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60년 전인 1963년에 만들어졌다. 초창기 활동은 각종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선거권자의 주권의식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다 1987년 대통령선거 직선제 도입과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선거운동의 자유가 확대되고 불법・탈법사례가 급증하자 위법선거운동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선거마다 개별적으로 적용되던 각종 선거법을 <공직선거법>으로 통합 제정했다. 새로운 선거・정당・정치자금제도가 마련됐으며, 실질적으로 선거범죄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시・도 교육위원 선거와 교육감 선거관리까지 하도록 했고, 2004년에는 주민투표관리, 2005년에는 산림조합장 및 농・수・축협조합장 선거, 국립대학총장후보선거 등을 위탁관리했다. 2006년부터는 주민소환투표도 관리하도록 제도화됐다. 선관위의 권한과 역할의 범위가 급격히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당에 대한 온갖 규제들도 거미줄처럼 촘촘히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정당이 당연히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할 부분까지 선관위에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목을 스스로 조이는 결과가 된 셈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자율권에 속하는 부분까지 과도하게 선거관리위원회에 위임, 위탁함으로써 정당 스스로가 자율권을 과도하게 선거관리위원회에 넘겨주고 사실상 ‘정치관리위원회’로 만들어 준 꼴이 된 셈이다. 특히 정당의 현역의원 컷오프, 정당의 경선과정에 까지 선거관리위원회가 일일이 과도하게 관여, 규율토록 하고 있고, 세세하게는 하다못해 문자발송 내용까지 일일이 선관위가 그 내용을 사실상 ‘검열(檢閱)’하거나 처벌토록 하는 등 그 정도가 도(度)를 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후보자 선출은 연방선거법이 아닌 주법(州法) 혹은 정당의 당헌·당규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코커스(caucus) 혹은 예비선거(primary)를 통해 대통령 및 의회선거 후보자 선출방식을 결정한다. 코커스는 정당에서 주관하는 후보선출 과정으로서 당규로 규정한다. 일본은 정당에 관한 사무를 규율하는 법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활동에 대한 제한이 아예 없다. 선거기간 중 정당활동은 공직선거법에 의해 엄격하게 그 활동이 제한되나, 그 외의 기간에는 제한이 없다.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당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후보자를 추천한다. 또한 동일 정당이라도 지역에 따라서 독자적인 후보자 추천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영국 역시 정당의 후보자 선출에 관한 법적 근거도 없으며, 각 정당의 내부 규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의 선진국이 우리나라보다 특별히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정당 활동은 당연히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공직선거법을 운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당내 경선은 정당에서 공직선거에 추천할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인데, 허용되는 경선운동 방식도 법률로 규정하고 홍보물 작성 등의 사항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정당의 자율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당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선거운동의 종류나 내용을 일일이 규제하는 사례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와 정당이 자신들의 권능을 스스로 선관위에 갖다 바치고, 노예처럼 규제와 단속에 압박당하고 자칫 범죄자로 전락하는 ‘바보짓’을 계속해 온 셈이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중 정당의 자율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공직선거법 제47조(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57조의2(당내경선의 실시), 제57조의3(당내경선운동) 및 제9장 ‘선거와 관련 있는 정당 활동의 규제(제137조~제141조)’ 부분은 일괄 삭제하고 그와 관련된 벌칙 규정도 모두 삭제하는 것이 당연하고 옳다. 당내경선의 선거인 자격 및 당내경선 운동방법, 선거와 관련 있는 정당 활동의 규제(정강·정책의 신문광고·방송연설 및 홍보물 배부 제한, 정책공약집 배부 제한, 정당기관지 발행·배부 제한, 창당대회 등의 개최 및 고지 제한, 당원집회 제한) 따위는 당연히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당헌과 당규에 따라 후보자 추천, 당내경선 실시 및 당내경선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당이 그 정도의 자율성과 규범도 갖추지 못할 정도로 체계가 허술하다면, 그런 정당은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그물망이 과도하게 촘촘하면 잡지 말아야 할 고기까지 잡아 씨를 말리게 된다. 과도한 법망이 정당의 자율성을 침해하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우리 정당법 제1조가 규정한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당 스스로의 자각과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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