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정치권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블랙홀에 빠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리는 정기국회가 막이 올랐고, 국정감사도 앞두고 있지만 모든 이슈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묻혔다.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여야 ‘강 대 강’ 대치는 극에 달하고 있고,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도 심화되고 있다. 이에 정치권은 ‘비속어 논란’을 바라보는 중도층 민심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윤대통령 ‘비속어 논란’ 블랙홀로 정국 경색
- “외교 참사” 대 “민주당의 선동” 충돌, 중도층은 누구의 손 들어줄까
정치권이 최근 5박 7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결과를 놓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결과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전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조문 취소 논란을 시작으로 빈손·비굴 외교 논란 등으로까지 번졌다.
민주 ‘외교참사’ 총공세, 국힘 ‘광우병사태’ 소환 총력
특히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윤 대통령이 순방 기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회의장을 나서며 박진 외교부 장관 등 일행을 보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 발단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 순방 기간 불거진 논란을 ‘외교 참사’로 규정하며 대여 총공세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은 외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당론 발의한데 이어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동시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경질도 요구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국민 뜻에 따라, 어제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다면 이번 국회의 결정 사항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 대국민 사과도 외교 라인의 쇄신도 없이 그냥 뭉개고 가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은혜 홍보수석이 언론 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하자, 민주당은 “민심을 거역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이 밝히며 “대통령이 숙고의 시간은커녕 일말의 고려도 없이 해임건의안을 즉각 거부한 것은 국민 여론과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논란이 된 발언 자체를 부정하며 야당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배현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 XX’도 없었고 ‘바이든’도 없었다”고 주장했고, 박수영 의원도 “오늘 방송된 대부분의 보도가 아직도 ‘이 XX’와 ‘바이든’ 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왜 없었다는 팩트를 보도하지 않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을 MBC의 ‘자막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며 과거 이명박 정부 초기의 ‘광우병 쇠고기 사태’까지 소환해 방어에 나섰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MBC 자막 조작 사건의 본질은 광우병 사태처럼 MBC가 조작하고, 민주당이 선동하여 정권을 위기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도 “조작된 광우병 사태를 다시 획책하려는 무리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꿈틀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도층 민심 싸늘, 대통령실·국힘대처 ‘적절치 않음’ 75.5%
여야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관련된 공방전을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중도층 민심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민심 향배가 정국에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핵심 ‘키’가 되기 때문이다. 여당이 총력 방어에 나선 상황이지만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과 정당 지지도에서 나타난 중도층 민심은 심상찮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 24%,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5%로 나타났다. 직무수행에 대해 부정평가를 하는 이유로는 외교(17%), 경험·자질 부족 및 무능함(13%), 발언 부주의(8%)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중도층의 경우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고,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3%나 됐다. 정당 지지도의 경우는 민주당(36%)이 국민의힘(31%)을 앞섰다. 중도층에서도 민주당(37%)이 국민의힘(22%)보다 지지도가 더 높았다.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전체 응답자 가운데 긍정평가 32.8%(‘매우 잘하고 있다’ 12.2%, ‘대체로 잘하고 있다’ 20.6%), 부정평가는 65.5%(‘매우 잘못하고 있다’ 57.2%,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 8.3%)로 집계됐다. 중도층에서는 부정평가(69.7%) 응답이 긍정평가(28.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의 경우도 민주당(46.6%)이 국민의힘(37.0%)을 앞섰다. 중도층에서도 국민의힘 30.0% 대 민주당 42.1%로 집계됐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데이터리서치가 지난달 26일 실시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잘함’ 33.4%, ‘잘못함’ 65.8%로 집계됐다. 중도층에서는 ‘잘함’(36.8%) 응답이 ‘잘못함’(62.6%)보다 높았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결과와 비속어 논란 등에 대한 중도층의 반응도 싸늘하다. 앞서 언급한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가운데 ‘도움 됐다’는 응답은 33%, ‘도움 안됨’ 응답은 54%였다. 중도층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며 ‘도움 됐다’ 28%, ‘도움 안됨’ 63%로 집계됐다.
또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서 전체 응답자의 58.7%가 “바이든으로 들었다”고 답했고, 29.0%는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도층도 ‘바이든’ 60.2%, ‘날리면’ 23.8%로 나타났다.
또 같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0.8%가 비속어 논란 발언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으며 33.5%는 ‘사과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중도층에서도 ‘윤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가 66.2%로, ‘사과 불필요’(26.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리서치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한 평가와 관련, 전체 응답자 중 ‘잘함’ 32.6%, ‘잘못함’ 65.7%로 집계됐다. 중도층에서도 ‘잘함’ 응답은 36.0%로 낮았고, ‘잘못함’은 62.2%로 높았다.
2024년 총선 우려 목소리 나오는 집권여당
데이터리서치 조사에서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대처에 대해 ‘적절치 않음’ 응답이 75.8%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적절함’은 20.3%에 불과했다. 중도층에서도 ‘적절치 않음’ 반응이 75.5%로 ‘적절함’(20.5%) 반응보다 많았다. (여론조사 결과 관련 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 기관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중도층 민심에서 우위에 섰다고 판단한 민주당은 대여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박성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갤럽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취임 다섯 달도 되지 않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말 레임덕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그러나 여전히 윤 대통령은 지지율 폭락의 이유를 아직 깨닫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이렇게 지지율이 폭락해도 대통령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외교 참사에도 바뀌지 않았고, 경제위기가 엄습해 오는데도 바뀌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욕설 논란에 조작 운운하며 언론을 탄압하고, 위기 극복에 국력을 모아도 모자랄 시기에 국민에게 화만 내는 적반하장의 태도가 윤석열 정부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여권의 대응을 비판하며 2024년 총선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29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특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관련된 여권의 대응에 대해 “온 국민이 지금 청력 테스트를 하는 상황이다.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국민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나”라며 “대통령실이나 우리 당이나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당장 중단하고 이 문제는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대통령이 잘하고 우리 당도 잘해야 총선에 희망이 있는 거지 이대로 가면 총선은 뻔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