후(後) 창당’ 시도 가능성이 왕왕 거론된다. 만약 새 비대위마저 법원 판결로 무산될 경우 이 전 대표의 퇴로가 열리는 만큼, 윤핵관을 중심으로 여당 정계개편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것. 이른바 ‘보수판 열린우리당 창당’ 시나리오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친노무현)계 인사들이 새천년민주당에서 집단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 당시 민주진영의 구도도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이 지난 7월 대통령실 직속 기구인 국민통합위원회의 수장으로 김한길 전 대표를 영입하면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창당 전문가’ 또는 ‘정당 분쇄기’로 통한다. 국내 정치판에서 몇 안 되는 정계개편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여권발 정계개편설은 앞서 지난 3.9 대통령선거 기간에도 제기된 바 있다. 대선 당시 김 위원장이 윤석열 캠프의 새시대준비위를 맡으면서, 보수정당 주도 하에 일부 민주당 세력을 흡수한 통합정당 출범을 구상하고 있다는 후문이 파다했다.

6.1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김한길표 ‘재창당’이 재차 수면 위로 부상했다. 윤 대통령의 권유로 여당 원내대표 대신 광역단체장으로 노선을 바꾼 ‘원조 윤핵관’ 김태흠 충남지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운동권 출신 좌파를 제외한 세력 중 정권 교체를 갈망했거나 국민의힘 당원이 아니면서 윤석열 정부 탄생에 기여한 당 바깥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형 재창당’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김 위원장을 구심 삼아 윤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도 ‘친윤 신당’을 만들어 현 정부의 국정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골수 지지층이라고 밝힌 한 당원은 본지에 “김한길 위원장의 연합정당 구상보다 친윤 정당을 조속히 꾸려야 한다”라며 “지금의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명쾌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한 강력한 정당이 뒷받침돼야 국정 운영도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정계개편, 여소야대 속 ‘자충수’”

반면 여권에선 용산발 정계개편이든, 친윤계 주도의 탈당-창당 정계개편이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의 정계개편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실행된다고 해도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주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논리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현실적으로 지금의 여당을 쪼개고 재창당을 하는 것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민주당에게 국정 주도권을 헌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며 “지금은 안정적으로 새 비대위를 안착시키며 지금의 플랫폼(당)을 잘 유지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했다.

같은 당 다른 의원도 “당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정계개편은 지금 상황에서 비현실적 대안”이라며 “친윤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극단적 구상은 국회 민주주의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정계개편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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