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 신년사에서 예년과는 달리 “양안(중국과 대만)은 한 가족”이라며 유화적인 표현을 썼다. 2개월 전 만 해도 그는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며 무력통일도 불사할 듯이 겁박했다. 그러나 그의 유화적인 신년사가 작년 말 거센 반시진핑 시위에 대한 미봉책의 일환이 아니었나 주목케 한다. 시진핑은 그동안 덩샤오핑(鄧少平) 이후 불문율로 지켜져 온 ‘사회계약’을 깨고 1인 독재로 치달으며 대만에 대한 강경 일변도로 일관했다.

영국의 자유주의와 경험론의 창시자 존 록크(1632-1704)는 국가란 통치자와 평등한 시민들 사이에 체결된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되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에 이르러 국가와 인민들 사이에 ‘사회계약’이 묵시적으로 이뤄졌다.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경제발전과 안정을 보장해 주고 그 대가로 인민들은 공산당 1당 독재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인민들에게 경제발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도 1인 독재로 굴종만 강요했다. 작년 중국 대학 졸업자는 1000만 명이었다. 그들 중 취업자수는 23%에 그쳤다.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2.3%에 그쳐 32년 만에 개발도상국 평균 성장치인 5.3%에 크게 뒤졌다. 여기에 시진핑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1976년 마오쩌퉁(毛澤東) 사망과 함께 쿠데타로 집권한 뒤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집단지도체제로 개혁했다. 집단지도체제로 공산당 상층부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견지토록 했다. 그걸 위해 덩샤오핑은 국가주석의 임기를 5년 2 연임으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69세의 시진핑은 지난 10월 열린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통해 3 연임 1인독재로 굳혔다. 그는 덩샤오핑의 경제성장 우선주의를 접고 요직에서 친시장계 간부들을 제외시켜 반시장 체제로 후퇴하고 있다. 또한 대만에 대해 무력통일도 불사할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충돌했다. 그는 “동(東)은 일어서고 서(西)는 기운다‘며 중화민족 우월주의를 표방한다. 마오쩌퉁이 하던 짓 그대로이다.

시진핑의 3연임, 코로나 봉쇄. 반시장경제, 1인우상화 등에 맞서 중국인들은 반시진핑 시위에 나섰다. 지난 10월13일엔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현수막이 베이징 고가도로 난간에 걸렸다. 50개 대학에선 코로나 봉쇄 해제 시위가 벌어졌다. 베이징에선 11월28일 새벽 1시 700여 명이 백지를 흔들며 ‘베이징을 풀어줘라’고 외쳤다. 중국 공산당은 “외세”가 개입했다고 둘러댔지만 믿을 사람은 없고 새해에도 시위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결국 시진핑은 12월7일 ‘제로 코로나’ 방역조치를 풀었다. 1주일 후 시진핑은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민영기업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며 친시장경제 제스처를 썼다. 올 신년사에선 대만이 “한 가족”이라고 유화적 제스처까지 보냈다. 하지만 시진핑이 1인독재를 포기치 않는 한 덩샤오핑과 같은 개방경제와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 겁박 중단을 기대할 수는 없다. 1인 공산 독재자는 반시장경제와 대내외 긴장조성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덩샤오핑 이후 누려오던 ‘사회계약’을 깼고 1인독재로 치닫던 중 거센 시위에 직면했다. 중국인들은 새해에도 ‘사회계약‘에 따라 헌납했던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는 데서 ‘사회계약’의 향방이 주목된다. 그러나 시진핑은 1인독재를 다지며 역행한다. 마오체퉁, 요세프 스탈린, 김정은 등에서 드러났듯이 1인 독재체제는 경제를 결딴내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유지된다. 새해 자유를 열망하는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주목된다. 시진핑 독재를 뒤엎느냐, 아니면 1989년 천안문 사태처럼 피비린내 나는 탄압으로 그칠 것인지.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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