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명의 10대~30대 압사자를 낸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이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색출 단계로 접어들었다. “예고된 인재”  “경찰의 초기 대처 미흡” “90분 미스터리” 등이 언론의 주요 제목으로 뜬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 주요 사안으로 뜨지 않는 게 있다. 정치권*언론*교육의 책무와 역할에 대한 언급이다. 이 세 주체들이 각기 “예고된 인재”에 대비토록 젊은이들에게 사전 주의를 환기시켰더라면 참사 예방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우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책임이 가볍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막을 수 있었던 예고된 인재”라고 했다.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면 민주당은 당연히 참사 발생 전에 관련 경찰 기관이나 젊은이들에게 공개적인 경고와 대비책을 당부했어야 옳다. 하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참사가 터진 후에야 민주당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으로 “예고된 인재” 운운하며 관련 기관들에 대한 책임추궁에나 열을 올린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도 10만여 명이 밀고 밀리는 이태원 핼러윈 축재에 대한 사전 위험 경계나 경고는 없었다. 정치권이 정쟁에만 혈안이 되었을 뿐, 국민 생명의 위험은 안중에 없었던 탓이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신문이나 방송 모두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책임추궁에만 집중한다. ‘전날부터 사람들 떠밀려 다녔는데 구청*경찰 인파 대책 미흡했다’ 등 대책 미흡을 경쟁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언론들은 “전날부터 사람들이 떠밀려 다녔다”고 하면서도 참사 위험성에 대한 사전 경계나 경고 기사는 등한히 했다. KBS는 ‘재난 방송’ 임을 자임한다. 그런데도 KBS는 이태원 압사에 대한 사전 경계심 촉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지난날 참혹한 국내외 압사 사고가 여려 차례 발생했는데도 그랬다.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의 1426명 압사, 1993년 새해 전야 중국 홍콩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좁은 골목길 란콰이풍에서의 21명 압사 사고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1959년 사망자 67명을 낸 부산공설운동장 출입구 압사, 사망자 31명의 1960년 서울역 계단 압사,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출입구 11명 압사 등이다. 재난방송 KBS는 과거 저 같은 참혹한 국내외 압사 참사들을 환기시키며 10만여 명 운집에 따른 위험성을 10월29일 이전에 각인시켰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난방송으로서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공교육과 가정교육도 이태원 참사 책무와 무관치 않다. 초*중*고 교육 기관들은 어려서부터 학생들에게 국내외에서 자주 발생한 압사 등에 대해 교육했어야 한다. 또한 각 가정의 어른들은 젊은 아들이나 딸이 다중이 집결하는 축제 등에 참가키 위해 집을 나설 땐 지난날의 국내외 압사 사고들을 상기시키며 세심한 주의를 당부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좁은 골목으로 몰려 숨이 막힐 정도로 뒤엉키는 건 피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 속담에 80대 노인이 환갑 넘은 아들이 외출할 땐 “도랑 건널 때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각기 가정에서도 어른들이 외출하는 자녀에게 그런 당부라도 했더라면 사태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에겐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유독 심하다고 한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에는 고교생 304명이 제주로 항해하던 중 여객선 침몰로 사망했다.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월호 선주, 선장, 해양경찰 등에 대한 엄한 단죄가 내려졌다. 그런데도 그 후에도 해상 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은 두 배로 늘어났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성품 탓이다. 그런 건망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치권, 언론, 공공 및 가정교육이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 비극적 참사들을 상기시키며 경종을 울려주는 역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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