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정부의 권력지형이 180도 뒤집어졌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으로 불리는 정치인들의 2선 후퇴 기류가 뚜렷한 가운데 관료와 검찰 출신을 쌍두마차로 하는 용핵관’(용산 대통령실 핵심관계자) 전성시대가 열렸다. 추석 연휴를 거치며 마무리된 대통령실 인적쇄신 이후 보다 뚜렷해진 현상이다. 이때문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과 20대 대선 본선 등 치열한 전투에서 크고작은 고비를 넘어 윤석열정부 탄생의 1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던 윤핵관 그룹의 목소리는 당분간 힘을 잃게 됐다. 윤핵관 투톱으로 불렸던 장제원 의원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핵심 축으로 하는 경제관료 집단은 윤석열정부의 신()주류로 급부상했다. 아울러 오랜 시간 동안 윤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끈끈한 인연을 맺어온 검찰출신 참모들 또한 건재를 과시하면서 윤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으로서의 막강한 위상을 공고히 했다.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용핵관 전성시대 개막, 검찰출신과 경제관료그룹 신주류 부상
윤핵관 제거, ‘주연 김대기·기획연출 검핵관작품설 친정체제 구축
- 이관섭 정책기획수석·김은혜 홍보수석 구원투수영입

한마디로 윤 대통령 용인술의 대변화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윤 대통령의 인사철학은 단순하다. 신뢰의 원칙 하에서 참모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형태였다. 한마디로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여권 주변에서는 윤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사들의 경우 크고작은 과오가 있을지라도 손쉽게 교체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이는 현 정부 조각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다만 6.1지방선거 대승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대내외적인 경제위기의 가속화는 물론 국민의힘 내부의 끝없는 내홍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지율 폭락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취임초 국정동력까지 상당 부분 상실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결단이 필요했던 셈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대통령실을 시작으로 대변화를 꾀했다. 실력 위주의 경제관료 중용과 생사고락을 함께 넘어온 검찰 출신 측근들을 재신임하면서 보다 유연해진 용인술을 선보였다. 윤핵관 의존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보다 강화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실서 무슨 일이...” ()주류 산실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 주변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대에 올라섰다는 낭보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추석연휴 직후인 1315일 사흘간 실시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3%로 나타났다. 74주차 이후 20%대 수렁에서 벗어나 30%대로 올라선 것은 물론 91주차 직전 조사때보다 6%포인트 급등한 것이라 더욱 고무적이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 추석연휴를 전후로 단행된 대통령실 인적쇄신의 효과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인위적인 인적쇄신에는 부정적이었으나 지난 8월 여름휴가 이후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고 언급하면서 물꼬를 텄다. 인적쇄신 없이는 국정동력 상실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후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기한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확고부당한 신()주류로 부상했다. 김대기 실장은 윤핵관 그룹에 의해 인적쇄신의 대상자로 거론됐지만 오히려 인적쇄신을 주도하면서 위기에 처한 윤 대통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지근거리에서 수시로 호출하는 문고리권력의 핵심인 점을 고려하면 김 실장의 위상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김 실장은 특히 대통령실 근무만도 5번인 역전의 용사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참여정부·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행정관·비서관·수석 등을 두루 거쳤다.

인적쇄신은 뒤집어보면 윤핵관그룹의 2선 후퇴였다. 이와 관련해 원조 윤핵관으로 불렸던 장제원 의원이 임명직 고사 입장과 더불어 2선 후퇴 입장을 밝힌 것도 상징적이다. 이후 정책기획수석 신설과 홍보수석 교체 등 정책·정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비서관급 중폭 교체와 행정관급 등 50여명의 물갈이도 단행됐다. 대통령실 구성은 사실상 인수위 시절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던 장제원 의원의 작품이었다. 그만큼 장제원 라인이 대통령실 곳곳에 포진했지만 윤핵관 라인이 대거 제거되면서 이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초대 국무조정실장에 문재인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내정했을 때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토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핵관 그룹의 영향력 약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인적쇄신 이후 신주류로 우뚝선 김 실장은 지난 13일 대통령실 모든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회를 열었다. 2기 대통령실 출범과 더불어 내부기강을 다잡기 위한 것이었다. 김 실장은 대통령실 근무가 다섯 번째인데, 이렇게 여건이 나쁜 적이 없었다눈에 보이는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 어디서 짱돌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철저히 리스크를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한덕수·추경호·이관섭 경제관료 전성시대내각·대통령실 장악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3.20.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3.20. 뉴시스

대통령실 인적개편의 큰 틀이 마무리되면서 경제관료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특히 기재부 출신 관료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여론의 직접적인 노출 속에서 윤핵관 그룹이 집중포화를 맞는 것과는 달리 실속을 챙기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현 정부 핵심 포스트에 자리한 기재부 출신 인사들은 한둘이 아니다. 내각은 물론 대통령실에서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대기 비서실장 등 국정운영의 투톱이 기재부 출신이다. 이는 문재인정부 시절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치인을 국정운영 투톱에 배치한 것도 뚜렷하게 대비된다. 또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상목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현 정부 경제팀의 주력부대 또한 기재부 출신이다. 문재인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에서는 정치인이나 대학교수 등 학자출신이 경제팀 핵심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시절 김수현·김상조 정책실장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기재부를 제외한 나머지 정부부처에서도 기재부 출신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조규홍 복지부장관 후보자와 조용만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기재부 관료 출신이다. 앞서 문재인정부 시절 기재부 산하 외청장 자리에서도 기재부 출신들이 번번이 물을 먹었던 점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정책능력과 정무적 판단력을 갖춘 기재부 출신들이 타부처 차관이나 기조실장 등 주요 보직을 얻기도 했지만 윤석열정부에서 보다 뚜렷해졌다. 이 때문에 해당 부처에서는 모피아 출신이 다해먹는 거 아니냐는 푸념마저 나올 정도다.

피의 학살살아남은 검그룹대통령 신임 재확인

기재부 출신 관료들과 더불어 주목할 그룹은 검찰 출신이다. 속칭 검핵관 라인은 인적쇄신의 무풍지대였다. 앞서 검핵관 그룹은 윤석열정부 초반 여야를 가리지 않은 인사실패 비판 속에서 거센 교체론에 시달렸다. 장관 후보자 검증실패는 물론 사적채용 논란 등 크고작은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박홍근 민주당 원대대표는 육상시라는 거친 표현을 꺼내들면서 검핵관 그룹을 정조준해왔다. 다만 피의 학살로 불리는 대통령실 인적쇄신의 칼바람을 피했다. 윤재순 총무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 등 이른바 검핵관들은 윤 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했다.

특히 검찰출신 그룹은 대통령실 인적쇄신 과정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중심으로 내부감찰을 주도하면서 보다 확고해진 영향력을 과시했다. 대통령실에 자리잡은 윤핵관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실 내부정보를 여의도 국회로 흘리는 심각한 기강해이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대기 비서실장과 손잡고 윤핵관그룹 제거를 배후에서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조선 건국이 주연 태조 이성계·기획연출 삼봉 정도전의 작품이었다면 이번 대통령실 인적개편은 주연 김대기·기획연출 검핵관과 다를 바 없다.

이 때문에 용핵관 그룹 중에서도 검핵관 그룹의 파워가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주류로 떠오른 김대기 실장 역시 검핵관 그룹과는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후문이다. 검찰 출신 핵심실세를 뜻하는 검핵관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커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대통령실 인적쇄신과 관련해 검핵관 그룹의 전면교체를 요구했지만 향후 상시적으로 진행될 인적쇄신의 주도권은 검핵관 그룹이 쥘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 정부 스타장관으로 최고실세인 한동훈 법무장관 역시 검찰 출신이다. 윤 대통령의 막강한 신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관료·정부 쌍두마차총선앞두고 윤핵관 권토중래

김승호 인사혁신처장과 중앙부처 실·국장급 공무원들이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고위공무원 연수회에 참석해 특강을 경청하고 있다. 2022.07.08.뉴시스
김승호 인사혁신처장과 중앙부처 실·국장급 공무원들이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고위공무원 연수회에 참석해 특강을 경청하고 있다. 2022.07.08.뉴시스

윤 대통령은 대선과 인수위 시절 윤핵관 그룹에 크게 의존했다.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인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윤핵관 그룹은 인사와 조직을 장악한 채 국정운영을 주도했다. 다만 결과는 처참했다. 지나친 권력다툼에 국민들은 염증을 느꼈다. 부담은 고스란히 윤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지지율 폭락 사태 속에서 윤 대통령을 향한 온갖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다. 윤핵관 책임론이 여기저기서 분출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달라진 용인술을 선보였다. 특히 대통령실 인적개편 이후에는 실무능력을 갖춘 기재부 관료 그룹과 오랜기간 본인을 위한 로열티를 보여온 검찰 출신 참모그룹을 선택했다.

대통령실 인적개편 이후에는 윤핵관 라인의 줄사퇴와 더불어 용핵관과 검핵관이 정국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고심이 깊게 녹아있다. ‘정권교체라는 높은 국민적 기대감 속에 집권했지만 취임 이후 약 4개월여는 총체적 난국의 연속이었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 속에서 야당의 반발과 여당의 내홍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탈출구 찾기도 쉽지 않았다.

최소한 연말연초를 전후로 지지율을 40%대 중반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 지지율 회복이 없다면 차기 총선전망도 불투명한 것은 물론 5년 내내 레임덕 상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여권의 권력지형은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새롭게 짤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아울러 산업부 관료 출신의 이관섭 정책기획수석과 김은혜 전 의원을 홍보수석에 파격 발탁하는 승부수로 기재부 경제관료와 검찰출신 참모들의 권력집중을 막는 견제장치도 마련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취임 초기 20%대 지지율이라는 이례적인 현상을 겪은 윤석열 대통령은 값비싼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면서 최근 대통령실 인적쇄신을 마무리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기는 2024422대 총선까지 약 16개월 정도다. 관료와 검찰을 쌍두마차로 국정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한 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윤핵관은 이준석 전 대표와의 진흙탕 싸움을 비롯해 집권여당 내홍 과정 속에서 크고작은 구설수로 국민밉상으로 불릴 정도로 부정적 이미지를 줬지만 권토중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당분간은 수면 아래서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겠지만 차기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윤핵관 그룹이 윤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권력 중심부로의 재진입을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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