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김준석 언론인] 숨가쁘게 움직이던 정치권의 시계가 멈췄다. 최근 신문과 뉴스를 도배했던 여의도와 검찰발 뉴스들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는 이태원참사가 모든 이슈를 빨이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여야가 극도의 신중모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어이없는 압사 사고로 15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국민적 참사 앞에서 여야 모두 지나친 정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도 되풀이됐던 현상이다. 문민정부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박근혜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여야는 정쟁중단을 선언하고 사고수습에 매달렸다. 서로의 이해를 다투는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적 애도, 사고원인 규명 및 진상파악,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책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특히 온국민이 희생자를 애도하는 국면에서 무리하게 정쟁을 주도하다가는 엄청난 국민적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 이태원참사에 따른 블랙홀 현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주요 정치현안을 되짚어봤다.

대장동 특검제안하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대장동 특검제안하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이태원 참사 후폭풍 모든 이슈 빨이들이는 블랙홀
- 이재명 아킬레스건 대장동 수사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정부 정통성 뒤흔들 서해피격논란도 소강상태

이태원 참사로 인해 주요 정치 현안과 이에 따른 검찰수사 등 국민적 이목을 집중시켰던 메가톤급 이슈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을 둘러싼 검찰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다.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서해피격 사건도 한동안 소강상태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청담동 심야 술자리 폭로 역시 잠잠한 편이다. 여야는 이러한 이슈를 주도하기보다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오죽하면 이태원참사의 여파로 대내외적인 경제위기는 물론 북한의 고강도 도발 역시 뉴스 주목도에서 밀리고 있을 정도다. 다만 이태원참사에 따른 여야 휴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5일 국가 애도기간을 마무리한 여야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사고원인 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 문제로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정조준대장동판도라의 상자유동규의 입

이태원참사 이전만 하더라도 정치권의 최대 키워드는 대장동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을 불리는 대장동 특혜개발의혹 수사 향방에 따라서는 정국이 엄청나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훈 법무장관이 분명한 수사의지를 강조하면서 여야의 대치전선은 더욱 가팔라졌다. 대장동 수사의 칼끝이 이재명 대표를 정조준하면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갈래로 엇갈렸다. 만일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에서 탈출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날 경우 차기대선 재도전을 위한 확실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수사를 주도한 검찰은 무리한 표적수사라는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 반대로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에서 벗지 못하고 몰락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린다. 윤석열정부는 그동안의 수세국면에서 벗어나 정국을 주도하면서 이전 정부 적폐청산에 보다 가속도를 낼 수 있다.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20대 대선을 뒤흔든 것은 물론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전한 논란이다. 최대 관건은 대장동 개발 당시 성남시장을 지냈던 이재명 대표의 연루 의혹이다. 주목할 점은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변신과 화려한 입이다. 그동안 침묵하다가 최근 검찰수사에 적극적인 협력을 다짐하고 있는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에 따라서 대장동 수사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 앞서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유동규 전 본부장과 공모해 지난해 대선국면에서 8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진실은 향후 검찰수사로 엇갈릴 전망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김용 부원장에게 건넨 8억여원의 자금과 관련, “내가 돈 상자를 전달했다“(이재명 대표의) 경선자금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유 전 본부장은 더 나아가 검찰에 휴대전화 클라우드 비밀번호를 넘겼다. 유 전 본부장의 휴대전화 클라우드에는 다양한 문서와 사진, 녹음파일 등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삭제한다 해도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컴퓨터에 자료를 저장해 두는 방식의 클라우드에서는 언제든 열람이 가능하다. 지난해 9월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유 전 본부장은 휴대전화를 폐기했지만 이와 관련 없이 관련 내용의 확인이 가능하다. 유 전 본부장은 이와 관련, “증거를 다 지웠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흔적은 다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며 여지를 남긴 바 있다. 검찰이 클라우드 내용과 자료 분석 등을 통해 불법 대선자금 규모와 전달은 물론 이 대표와의 유착관계 등에 대한 객관적 물증을 확보했을 경우 사실상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수사도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

반면 김용 부원장 측은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 중이다. 객관적 증거 없이 일방적인 진술만 의존해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반박이다. 실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 관련 수사의 경우 직접적인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속된 김 부원장은 검찰수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은 여전히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금품의 마지막 전달자인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것은 물론 자금원 역할을 했던 남욱 변호사를 포함한 관련자들의 진술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검찰수사가 속도를 낼 경우에는 거대 제1야당 수장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직접 수사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조준서해피격여야 물러설수 없는 뜨거운감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27. 뉴시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27. 뉴시스

대장동 의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사안이다. 서해피격 사건은 지난 2020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고()이대준 씨가 서해 북단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살되고 시신이 소각됐던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월북으로 규정하고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경이 180도로 결론을 뒤집으면서 정확한 실체에 대한 의문이 증폭돼왔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 방침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정치적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역대 정부에서도 감사원의 전직 대통령 서면조사 전례는 있었다. 감사원은 1988년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정책결정 과정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1993년 율곡사업 특감과 관련해 1993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은 바 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무리한 남북대화 추진을 위해 국민의 생명 보호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던져왔다.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문 전 대통령의 3시간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 때문에 서해피격 의혹과 수사는 윤석열정부 첫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방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감장에서 연일 뜨거운 공방이 오갔다. 또 서해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해 구속한 것도 논란이었다. 민주당은 “(문재인정부 시절) 국방위 내부에서 공무원의 월북 여부에 공감대가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결론을 뒤집어 서욱 전 장관 등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성실히 일하던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무참하게 피살됐고 시신까지 소각당했다당시 외교안보라인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라고 연일 공세를 이어나갔다.

여야 논란이 확산되는 와중에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주요 정보들을 SI(특별취급정보) 첩보들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 SI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돼 갔다. 이태원참사 여파로 서해피격 논란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만 언제든지 여야의 대충돌은 불가피하다. 실체적 진실의 여부에 따라서는 문재인정부의 정통성과도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어정쩡한 봉합으로 타협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사안이다.

고강도도발.청담동 심야술자리 논란 수면 아래로...’

북한의 고강도 연쇄도발 역시 이태원참사 국면 마무리 이후 여야가 뜨겁게 다툴 이슈다. 이태원참사로 온국민이 애도하는 기간에 북한에 무리한 도발을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비판했지만 남북 긴장고조라는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접근법이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3일 최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울릉도에는 공습경보까지 내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3일에는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남북이 합의했던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문제는 남북긴장과 대치가 강화될수록 한반도 안보환경이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무모한 도발을 비판하면서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지만 사태해결의 접근법과 인식은 180도 다르다. 국민의힘은 강력한 응징을 다짐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말 구제불능의 집단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북한이 우리의 영해와 영토를 침범해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탈한다면 우리 군은 결연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명분없는 도발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대화 테이블 복귀를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강경 일변도 대처는 시원하기는 하겠으나 더 큰 대치를 불러온다. 대북 특사도 적극 검토할 때라고 촉구했다.

전화통화하는 김의겸 의원. 뉴시스
전화통화하는 김의겸 의원. 뉴시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폭로했던 청담동 심야 술자리의혹도 잠잠해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지난 7월 대형 로펌인 김앤장 변호사 수십여명과 심야 술자리 의혹이 골자다. 드라마틱한 사안이지만 김 의원의 폭로 이후 역풍이 거셌다. 김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분명한 물증과 팩트 없이 무리한 폭로에 나섰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사실이면 제2의 국정농단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라며 벼르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저급하고 유치한 가짜뉴스라면서 이번 기회에 저질 왜곡선동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건희 여사 팬카페인 건사랑이 해당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를 고소하면서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메가톤급 정치적 역풍에 시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2의 세월호 참사로 불리는 이태원참사의 여파로 여야 정치권은 당분간 정쟁보다는 사고수습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대장동 수사와 문재인정부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서해피격 수사의 진전과 결과에 따라서는 여야의 사생결단식 대립과 갈등이 언제든지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태원참사 국면이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 경우 차기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여야의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면서 7차 핵실험을 앞둔 북한의 고강도 도발은 물론 대내외적인 경제위기 상황 역시 향후 정국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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