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고 쌓이고 부자 지갑도 꽁꽁... "현상 유지·올해보다 긴축"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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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주요 그룹사들이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을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와 산업계는 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 등 '3고'로 갈수록 경영 여건이 악화하면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 고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IMF 위기 때보다 경제상황이 더 심각 수준이며 내년 상반기 줄도산하는 기업이 늘 것이라는 걱정마저 나오고 있다. 

- 원자잿값 상승·코로나 재확산·금리 인상 겹악재 이어져
- IMF 때보다 심각…"중소기업 내년 상반기 줄도산" 공포


삼성전자는 최근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내부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지침을 강화했다. 삼성전자 DX(스마트폰·TV·가전) 부문은 지난 7일 사내 인트라넷에 'DX 부문 비상경영체제 전환'이라는 제목의 공지문을 올렸다.

이 글에 따르면 삼성은 전사적으로 프린터 용지를 포함한 소모품비를 올해보다 50% 절감하기로 하고 해외출장도 50% 이상 줄이는 등 긴축 경영에 들어간다. 삼성은 지난 15일부터 이재용 회장 취임 후 첫 전략회의를 개최했는데 비상경영의 일환으로 온라인으로만 이뤄졌다.

이 회의에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고환율, 공급망 불안, 소비 위축 같은 복합위기 돌파 전략을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다.

- 대기업 내년 경영계획 안갯속

SK그룹도 지난달 연 CEO 세미나를 통해 경기침체와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 환경을 점검했고 이를 토대로 각 계열사는 내년 전략을 짜고 있다. 계열사 중 SK하이닉스는 올 4분기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을 줄이고 내년 투자 계획도 절반 이상 축소하는 등 긴축 경영에 나섰다.

LG그룹도 최근까지 구광모 회장 주재 하에 계열사별로 올해 성과와 내년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사업보고회를 진행했는데 LG전자는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각 사업부서와 본사 조직 일부를 뽑아 11월부터 ‘워룸(War-Room·전시작전상황실)’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수혜로 급성장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 또한 ‘2023년 목표는 생존’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따라잡을 만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투입하는 제작비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OTT가 저렴한 ‘반값’ 광고 요금제까지 내놓으면서 토종 OTT는 벼랑 끝에 몰렸다.

넷플릭스는 지난 11월 기존 구독료(월 9500원)의 절반 가격인 월 5500원의 광고 요금제를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서 선보였다. 이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지만 늘어나는 임금 인상으로 제작이 쉽지 않다. 

건설사들도 내년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100위 내 건설사 10곳 중 9곳가량이 내년 사업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수주는 엄두도 못 내고 적자 누적에 따른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종합건설업체로 등록된 건설사 가운데 5곳이 부도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7년 17개 업체가 도산했다가 지난해 2개로 감소했는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실제 지난 9월 우석건설이 부도처리 됐고 이어 11월 동원건설산업도 도산했다. 미분양에 따른 자금난이 핵심원인으로 꼽혔다. 

한국경제신문이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 건설사를 대상으로 내년 사업계획 수립 여부를 조사한 결과 우미건설 반도건설 등 10곳 정도만 계획을 세웠다. 10위 내 대형 건설사 가운데 사업계획을 확정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 신문은 건설 원가 급등으로 적자 공사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라고 밝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공사에 투입되는 원자재·노무·장비 원가(건설공사비지수)가 2년 전과 비교하면 20%가량 상승했다. 10월까지 주택 착공 실적이 33만 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급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0대 건설사는 올해만 공사비가 애초 예상보다 5000억 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에선 작년 하반기 이후 수주한 공사가 마무리되는 2024년까지 손실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당국이 PF 등 부동산 대출의 빗장을 잠가 자금난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규 개발 시장이 브리지론과 PF 대출 중단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현장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에도 분양경기 악화, 금리상승에 따른 유동성 축소 등 건설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나아지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업계에서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청약 부진과 계속되는 거래절벽, 전셋값 하락 등 시장 상황을 근거로 내년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인 이상 기업 240개사(응답기업 기준·부서장 이상 응답)를 대상으로 '2023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의 54.2%가 내년 경영계획의 최종안을 확정(12.9%)했거나 초안을 수립했다(41.3%)고 답했다. 45.8%는 초안도 수립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에서는 90.8%가 내년 경영계획 기조를 '현상유지' 또는 '긴축경영'으로 정했다. '현상유지'로 응답한 기업은 68.5%, '긴축경영'은 22.3%였고 '확대경영'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9.2%에 불과했다.

긴축경영을 선택한 기업들 중 72.4%(복수응답 가능)는 구체적인 시행계획에 대해 '전사적 원가 절감'을 선택했다. 이 외에 '유동성 확보'(31.0%)와 '인력운용 합리화'(31.0%)를 선택한 기업의 비중도 높았다.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들 중 내년 투자계획과 관련해서는 '올해(2022년) 수준'이라는 응답이 66.9%로 가장 많았으며 '투자 확대'는 15.4%, '투자 축소'는 17.7%로 집계됐다.

또 기업들이 전망한 내년 경제성장률은 평균 1.6%에 그쳤으며 구간별로는 성장률이 '2.0% 미만'일 것이란 응답이 90.8%에 달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거의 9곳은 내년 경영 환경이 올해와 비슷하거나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 410개를 대상으로 벌인 '2022년 중소기업 경영실태 및 2023년 경영계획 조사'결과에 따르면 내년 경영 환경에 대해 응답 기업의 61.5%가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영 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은 26.3%였다.

- “법인세 인하·규제 완화 등 지원책 필요”

이에 투자 유인을 위해 각종 규제 완화 및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신성장 수출동력 확보 추진계획에서 반도체·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주력 산업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또 민관 합동으로 3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 및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소부장 인수합병(M&A) 등 투자 지원에 나선다. 반도체 인력 양성과 차세대 반도체 등 유망기술 연구개발(R&D), 각종 인프라에도 1조 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차세대 전지 기술력 선점, 기술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한 배터리 R&D에 1조원 이상 투입 등 내용을 담은 이차전지 산업 혁신전략도 2030년까지 추진한다. 디지털·바이오 산업 등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한 각종 혁신전략 및 R&D 투자 확대에도 나선다. 이 밖에 대기업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중견기업 수준(8∼12%)으로 상향하는 등 주력 산업 세제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과 사단법인 한국OTT포럼이 공동 주최한 ‘국내 OTT 산업의 현재와 지속성장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정책위원은 “2020년대 이후 여러 가지 성장 기회에도 사업자 간 경쟁 심화, 제작비 증가 등으로 시장 한계에 봉착했다”며 “세액공제율 향상, 세액공제 범위 확대, 자체등급분류제의 신고제 안착, 글로벌 진출 지원 강화 등 과감한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인영 의원은 “내년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볼 때 OTT 전반이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면서 생존해나갈 것인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며 “당장 언급된 세제 개선, 재정적 지원, 규제 완화 문제가 모두 필요하겠지만 어떤 부분을 우선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내년 경기상황이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업의 활력을 돋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최소한 불리한 환경에서 경쟁하지는 않도록 세제와 노동시장의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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