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이종혁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이종혁 변호사]

과거 미성년자에 대한 훈육과 지도는 상당 부분 가족이나 학교, 지역사회의 통합적인 역할에 맡겨져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점점 미성년자의 행위라고 할지라도 법적 절차나 그에 준하는 제도를 통하여 엄격히 통제하고 단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비단 형사절차뿐만이 아니더라도, 학교 내 사건에 대해서 학교폭력위원회가 빈번하게 열리는 것처럼 미성년자에 대한 징계를 공식 절차에 따라 부과하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미성년자의 비행이 가정 또는 학교에서 쉽게 통제되지 않는 경우에 비로소 사건화가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순간의 일탈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신고와 고소·고발을 통해 사건화가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어린아이’가 감당해 내기에는 다소 가혹해 보이는 ‘심문 절차’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의 업무로서는 이제 성인 사건 못지않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건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몇 달 전 수행했던 소년 사건에서, 소년부 판사는 보호소년과 어머니에게 보호처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다행히도 해당 미성년자는 비행에 적극 가담하였던 것이 아니고 소극적인 방조 행위에 그친 점과 부모님의 적극적인 계도 다짐이 받아들여져 수강명령이라는 비교적 경한 처분이 내려졌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떨고 있던 소년은, 재판이 마친 후 법정 밖으로 나와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엄마, 미안해.” 라며 흐느꼈다. 여러 차례 본 풍경이지만 필자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년 법정에서는 성인 재판과 비교해 볼 때 사뭇 다른 풍경이 있다. 후자의 경우 범죄사실의 객관적인 증명과 이에 대한 반박 및 변론이 주된 것이라면, 전자는 행위 사실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 외적으로 미성년자의 가정환경과 교육 환경, 부모의 교육 방식과 태도가 더 주된 부분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소년부 판사는 단호하게 보호소년을 혼내기도 하고, 함께 출석한 부모의 훈육 방식과 태도를 질책하기도 한다. 

한 발 떨어져 보면 그 모습은 과거 부모, 교사, 그리고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했던 역할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한 풍경 속에서 소년 법정은 처절한 ‘통회’와 눈물바다의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법정드라마에서는 영악한 소년이 자신이 형사미성년자라는 점을 알고서 판사와 변호사를 농락하듯 조롱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풍경을 그려내기도 하지만 사실 실무에서 그런 풍경을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나쁜 행실의 아이가 아니었다거나 충분히 모범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순간의 선택으로 비행이나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 안타까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떠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미성년자들이 형사 처벌이나 처분을 받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형사적 제재가 한번 부과된 사람에게 실상은 생각보다 가혹하고, 형사적 낙인이 찍히면 다수의 경우에 삶의 향방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며 미성년자라고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형사적 제재를 통하여 오히려 사회적 고립이 된 이후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그렇게 고립된 범죄자들끼리의 학습이 이루어져 다시 재범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상당하다. 따라서 애초에 비행·일탈이나 범죄의 길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가치관이 정립되기 이전의 미성년자가 일탈로 나아간 것은 사실 가정, 학교, 지역사회의 역할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다수의 소년 사건은 불우한 가정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쌓여온 반항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경우이거나, 혹은 부모의 매우 잘못된 가정교육이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라는 소년부 판사의 질책은 사실 해당 소년 보다, 그 부모를 향한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보호소년은 동급생들 사이의 폭행 현장에 있었으나 피해학생을 때리지 않았고 협박한 사실도 없었다. 다만 주도적으로 때린 무리가 보호소년이 어울리던 친구들이었고, 섣불리 친구들을 말리거나 제지할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소년 역시 자신의 친구들을 무서워해 왔던 것이다. 부모는 소년의 환경에 관심이 없었다. 이혼 가정에 어머니가 혼자 양육을 하고 있었고 어려운 생업에 종사하느라 자녀의 양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학생의 일탈이나 그 원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어떤 징계를 할 것인지와 어떠한 신고를 할 것인지, 그리고 법적 책임의 유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가정과 학교 혹은 지역사회는 이 소년이 올바른 교우관계를 형성하여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도록’ 하고, 애초에 ‘나쁜 아이들이 어울리는 무리’를 차단할 수 있어야 했다. 소년부 판사는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국가의 형벌권이 작동하기 전에 가족, 학교, 지역사회의 사회통제기능이 제 역할을 했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 이 소년은 법정에 서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회공동체 안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성년자가 범행의 길로 나아갔다면 사회는 비난에 앞서 반성을 해야 한다.

‘다시는 엄마 속을 썩이지 않겠다’며 펑펑 울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전하고 돌아서는 학생과 어머니의 뒷모습이 익숙하고 선명하게 기억난다. 부디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모범적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고대해 본다.

< 이종혁 변호사 ▲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졸업 ▲ 변호사시험 합격 ▲ 前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 전문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부동산 전문변호사 ▲ 기업 자문 ▲ 변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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