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더 일찍, 더 많이 결혼하고,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할 묘수가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런 해법은 없다. 단순히 돈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 한 명 낳으면 1억 원씩 준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을까. ‘1억 원과 바꾸기 위해아이를 낳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게다가 그렇게 낳은 아이들은 오히려 사회적 부담, 골칫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만약 한 명 낳을 때마다 5, 10억씩 주거나, 결혼하면 무상으로 신혼주택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합계출산률 2.0명 이상은 금방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단순한 생각이다. 실제로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부담을 더 많이 지고 있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돈 외에도 다른 많은 것(보육, 교육, 자신의 직업과 캐리어...)들을 세세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선명하다. 부양에 너무 많은 에너지, 시간,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식이 부모의 노후에 전혀 보탬이 안되거나, 오히려 부담이 될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뻔히 보이는 과정과 에너지와 시간의 투입량, 불안한 미래를 두고서, 성에 차지도 않는 돈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면 그건 젊은이들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막 낳았다. 여섯을 낳으면 셋은 죽고 셋만 살아남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식과 부모 부양에 돈도 별로 안 들었다. 특히 농촌의 대가족 구조는 친척과 마을이 사실상 아이들을 함께 길렀다. 아이들은 꼬맹이 적부터 집안 일손을 거들었고, 중학교만 졸업하고 장사를 시작하거나, 고교중퇴하고 공장 다니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물고 태어난다는 말도 그래서 흔했다. 이르면 10대 중반, 늦어도 20대 중반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0대 중·후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일자리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지도 않았고, 소위 스팩경쟁이라는 것도 드물었다. 한창 돈벌이를 할 4~50대가 되면 이미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해서 제 밥벌이를 스스로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니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결국 투입되는 비용과 에너지, 시간의 총량은 갈수록 늘어나지만, 기대하는 만큼의 산출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다. 솔직히 그 시절 아이 여섯을 키우던 돈과 에너지로는, 지금 한 명을 키우기도 버거운 세상이 됐다. 아이가 주는 기쁨에도 불구하고, 부모입장에서는 부담이 더 큰 세상이 되었다. 결론은? 자꾸 아이 낳으라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 한 명당 1, 2억으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저출산의 또 다른 원인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가에 있다. 벌어 주는 돈으로 아이 키우고 살림하던 세상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소비하는 세상이 됐다. 먹고, 입고, 치장하고, 즐기는 맛을 알게 된 여성들에게 자식은 행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됐다. 그래서 아이는 낳지 않고 너도나도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 삶의 가치 기준이 아예 달라진 것이다. 그걸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외치는 저출산 문제 해결 운운은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신혼부부에게 무상으로 집을 주거나, 아이 한 명당 5억씩, 10억씩 줄 수 없는 형편이 아닌 상황에서, 결국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는 제도의 혁신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너도나도 자식을 대학에 보낸다.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노동시장이 원하는 인재는 길러내지 못했다. 현실의 환경에 무익(無益)한 학문과 학과과정이 되풀이되며 사회적 비용과 부모의 빈곤만 가중시켰다. 과도한 스펙 경쟁은 대학을 기본학력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서른이 넘어도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다. 대학 졸업하고, 석사과정하고 어쩌고 하다 보면 서른이 넘는다. 부모 등골만 빼먹으며 결혼 준비는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어찌어찌 서른 넘어 취업을 해봤자 50줄만 되면 퇴출 압박을 받는다. 30년 가까이 학교에 부모 돈 가져다 바치고 고작 20년 일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부모까지 돌아봐야 한다. 이런 황당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3, 5, 7포 세대가 당연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생애총소득을 높이려면 일단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교육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고졸자와 대졸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학제도 단축해야 한다. 초등 6, 중고교 6, 대학 4, 석박사 2~5, 군대 2(남자의 경우). 조기퇴직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유보통합이 아니라, 보육은 그대로 두고 유치원을 초등학교 과정과 통합해 총 5년 정도로 하고, ·고교 과정도 4년으로 줄이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으로 바꾸자. 그래서 지금보다 노동시장에 3~5년 일찍 진출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자. 중소기업과 대기업, 생산직과 사무직에 과도한 임금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생애 총소득을 높이는 나라만 되어도 저출산 문제는 좀 더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하도 답답하니 드는 생각이다.

뾰족한 묘수(妙手)가 없다면,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출산이 축복인 그런 나라 말이다. 장수가 재앙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출산마저 고통만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과연 무슨 희망이 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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