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정치권에 때아닌 개싸움이 벌어졌다. 이른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논란이다. 이태원참사 책임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후폭풍이 한창인 가운데 여야 정치권이 뜬금없이 개를 화두로 설전을 이어갔다. 여의도 정치권이 외교안보, 경제, 복지 등의 주요 이슈가 아니라 반려동물의 처리 문제를 놓고 전면전을 벌인 것은 정치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날이면 날마다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전·현직 정권까지 정면충돌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돼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이전 공방 탈북어민 강제북송 서해피격 등과 관련해 크고작은 다툼을 벌여왔던 전·현직 대통령 측은 해묵은 감정싸움 양상마저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실상 또 한 번 정면충돌한 셈이다. 전현직 정권의 해묵은 감정싸움을 들춰낸 풍산개 파양 논란의 풀스토리를 짚어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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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에 풍산개 곰이·송강 반환파양 논란에 사룟값도 쟁점
견사구팽·좀스럽다여야, 화력 총동원 진흙탕 설전 지속

- “대통령실 반대” vs “사실무근전현직 정권 진실게임 양상

사건의 발단은 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9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풍산개의 처리문제다.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풍산개를 키웠던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이후 풍산개 파양이라는 비판과 정치적 논란 속에서 최근 정부 측에 풍산개를 반환했다. 이는 풍산개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실게임이다. 여권은 문 전 대통령이 월 사육비용 250만원을 지원받지 못하자 키우던 반려동물을 파양한 게 아니냐며 맹공을 펼쳤다. 반면 야권은 윤석열정부 측이 기존 합의를 뒤엎어 문 전 대통령 측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며 거칠게 반박했다.

풍산개 반납하겠다”vs“사룟값 아까웠나진흙탕 공방전

이태원참사의 후폭풍이 한창이던 지난 7일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문 전 대통령이 애지중지 키워왔던 풍산개를 사실상 파양했다는 언론 보도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 측은 최근 행안부 대통령기록관에 퇴임과 함께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갔던 풍산개 한 쌍과 새끼 등 3마리를 국가에 반납하기 위한 협의를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소식은 풍산개 파양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거의 모든 언론을 도배했다.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유독 아껴왔던 문 전 대통령의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특히 풍산개 3마리의 사육비용이 월 250만원이라는 점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매월 1400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는데도 풍산개 사육 비용을 요구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이었다.

여권은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빗대 견사구팽(犬死狗烹)이라며 문 전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참으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문 전 대통령 측과 대통령기록관이 맺은 협약서와 관련, “해괴하다. 사료비 등 250여만 원의 예산지원 계획이 수립됐다퇴임 후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 사육비까지 혈세로 충당해야겠나. 겉으로는 SNS에 반려동물 사진을 올려 관심을 끌더니, 속으로는 사룟값이 아까웠나고 비꼬았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력 반발했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 처리 문제에 합의해놓고 이제와서 딴지를 걸었다고 반발하면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을 하는 것은 정부·여당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10·29 이태원 참사로 인해 모두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때, 풍산개를 누가 키워야하는지가 며칠째 계속 논란이라며 아니, 정확히는 사실을 왜곡해 굳이 지금 논란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양측의 논란은 진실게임으로 이어졌다. 문 전 대통령 측과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측이 지난 59일 맺은 풍산개 관련 협약서에는 사육 및 관리에 필요한 물품 및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풍산개는 김정은 위원장이 선물했다는 점에서 국가기록물 성격을 갖는다. 퇴임한 문 전 대통령이 키우기 위해서는 근거규정이 필요했다. 실제 행안부는 지난 6·식물일 경우 기존에 키우던 전직 대통령에게 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맡길 수 있다는 내용의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계속 기를 수 있도록 하고 현 정부는 관리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법제처 등 일부 부처에서 유사사례 증가 등을 우려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문 전 대통령 측은 용산 대통령실의 반대를 지적했고 용산 대통령실은 사실무근의 언론플레이라고 반발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보도자료에서 행안부는 617일 시행령 개정을 입법 예고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이의 제기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대통령실의 반대가 원인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용산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이 반대해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시행령 개정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문 전 대통령 측이 자체 판단에 따라 풍산개를 반환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파문확산 정치인·논객까지 대거참전풍산개 최종행선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하며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소개하고 있다. 2018.10.12.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하며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소개하고 있다. 2018.10.12. 뉴시스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려동물 파양이라는 자극적인 소식에 여야 정치인은 물론 논객들마저 대거 참전했다. 여권 측 정치인과 논객들은 사실상 비용문제로 파양한 것이라고 몰아세우며 문 전 대통령의 비정함을 난타했다. 특히 풍산개 3마리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떻게 통치했느냐며 독설을 날렸다. 야권 측 정치인과 논객들은 용산 대통령실이 기존 합의를 뒤집은 치졸한 보복에 나섰다고 밝혔다. 핵심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문 전 대통령이 계속 키울 것을 부탁해놓고도 이후 관련규정 정비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퇴임 후 받는 돈만 하더라도 현직 광역단체장보다 훨씬 많은데 고작 개 세 마리 키우는 비용이 그렇게 부담이 되던가라면서 3마리도 건사 못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5년이나 통치했나며 비꼬았다. 조은희 의원은 오죽하면 개 세 마리도 책임 못 지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겼냐 하는 한탄이 있다견사구팽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도 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이 장안의 화제다. 요체는 개사육비로 청구하는 250만원의 돈이 국고에서 지급되지 않자 화가 나서 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현 정권이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대통령에게 들어온 선물은 국가 소유로, 위탁이나 관리 규정이 없어 이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재인정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전해철 의원은 좀스럽다는 표현으로 전 대통령을 모욕해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돌파하려는 모습에 분노와 함께 측은하다고 비꼬았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달의 원인은 윤 대통령의 허언이거나 정부의 못 지킨 약속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논란이 확산되는 과정에 문 전 대통령 측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정부 측에 반납했다. 문 전 대통령 측과 행안부 대통령기록관측은 8일 오후 대구 경북대 부속동물병원에서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인수인계했다. 다만 곰이가 낳은 새끼인 다운이는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사저에 당분간 머무를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풍산개의 행선지는 국내 모 동물원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측으로부터 선물받은 풍산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시베리아 호랑이는 서울대공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주석으로부터 받은 판다는 에버랜드로 각각 이관된 바 있다. 다만 사육 후보군으로 떠오른 광주나 대전 지역의 해당 동물원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데다가 국가기록물로 분류된 풍산개 사육 여부에 부담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이 정부에 반환한 풍산개 두 마리를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새로 입주하는 한남동 관저에서 맡아 기르는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흘러나왔다가 대통령실이 부인하는 해프닝까지 이어졌다. 윤 대통령 내외가 오랜기간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워왔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지만 현실화되기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등판 그만하자쓴소리대통령기록물법 재정비 시급

산책나선 곰이와 송강이. 뉴시스
산책나선 곰이와 송강이. 뉴시스

풍산개 파양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장문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이제 그만들 하자내게 입양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현 정부가 책임지고 잘 양육·관리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비용 문제로 곰이와 송강을 파양했다는 여권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 반려동물들이 명실상부하게 내 소유가 돼 책임지게 되는 입양이야말로 애초에 내가 가장 원했던 방식이라며 지금이라도 내가 입양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당시를 거론하며 대통령기록관은 반려동물을 관리할 시스템이 없었고, 과거처럼 서울대공원에 맡기는 게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있어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아 양육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라면서 왜 우리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작은 문제조차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흙탕물 정쟁을 만드는지, 이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해서 뭘 얻고자 하는 것인지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고 한탄했다. 아울러 사룟값 논란과 관련, “지금까지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 등 모든 비용을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 온 사실을 아는가. 지난 6개월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우려하는 시각도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이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도 풍산개를 반환한 것은 시행령 개정없이 풍산개를 키울 경우 향후 정부가 이를 문제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풍산개 논란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 기록물을 반출했을 때 수사한다고 난리 치지 않았냐어느 날 갑자기 이거 불법으로 반출한 거다라고 충분히 할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현행법 위반 소지를 예로 들며 지금의 감사원이라면 언젠가 대통령기록관을 감사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기록물법의 재정비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법상 국가원수 자격으로 받은 선물은 대통령이 퇴임하면 원칙적으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다만 반려동물이 대통령기록물이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더구나 현행 대통령기록관이 동식물을 관리·사육할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대내외적인 경제위기는 물론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따른 안보환경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상황이라면서 여야는 정작 중차대한 문제에는 눈을 감고 풍산개 파양이라는 가십성 기사에 여야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풍산개 논란은 해당 법령의 재정비로 차분하게 마무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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