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조폭 출신 한 기업인의 검거 소식에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이 해외 도피 중 태국에서 검거되면서 여야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종 사법리스크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비 대납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회장이 귀국하면서 이재명 대표가 진퇴양난의 처지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은 문재인정부 시절 대북사업을 통한 쌍방울그룹의 사세 확장을 위해 거액의 돈을 북한에 보낸 이른바 대북송금의혹의 핵심 당사자다. 향후 검찰 수사의 칼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서는 메가톤급 파장이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남북대화를 위해 전임 정부가 북한 측에 거액의 대가를 지원해왔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날 수도 있다.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한 수사에 따른 향후 파장을 집중 조명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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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그룹 비리의혹 김 전회장, 태국서 검거 후 자진입국
- 조폭출신 사업가 승승장구, 변호사비 대납대북송금 의혹 핵심

애초 태국에서 송환거부 입장을 밝혔던 김성태 전 회장은 갑작스럽게 자진귀국과 수사협조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오랜 해외 도피생활로 지친 김 전 회장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국내 수사기관이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면 각종 비리의혹에 대한 관련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성남FC 및 대장동 의혹으로 최대 위기에 내몰린 이재명 대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특히 김 전 회장이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메가톤급 폭로를 쏟아낼 경우 향후 정치적 후폭풍은 예측불허다. 서해피격 수사의 여파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욱 전 국방부장관 등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되는 등 현 정부의 압박에 시달려온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윤석열정부의 입장에서는 검찰의 수사 진척에 따라서는 제1야당 수장과 전직 대통령이라는 대어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12조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는 셈이다.

조폭출신에서 사업가 변신김성태 전회장 누구?

쌍방울그룹의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은 조직폭력배에서 사업가로 합법적으로 변신한 인물이다. 조폭 출신의 기업인이라는 이력 탓에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전북 전주 지역에서 조폭으로 활동하면서 불법 도박장과 대부업 운영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다. 이후 2010년 공격적인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쳐 경영난이 시달리던 쌍방울 그룹을 인수하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관계는 물론 법조계와의 광범위한 인맥을 과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 전 회장은 그룹을 키우기 위해 대북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이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남북평화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과도 기조가 맞았다.

다만 정권교체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수많은 비리 의혹에 김 전 회장은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검찰 수사망을 피해 해외 도피를 선택했다. 비밀리에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태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김 전 회장은 8개월간의 해외도피 생활 중 현지에서 골프와 술파티 등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또 쌍방울 임직원을 동원해 한식을 해외 도피처로 공수한 것은 물론 거액의 회사돈도 도피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필리핀 마닐라에서 수억원대의 도박은 물론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본인의 도피처로 부르는 등 기행으로 황제도피 논란에도 시달렸다. 지난 10일 태국 현지 이민국의 검거 당시에도 태국 빠툼타니 소재의 한 골프장에서 양선길 현 쌍방울 그룹 회장과 골프를 치려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쌍방울그룹의 전환사채 관련 허위공시 배임·횡령 거액의 대북송금 의혹 이재명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대북송금 의혹과 변호사비 대납의혹이다. 검찰 수사의 종착지가 바로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를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방울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김 전 회장은 즉시 귀국해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비 대납의혹, 불법 대북송금의혹도 논란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2018.12.26. 뉴시스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2018.12.26. 뉴시스

변호사비 대납의혹은 과거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당시 변호인들에게 쌍방울그룹이 이 대표를 대신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대납했다는 의혹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당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제는 거액의 변호사비를 이 대표가 부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회사가 대납했을 것이라는 의심이었다. 이는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이 벌어졌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도 불거졌다. 또 같은해 10월 친문성향의 시민단체인 깨어있는시민연대당’(깨시연)은 검찰에 이 대표를 고발했다. 주요 내용은 이 대표가 공선법 위반 혐의 재판과 관련해 3억원의 변호사비를 썼다고 밝힌 점과는 달리 특정 변호사에게 현금·주식 등 20억여원을 줬는데도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깨시연이 지목한 특정 변호사는 이태형 변호사로 대선 당시 이재명캠프 법률지원단장으로 활약했고 쌍방울 계열사인 비비안의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이 대표와 쌍방울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관련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최초 제보한 인물이 서울 시내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정치적 공방이 확산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타살 협의점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변호사비 대납의혹 수사는 김성태 전 회장의 신병확보를 계기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송금 의혹도 주요 변수다. 쌍방울그룹은 지난 2019년 계열사 임직원 수십여명의 명의로 640만 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뒤 북한 측에 전달했다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르면 북측과의 협력사업 시행이나 물품반출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쌍방울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과 대북 경제협력 사업을 합의한 대가로 보낸 돈으로 파악하고 있다. 쌍방울그룹은 지난 20195월 중국 단둥에서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 물류·유통 등 6개 분야의 우선적 사업권을 얻는 내용의 합의서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체결했다.

쌍방울의 대북사업에는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 전 의원이 연관돼 있다. 쌍방울 사외이사을 역임했던 이화영 전 의원은 김성태 전 회장에게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소개시켜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쌍방울의 대북송금을 몰랐을리 없다는 의심이다.

애초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발굴 및 봉환 사업을 추진한 단체였다. 2007년 태평양전쟁희생자봉환위원회로 정식 출범해 2012년 아태평화교류협회로 변경했다. 문제는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이전까지 대북지원 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전무한 것은 물론 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얽어있는 쌍방울그룹이 후원하고 있는 단체라는 점도 석연치 않았다. 아태평화교류협회는 쌍방울 본사 건물 5층에 입주에 무상으로 사무실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은 이재명 대표를 넘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파장이 미칠 수 있는 심대한 사안이다. 김대중정부 시절 북한과의 대화를 명분으로 거액의 대북송금이 이뤄졌던만큼 남북대화에 공을 들였던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대화를 대가로 북한 측에 거액의 송금이 이뤄졌을 거라는 게 보수진영의 의심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나 국정원의 묵인 없이 쌍방울그룹이 대북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오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과거 한 언론보도를 인용해 이재명 경기도가 북한과의 경제협력 창구로 내세웠던 아태협 안부수 회장을 통해 201812월 북한의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에게 7만 달러를 전달했다. 김 전 부장은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고 북한 대남공작 총책이라면서 문재인 청와대와 국정원의 주선 혹은 방조 없이 민간기업 쌍방울과 민간단체 아태협이 김영철에게 뇌물 상납이 가능한가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회장 진술따라 메가톤급 파장정치권 요동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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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야 정치권 모두가 김 전 회장의 입만 바라보는 모양새다. 김 전 회장은 수원지검이 수사 중인 쌍방울그룹의 각종 비리 의혹 핵심 당사자다. 특히 김 전 회장의 진술 여부에 따라서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둘러싼 여야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또하나의 돌출변수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변호사비 대납의혹 사건의 경우 김 전 회장의 해외도피로 본격적인 수사가 어려웠던 만큼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마찬가지로 계열사 임직원을 동원한 북한으로의 외화 밀반출 사건 수사 역시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이 대표는 과거 쌍방울그룹과의 유착설에 대해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일축하면서 쌍방울의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 내복은 쌍방울 잘 입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의 강력한 부인에도 김 전 회장의 스탠스 변화에 따라서는 올 상반기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전 회장의 사업재기를 위해 검찰과 모종의 딜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태국에서 검거된 뒤 자진입국을 선택한 것을 고려하면 장기간의 해외도피에 따른 심리적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재명 대표와 관련한 사건의 진술은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와 더불어 쌍방울그룹의 비리 관련 수사에 대해서는 선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엄정수사 방침을 밝히면 이를 일축했다는 후문이 나온다. 민주당은 음모론을 띄우며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5선 중진인 안민석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검찰에 수사받으러 간 날, 작년 5월에 해외에 나가던 김성태 전 회장이 8개월 만에 똑같은 날 체포됐다는 게 우연의 일치일까라고 반문하면서 어느 정도 꿰어맞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명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김 전 회장과 검찰이 손을 잡았다는 뉘앙스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김성태 전 회장이 태국 현지에서의 불법체류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귀국을 결정한 점은 향후 수사기관 조사에서 협조적 태도로 나설 것이라는 시그널을 던져준 것이라면서 변호사비 대납의혹과 대북불법 송금의혹을 풀 수 있는 키맨으로 꼽히는 만큼 그가 향후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서는 올해 상반기 정치지형은 메가톤급 파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경우 크고작은 사법리스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김 전 회장이 변호사비 대납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경우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게다가 대북송금 의혹은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도 동시에 겨눈 사안이다. 이에 따라 차기 총선을 앞둔 여야의 대치전선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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