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추석특집] 산후우울증
출산후 우울증·모유수유 기간과 겹쳐 영아에 영향주기도⋯

얼마 전 5월 생후 1개월 된 친딸 학대치사 20대 친모가 항소심서 집행유예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친모는 "산후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자 출산을 후회했고 배우자에게 토로했으나 생계를 책임지던 배우자는 달래기만 할 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며 결국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고 피해 아동을 혼자 돌보던 중 이성을 잃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법원에서 출산 후 우울증으로 인한 산모의 심신 미약을 인정한 사례인데 이처럼 최근 사례가 늘면서 주목받고 있는 산후우울증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정문제 및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산모라면 분만 후 며칠 내에 흔히 일시적인 우울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산후 우울감’(postpartum blues)이라고 한다. 그 원인은 임신 중이나 분만 중에 경험하는 흥분과 두려움에 따른 정신적인 불안감, 호르몬의 변화, 산욕기 초기의 불편함,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 퇴원 후 양육에 대한 걱정, 여성적 매력의 저하에 따른 불안감 등이다. 다만 증상이 치료를 요구할 정도로 격렬하지 않으며 수일 내에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산후우울증은 말 그대로 출산 후에 산모가 기분으로서의 우울감이 아닌 감정으로서의 우울 증상을 겪는 것이다. 대개 출산 후 4~6주 사이에 나타나며 우울감, 불안감과 함께 불면, 과도한 체중 변화, 집중력 저하가 발생하고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 심하면 죽음 등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생각 때문에 생활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산후우울증은 산모의 10~15%가 겪고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며 심한 경우 1년 이상 지속될 수 있으며 과거 우울증 등 기분 관련 장애 병력이 있으면 산후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주변인들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거나 남편, 가족 등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경우 산후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산후우울증이 위험한 이유는 산모 본인에게도 악영향이 있지만, 특히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아이에게 있어 정서적, 심리적 유대관계의 첫 시작은 모체인데, 이 시기에 모체와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인지기능의 저하, 정서적 불안감, 대인관계 형성의 어려움 등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우울증인 산모가 충분한 관심과 위로를 받지 못해 마음의 상처가 심한 상황에서는 아이에게 모성애를 넘어 과한 애착심이 생기거나 반대로 아예 무관심으로 모성애를 해리시켜버릴 수도 있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산모에게 출산 후 우울을 느끼는 시기는 모유 수유 기간과 겹칠 수 있으므로 영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우울제 등의 신경정신과의 약물치료는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다만 산후우울증을 방치하거나 정도가 지나쳐 양육과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심하다면 전문가와 상의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한한방부인과학회 및 동의신경정신과학회 등의 한의학계에서는 산후우울증에 있어 한의학적 치료를 통해 항우울제 복용 없이 한방치료를 단독으로 시행하였을 때에도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항우울제를 함께 복용할 경우에도 양약 투여량을 줄이면서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데 큰 효과를 보이는 논문 결과들을 제시했다. 논문 내용을 보면 산후우울증은 울증(鬱症)에 해당되기 때문에 소간해울(疏肝解鬱), 양심안신(養心安神), 조창기기(調暢氣機)하는 소요산(逍遙散)과 심비동치(心脾同治), 기혈동보(氣血同補)하는 귀비탕(歸脾湯) 등의 한약 치료를 활용한 연구들이 있었다.

또한 침구치료는 산후 우울증과 깊은 연관을 갖는 장부를 심(心), 간(肝)으로 보고 심경의 신문혈과 간경의 태충혈 등의 혈위를 활용한 연구가 많았고, 인당혈, 백회혈 등 다양한 두부(頭部)의 혈위를 사용한 연구가 다수 있었다. 향후 산후우울증에 대한 한의학적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함께 양방의 약물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양약복용 시 수유에 대한 부작용 우려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후우울증의 치료 기간은 산모마다 각 상황이 천차만별이기에 환자의 유병 기간, 우울증 증세, 양약 복용의 유무, 가족 및 주변인과의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치료 도중에 우울증에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기간은 길어질 수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주인공은 산후우울증으로 고통스러운 날을 보냈지만 결국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여기에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무사히 치료를 마친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직장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산후우울증의 극복을 위해서는 출산 전 여성, 아내에서 출산 후 엄마가 되는 역할 변화는 산모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과 주변의 도움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것임을 함께 공감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한 환자-의사 관계에서도 의료진이 적극적인 관심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산모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 기분, 생각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덧붙여 출산 후에는 심신의 회복을 위해 올바른 영양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수유부에서는 임신기에 비해 500칼로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수분의 섭취는 2.5리터를 꼭 채우고 3개월까지는 부족한 철분을 보충해주는 것이 좋다. 체중 감량이 급한 마음에 시도하는 과도한 다이어트는 산모의 안정적인 정서를 유지하는 데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적어도 산욕기와 수유가 끝나는 기간까지는 무리한 다이어트는 하지 말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산후 3개월 이후부터 운동요법을 통해 체중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때 충분한 영양과 산후 다이어트를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한약 처방을 할 수도 있다.

여성이 엄마가 되는 일은 정말 경이로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적 같은 행복감도 잠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는 여성들이 많이 있다. 산후우울증 증상이 심하다면 힘든 자아를 억누르거나 바쁘고 정신없다고 치료를 미루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는 물론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치료의지를 굳건히 가지고 바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동화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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