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이재명 ‘사법리스크’ 예의주시 속 차기 대안 물색 중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윤영찬 의원실 주최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586·친문·이재명의 민주당을 넘어 국민의 민주당으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윤영찬 의원실 주최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586·친문·이재명의 민주당을 넘어 국민의 민주당으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승리한 2016년부터 불과 1년 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던 여의도 최대 계파인 친문(親文, 친문재인)이 자취를 감췄다. 일견 이재명 지도부 출범과 사정 정국 본격화로 민주당이 단일대오를 갖추면서, 친문이 비명계로 동조화된 데 따른 현상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용산발 검풍(檢風)과 2024 총선 살생부를 일단 피하고 보겠다는 친문의 ‘잠복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엄존한다. 민주당 계파 갈등이 ‘종식’됐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3.9 대선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친명정당으로 급속 재편된 민주당이 과연 지난 수년간 ‘민주당 메인스트림(주류)’이라 자부했던 친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 것일까. 이를 두고 정가에선 친문의 몰락이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친문의 ‘주명야문(晝明夜文)’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거나, 친문 결집을 주도할 인물이 등장한다면 굳건한 친명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퇴장으로 국내 정당사상 최대 계파로 분류됐던 친문에게도 사실상 시한부 판정이 떨어졌다. 친문은 지난 대선 경선 때만 해도 이낙연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당시 이재명 후보를 거세게 압박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지난 8.28 민주당 전당대회가 친문 하방의 신호탄이 됐다. 이재명 대표가 무려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얻으며 야당 리더십을 움켜쥔 데 이어 최고위 등 지도부와 고위 당직이 대거 친명 일색으로 채워졌다.

한편, 앞서 지난해 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치러진 임시전대에서 친문 홍영표 의원이 송영길 전 대표에게 패한 것이 친문에게 치명적이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게다가 개딸(개혁의 딸) 등 신규 강성 당원들이 민주당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점도 친문의 하락세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전대 경선을 앞두고선 친문 홍영표‧이원욱 의원 등이 강성 친명 팬덤에게 문자‧대자보 테러를 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사실상 친문 등 비명계가 강성 당원들의 ‘등살’에 여론전이 불가한 고립무원 처지에 놓인 셈이다.

민주당의 ‘체질 변화’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9월 동아일보 보도 등에 따르면 3.9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 이 대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일부 친문 당원들이 ‘해당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제명 조치됐다. 이에 비명계 등 당내 일각에선 권리당원들 사이에서도 ‘친문 필터링’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장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위원들이 12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비서관 등을 직권남용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친문 ‘주명야문’의 시간...“총선 데스노트만 아니면” 

사정 정국에 돌입한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견고한 단일대오를 갖추며 대여 투쟁에 나섰다. 

친문도 예외는 아니다. 불과 지난 전대 경선까지만 해도 ‘이재명 전대 불가론’을 주장하며 이 대표와 맞섰던 친문이다. 하지만 ‘친문 핵심’ 전해철‧설훈 의원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최고위원 등이 지난달 발족된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의 상임고문으로 대거 배치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법무장관을 지냈던 ‘순장조’ 박범계 의원도 정치탄압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정치탄압대책위는 외형상 전 정권에 대한 현 정부의 사정 압박에 대응한다는 취지이나, 본질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응을 전담하는 TF(태스크포스)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여기에 친문 최후 전선으로 여겨졌던 홍영표 의원은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을, 문재인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지낸 황희 의원은 국제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이는 현 정부의 사정 압박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탕평인사이자, 친문으로 하여금 ‘친명 귀순’을 압박하기 위한 이 대표의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현재로선 이 대표의 이러한 구상대로 구 당권파 핵심 멤버들이 문재인 정부와 이 대표를 동시 겨냥한 여권발 사정 한파에 한 목소리를 내며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친문으로선 ‘문재인 지키기’라는 명분이 주어진 만큼, 적어도 ‘굴복적 행보’로 비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거래다.

무엇보다 친문들의 주명야문 처세에는 2024 총선 공천권을 의식한 몸 사리기라는 계산이 기저에 깔려있다. 차기 총선까지 약 1년 반가량의 시간이 있는 만큼, 흐름을 살피며 이 대표의 ‘공천 데스노트’에 오르는 것만큼은 피하자는 셈법이다. 문재인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지냈다가 현 민주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의겸 의원이 그 일례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비명계 중진 의원은 “(친문이) 공천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며 “선당후사라며 친명과 공조하는 친문 출신 의원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일 뿐”이라고 현재 친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좌), 이낙연 전 대표(우) [뉴시스]
김경수 전 경남지사(좌), 이낙연 전 대표(우) [뉴시스]

납작 엎드린 舊주류 친문이 노리는 ‘한방’

일각에선 친문이 이대로 차기 총선까지 정중동 행보만 보이며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변수다. 만약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 기소 후 100만 원 인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차기 대선 등 피선거권 박탈과 함께 민주당이 400억 원가량의 대선 보전비용까지 반환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이 경우 리더십 공백을 틈타 친문들이 목소리를 내며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아울러 22대 총선 공천 리스트가 친명 인사들로 대거 채워진다면 친문이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천은 의원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편파 공천’이 문제시될 경우 극단적으로는 친문의 집단 탈당에 이은 신당 창당까지 현실화할 수 있다. 이 경우 2007년 친이-친박 ‘공천 학살’ 사건이 진보진영에서 재현되며 거대 진보정당이 궤멸 사태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정가에선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건재한 만큼, 친문의 구심점이 완전히 소실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드루킹 댓글조작 혐의로 복역 중인 ‘문재인의 복심’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내년 5월 만기출소를 앞두고 복권‧사면이 되면 민주당의 역학구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 전 지사가 예정대로 만기출소할 경우 2028년 5월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돼 친문의 재집결지가 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친문의 또 다른 대안으로 이낙연 전 대표가 거론된다. 대선 직후 연수차 미국으로 떠난 이 전 대표가 내년 상반기 귀국해 친문들을 아우르며 정치적 고향인 호남을 기반으로 이 대표와 제2의 대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실제로 친문 인사들 상당수가 미국에 있는 이 전 대표와 연락망을 유지하며 정세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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