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도 재계 인사로 ‘득실’...현안 동떨어진 질의 일색

2018년도 국정감사 및 2017회계연도 결산 시정요구사항에 대한 추진현황 보고 등을 안건으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이 한미연합훈련 관련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질답을 하던 중 정 장관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자 고성을 지르고 있다. 2019.08.21.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2018년도 국정감사 및 2017회계연도 결산 시정요구사항에 대한 추진현황 보고 등을 안건으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이 한미연합훈련 관련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질답을 하던 중 정 장관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자 고성을 지르고 있다. 2019.08.21.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총수 대신 CEO 대거 증인으로 채택...대기업, 국감 ‘약방감초’       
재계 “급박한 국제정세 속 기업 군기잡기 소모적” 피로 호소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정감사를 앞둔 가운데 여야 정치권에선 재계 인사 등에 대한 국감 증인‧참고인 채택을 놓고 신경전이 오갔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리스크’로 민생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총수 등 재계 인사 줄소환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에 ‘망신주기식 구태 감사’라며 반발한 반면, 야당은 ‘국감에 성역은 없다’라며 맞받았다. 결국 올해 국감도 기업 총수들 대신 전문경영인(CEO)들이 대거 증인‧참고인 리스트에 오르며 재계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비출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세계 유력 국가들의 반도체 공급망 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등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재계 인사들을 일단 국감장에 세우고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역대 국감은 정쟁 요소로 활용된 측면이 강하다. 국익보다 당리당략에, 민생보다 정쟁에만 치중한 정치인들의 목청 경쟁의 장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여야는 저마다 올해만큼은 ‘민생국감’을 통해 민심 소구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나, 국정감사일정은 현안과 동떨어진 여야 정쟁 소재로 가득한 모양새다.

삼성‧현대‧네이버 등 국감 ‘고유명사’ 된 대기업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 국내 대기업 CEO들이 국감 증인으로 어김없이 채택됐다. 국회 여야는 기업 총수들 대신 경영 일선에 밝은 대표이사들을 소환해 기업 경영현황을 따져 묻기보다 국내외 경제 상황을 조망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현안과 무관한 ‘기업 군기잡기’가 올해도 반복될 것이라며 국감 전부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승‧노태문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돼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4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 삼성전자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 삼성세탁기 유리문 파손에 따른 소비자 피해 및 불량 조치 등을 질의한다는 방침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도 7일 공정거래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갤럭시S22의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사태에 따른 공정거래법 위반, 반도체 수율 문제 등에 대해 공정위원들의 질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의 중견 인사는 본지에 “세탁기 유리문 파손에 대한 기업의 대응 문제가 과연 국감 현안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국감장을 머릿수로 우선 채우고 보자는 식의 증인 소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선 10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번 행안위 국감에선 태풍 ‘힌남노’에 대해 제대로 대처했는지 책임 여부에 대한 질의가 쏟아질 전망이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 9월 6일 발생한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가 침수되며 파장이 일었다. 침수 피해 추정액만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침수된 포항제철소 고로는 49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을 멈췄고, 침수 피해가 극심한 압연 설비도 여전히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풍 피해로 철강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 만큼, 조선‧자동차 업계에서도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도 4일 산자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피해 현황과 사전 인지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공 사장은 민주당 김한정 의원의 증인 신청에 따라 국회로 소환됐다.
전기차 사업이 활발한 현대차의 경우 미국 IRA 시행에 따른 타격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현대차는 현재 내부적으로 비상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 IRA 대응 차원에서 미국으로 긴급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듯 긴박한 상황에서 공 사장의 여의도 호출은 현대차에게 추가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소모적 처사라는 지적이다. 차량업계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미국 IRA 조치로 전기차 업계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과연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의문이다. 지금 그쪽(현대차) CEO라면 국내외를 오가며 초 단위로 쪼개서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을 텐데, 국회 감사장에서 보내는 1분 1초가 공 사장에겐 절박한 순간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는 6일 열리는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국감에는 최수연 네이버 대표와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플랫폼 사업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다. 아울러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와 킴벌리 린창 멘데스 나이키코리아 사장도 상생협력 검증 차원에서 국회로 소환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41명의 증인 및 참고인 국감 출석 요구안을 가결했다. 환노위 국감에는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가 원·하청 임금구조 개선 문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선다. 아울러 광주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등으로 최익훈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가, 증정품 발암물질 유출 논란으로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각각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정종철 대표도 물류센터 사고 예방조치 점검 차원에서 증인으로 채택됐다.

또 행정안전위원회는 4일 국감에 포스코 최 회장을 비롯해 손희석 에어비앤비코리아 유한회사 컨트리 매니저(에어비앤비 공유 숙박 불법 운영), 류혁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새마을 금고 투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올해 국감도 결국 이렇듯 대기업 사장단으로 증인 리스트를 가득 채운 가운데, 중대 현안은 찾아보기 힘든 모양새다. 대체로 기업 경영과 관련한 국부적 이슈나 황당한 질문으로 점철된 만큼, 올해 국감도 국회의원들의 일방적 호통과 기업 망신주기 일색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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