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낙하산’이 대세 ‘씁쓸’···
- 누가 회장될 지 관심 쏠려

[일요서울 | 박재성 기자] 윤석열 정부 첫 금융권 ‘장(長)’ 인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관치(官治)금융’ 소용돌이 늪에 빠졌다. 최근 금융권 수장으로 하마평에 오른 인물 대다수가 ‘낙하산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NH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지난 12일 손병환 회장의 후임으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만장일치로 단독 추천했다. 임추위 측은 이 전 실장을 추천한 이유로 “금융환경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협금융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10년을 설계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 농협·기업·우리금융 회장에 관치?

그동안 농협금융의 지분 100%를 보유한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윤 정부의 국정 철학에 부합할 전직 ‘관료’출신의 ‘낙하산 인사’를 앉힐 수 있다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의혹들은 결국 현실로 이어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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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제부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한 정통‘경제관료’출신이다. 이후 예산실장, 기재부 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과도 인수위 시절 인연이 있다. 2021년 6월 당시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캠프에 공식적으로 영입돼 인수위에서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임명을 고사한 바 있다. 이 전 실장은 이후에 있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차기 회장으로 선임되고 임기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된다.

IBK기업은행도 ‘관치(官治)’ 비판에서 벗어나 날 수 없다. 윤종원 현 기업은행장의 임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행장 후보에 오른 인물들이 주로 ‘관(官)’출신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행장은 임추위를 거치지 않는다. 대신 금융위원회가 후보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행장으로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차기 행장으로 관료 출신과 내부 출신이 모두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관’출신 인물을 선호하는 현 정부에서는 경제관료 출신 인사가 차기 행장으로 내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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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차기 은행장으로 거론되는 유력인사는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정 전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행정고시 28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를 두루 거친 인사로 역시 정통 ‘경제관료’로 평가받는다. 정부와의 호흡이 다른 은행보다 중요한 기업은행인 만큼 ‘관’출신 인사인 정 전 원장을 행장으로 배치하면 정부와 호흡을 같이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15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FL)관련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차기 회장자리에 ‘누가 앉을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라임 펀드 관련 문책경고가 남아있고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도 무산되고 있다. 그래서 손 회장의 연임여부와 다른 회장 후보자에 대해 여론이 집중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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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 역시 ‘관’출신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관’출신 인물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다. 임 전 위원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재정경제부에서 관료생활을 했으며 주영국대사관 영사(재경관),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국무총리실장까지 맡았다. 이후 ‘관’계를 떠났다가 박근혜 정부 때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현 윤 정부 초기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금융당국과의 마찰을 빚은 손 전 회장과 윤 대통령에게 두 번의 러브콜을 임 전 위원장인 만큼 우리금융그룹도 관치금융을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정책 의사결정 구조 왜곡될 수도

이미 일부 금융기관에는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자리를 꿰찼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해 정무실장을 맡았고, 인수위원회에선 당선자 정책특보 등을 역임했다. 회장 취임 후 윤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인 산업은행 본점 부산이전을 추진중이다. 

금융권에선 이런 기류가 금융지주와 은행장 인사로까지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권 관치 인사를 무턱대고 배제하는 건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전문성이 충분한데도 낙하산 오명 때문에 제대로 일 조차 시작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관치 논란으로 주목되는 인사의 과거 사례를 볼때 그렇게 수장이 된 인사는 각종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난도 있다. 

지난 12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는 ‘금융권 모피아 낙하산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기존에 문제로 여겨졌던 낙하산 인사를 개선하고 ▲공무원 중 젊고 유능한 인재 최우선 선발 ▲ 낙하산 및 청탁 인사 금지 등을 주문한 바 있다. 그래서 이 발언으로 윤 정권에서는 기존 정권과는 다른 인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금융권의 ‘수장’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윤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약속했던 것과 다른 ‘낙하산’인사들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늘 ‘법치’와‘공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은 ‘법에 의한 공정’이 아니라 ‘법을 이용한 불공정’이다. 규정을 바꾸고, 상식을 어겨가며 모피아 낙하산을 내리꽂는 일, 누가 공정이라 부르겠는가?”라고 했다.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정부 인사의 주요 특징은 고시 엘리트 중심”이라며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비전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닌, 이명박 정부 실패한 정책을 주도하거나 집행했던 올드보이(OB)들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정책의 의사결정 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혜련 국회의원 페이스북 캡쳐]
[백혜련 국회의원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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