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간의 전운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두 사람이 직접 정치무대에 등판해 난타전을 주고받는 이례적인 양상이다. 20대 대선과 정권교체 이후 전·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관계 속에서 양측 모두 신중함을 유지해왔다. 다만 최근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채 칼을 빼들었다. 문재인정부 스스로 최대 치적으로 평가하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를 맹비난하면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것이다. 오랜 기간 현안에 대한 언급없이 침묵을 지켜왔던 문 전 대통령도 가만히 잊지 않았다. 집권시절 북한과 맺었던 9.19 군사합의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도 이행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을 우회 압박했다. 상대방을 향한 직접적인 공세보다는 신중함을 유지해왔던 양측의 태도가 180도 뒤바뀐 셈이다. 특히 국감시즌을 앞두고 여야대치가 가팔라질 경우 전현직 대통령의 정면충돌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파열음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청와대 경내에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청와대 경내에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 NYT 인터뷰 정부 남북정상회담 정치적 쇼정조준
, 침묵 깨고 “9.19 군사합의 정권 바뀌어도 이행해야압박
- 여야 ·대리전·김건희 국감증인 채택 놓고 갈등 고조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한국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수관계다. 문재인정부 초반만 해도 한배를 탔지만 중반 이후 서로 등을 돌렸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의 파격 발탁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적폐수사를 주도했지만 조국사태 이후 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이후 대선국면에서 보수정당 대선후보로 나서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반대로 문 전 대통령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선택으로 정권을 내줬다.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발탁할 당시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대선 이후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특히 정권교체 이후 사정 칼날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사실상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북문제를 시작으로 한 신경전은 외교안보, 경제 등 전방위적인 확산되고 있다. 또다시 전현직 대통령이 맞붙는 신구권력의 정면충돌이다.

, 북에만 집착”vs“9.19 군사합의 지켜야맞불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요 이슈에 대한 상호공방을 자제해왔다. 전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신분은 물론 주요 이슈에 대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직접적인 공방은 정국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대를 자극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보다는 사실상의 장기간의 휴전을 선택한 셈이다.

최근에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과 9.19평양공동선언 4주년을 앞두고 양측이 이례적인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 및 대북문제에 대해 180도 엇갈린 시선을 드러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18일 윤 대통령의 뉴욕타임스 인터뷰와 문 전 대통령의 9.19 군사합의 기념 토론회 서면축사가 묘하게 같은날 동시에 나왔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을 전후로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을 비난한 적은 있지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을 자제해왔다. 과거 문 전 대통령의 사저인 경남 양산의 평산마을 경호구역 확대 조치로 화해의 시그널을 보낸 게 대표적이다.

다만 최근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윤 대통령은 교실에서 한 친구(북한)에게만 사로잡힌 학생 같아 보였다며 문 전 대통령의 지나친 대북 저자세를 문제삼았다.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이 핵을 도발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는 모든 패키지를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것이라면서 한미는 미국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해 융단폭격을 가했다. 윤 대통령은 미중패권 갈등 속 한국의 선택,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 한일관계, 사드 등 메가톤급 외교안보 사안에서 문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인식을 보여왔다.교착국면에 놓인 한일관계와 관련, 일괄타결 방식으로 과거사 갈등 등 한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한중관계의 뜨거운 감자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와 관련, “어떤 타협도 불가하다는 기조를 천명하면서 한국은 미중 관계에서 더욱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기조를 전면 부정하면서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퇴임 이후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강조했던 문 전 대통령은 반격에 나섰다. 최대 치적인 한반도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부정은 참을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문 전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와 관련, “반목과 대립, 적대의 역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쟁 없는 한반도의 시작'을 만방에 알렸다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남북간 합의이행에 소극적인 현 정부를 우회 비판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특히 9·19 군사합의에 대해 군사적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실천적 조치를 합의했다역지사지하며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만들어낸 역사적 합의라고 강조했다.

또한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고,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불신의 벽이 높고, 외교·안보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우리가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주도적 입장에서 극복하고 헤쳐나갈 때 비로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지속적인 이행을 촉구한 셈이다.

vs정면충돌 여야 문·김건희 국감증인채택 난타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 2019.07.01. 뉴시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 2019.07.01. 뉴시스

전현직 대통령의 정면충돌에 여야 모두 상대방을 향한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더구나 10월 국감시즌에 돌입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거칠어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을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회 다수의석을 바탕으로 문 전 대통령을 방어하면서 윤 대통령에 공세를 퍼부으면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지원사격하면서 문 전 대통령의 대북관을 문제삼았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4년 전 오늘 북한의 김정은과 문 전 대통령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는 이미 휴짓조각이 됐다제발 좀 (판문점) 도보다리의 미몽에서 깨어나 주시길 바란다고 문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특히 남한을 선제 타격하겠다는 것을 북한이 법에 명시한 이 마당에 9·19 군사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정말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국가 안보의 기본 틀을 와해시켰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끌려다니면서 지나친 대북퍼주기로 오히려 안보위협을 방치했다는 비판이다.

민주당도 거센 반격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남북정상간 회담을 정치쇼라고 국제 사회에 나가서 비난하면 대한민국 국격이나 위상이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라고 윤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어 대변인들의 논평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박성준 대변인은 특히 현 정부의 대북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과 관련, “() 비핵화 기조를 앞세워 북한이 비핵화·개방 시 1인당 소득 3000 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맹목적 추종 외교와 오락가락 미중 외교, 일본에 대한 굴종적 자세만 보인다고 꼬집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고민정 최고위원도 제 눈에는 문재인 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학생으로만 보인다해외로 나가면서 어느 원수가 전임 원수를 폄훼하나, 자기 얼굴 침 뱉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도 윤 대통령의 정치적 쇼 비난과 관련, “눈앞의 작은 열매를 따 먹으려고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베어버린 소탐대실이라고 꼬집었다.

양측 갈등은 국감 증인채택이라는 최악의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탈북어민 북송사건 등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을 국회 국방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의 표절논란과 관련해 국회 교육위 증인 채택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 모두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실제 역대 국감에서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부인에 대한 증인 채택은 성사된 사례가 없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양측의 증인 신청과 관련해 정치적 금도를 넘어섰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표면적으로는 국감 증인채택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지만 실질적으로는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수면 아래 전면전으로 볼 수 있다.

vs갈등전선 확대국감 앞두고 갈등 고조 양상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19.07.25.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19.07.25. 뉴시스

보다 심각한 것은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정면충돌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윤 대통령 측은 다급하다. 지지율 하락 방어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공세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문 전 대통령 측 역시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깬 만큼 보다 직접적인 반격에 나설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대리전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야는 그야말로 난타전을 주고받았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되고 잠이 오질 않는다, TV를 꺼버리고 싶다고 말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반면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만든 비정상 대한민국을 바르게 세워내는 일이 윤석열 정부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반격에 나설 정도였다.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이어진 대정부질문에서 양측은 서로의 약점을 정조준하면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노력했다.

외교안보사안으로 시작한 양측의 정면충돌은 전방적위적인 이슈로 확대됐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인사실패, 김건희 여사 특검론, 영빈관 신축 논란, 윤 대통령의 외교참사 논란 등을 집중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태양광사업 비리에 대한 문재인정부 책임론은 물론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경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남북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사안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여야 갈등이 거칠어지고 있는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또다시 무대 위에서 정면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가 융단폭격 공방 속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또다시 말폭탄을 주고받을 경우 양측의 관계는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셈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국감시즌을 앞두고 여야는 정국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여야가 각각 화력을 총동원하는 대상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라면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부르자는 실현 가능성 제로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대내외적인 경제위기에서 민생과 관련없는 네탓공방은 국민적 피로감만 높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정권교체로 막을 내린 20대 대선 이후 여야간 허니문도 없이 지방선거 혈전과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의 재등판이 이어지면서 여야 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무대 위로 올라와 전면전을 치를수록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오리무중의 상황에 빠져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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