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은지민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은지민 변호사]

강간(强姦)과 화간(和姦)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당사자의 ‘동의’다. 통상적으로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성범죄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었는지에 따라서 그 성립 여부가 결정된다.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서 이루어진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형법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사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처벌되는 성범죄가 있다. 바로 ‘미성년자의제강간, 미성년자의제강제추행’이다.

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
①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강간죄),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②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19세 이상의 자는 제297조(강간죄),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원칙적으로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는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성립한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도9633 판결 참조).

반면 형법 제305조에 규정된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사람’을 처벌하며(제1항),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19세 이상의 성인’을 처벌한다(제2항). 의제(擬制)강간이라는 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강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특별히 강간죄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즉,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경우에는 설사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여 폭행·협박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강간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제305조 제2항은 N번방 사건으로 인하여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하에서 신설된 조항이다.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형법 제305조의 입법 취지다.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그 동의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만 13세 이상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가해자가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어야 미성년자의제강간죄가 성립하지만,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가해자가 성인이 아니더라도 위 죄가 성립한다.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이 조항의 입법취지인 만큼,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엄중하게 처벌된다. 이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공개명령, 전자발찌부착명령, 보호관찰, 취업 제한, 성폭력프로그램 이수, 사회봉사 등의 부수적인 보안처분 또한 병과될 수 있다.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기타 범죄보다 훨씬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는 성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관계에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판단 하에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정신적으로 취약한 미성년자는 성인보다 쉽게 성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하므로, 미성년자가 동의하였는지와 무관하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혹은 성관계 그 자체까지 처벌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성년자는 성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성적인 대상이 아니다. 미성년자의 ‘동의’는 성범죄의 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와, 더욱이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는 경우 자체가 일절 없어야 할 것이다.

<은지민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변호사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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