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이 돌아가셨다. 사실 숨졌다정도로 쓰고 싶은데, 국내 정세가 심상치 않다. 여왕을 세계적인 거인으로 칭송하며, 우리 대통령의 추모방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더 놀라운 건, 그런 이들이 하나같이 영국 왕실의 장례문화에 정통해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영미문화권 장례절차의 하이라이트는 돌아가신 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건데, 그것을 영어로는 뷰잉 (viewing)이라고 한다. 영국 왕실에서는 이것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그런데 윤대통령은 무엄하게도 이 뷰잉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축구스타 베컴이 그걸 하려고 13시간 줄을 섰는데말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프로필을 찾아보니, 한겨레신문에서 30년 가까이 재직했을 뿐, 영국에 길게 머무른 적은 없어 보인다. 독학으로 영국의 장례문화를 섭렵했다는 뜻, 그런 그가 보기에 외교 초보 윤대통령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양문석이라는 민주당 인사는 김건희 여사의 하이힐에 주목한다. 조문참사가 일어난 게 다 여사의 하이힐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크롱 부부가 걸어갈 때 부부가 운동화를 신고 있었어요. 그런데 김건희 여사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어요. 걸어갈 수 있는 준비 자체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이었단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맞는 기분이었다. 조문 도중 뛰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건 병가지상사, 운동화 한 컬레 정도는 가지고 가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그런데 윤대통령 부부는 그런 기본을 지키지 못했고, 그 결과 시신과 마주하는 중요한 행사를 놓쳤다. 물론 윤대통령이 운동화를 신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까였을 것 같지만, 뷰잉을 안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나았으리라. 이 문제를 제기한 양문석은 현재 경남 통영고성 지역위원장, 고성에 사는 이가 선진국의 장례문화를 논하는데 서울 한복판인 용산에 자리잡은 윤대통령이 기본조차 모르는 건 내가 다 부끄럽다.

문재인 정권에서 를 담당했던 탁현민이 한 마디 안할 수 없다. 때가 때이니만큼 탁씨는 온갖 방송에 나가 윤대통령의 무지를 탓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발언은 다음이었다. “조문은 일종의 패키지인데 윤 대통령은 육개장 먹고 발인 보고 왔다는 것이다. 조문은 못 하고 운구한 다음 홀로 남아 조문록을 작성한 게 조문을 대체할 수 있나?” 그렇다. 영국 국왕이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문은 패키지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종목인 3단 뛰기가 -스텝-점프로 이루어지듯, 조문은 뷰잉-장례식장-조문록 작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뷰잉을 빼먹는 건, 3단뛰기에서 -스텝만 하고 정작 중요한 점프는 안 한 것과 같다. 또한 탁현민은 조문록을 쓸 때 통상 오른쪽 면에다가 정상들이 쓴다며 멋모르고 왼쪽에 쓴 윤대통령을 나무랐다. 윤대통령을 따라서 왼쪽에 쓴 수십명의 정상들로선 얼굴이 뜨거운 일일 듯하다.

그러고 보니 아쉽다. 여왕이 문재인 정권 시절에 사망했다면 진정한 조문이 무엇인지 탁현민이 잘 보여줬을 텐데, 하필 윤대통령 재임기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국 외교사상 유례없는 조문참사가 벌어졌지 않은가?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렇게 추락하다니!’라는 민주당 인사의 탄식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소를 잃었다 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윤대통령이 표명해 주신 애도에 감사드린다는 영국 대사의 덕담에 넘어가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왕실 외교의 틀을 다시 짜자는 얘기다. 우선 해외장례문화부를 신설하고, 영국의 장례문화를 국민들에게 가르치자. 뷰잉 대신 육개장이나 탐내는 이들과 조문록 왼쪽 페이지에 글을 남기는 이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 그리고 대선토론에 경제.안보.외교 등과 더불어 영국장례문화분야를 신설해 이를 모르면 대통령이 못되게 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문화는 벼락치기로 해결될 수 없고, 새로 왕이 된 찰스3세도 벌써 75, 지금 시작해도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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